【짬】 사진기자 남편 사진집 기획한 부인 이영순씨
사진기자 출신인 원로사진가 박용윤(88)씨가 1979년부터 94년까지 15년 동안 매월 ‘오늘의 한국인’ 주제로 월간지 <신동아>에 연재했던 인물사진을 엮은 첫 사진집 <어제와 오늘의 한국인>(눈빛출판사 펴냄)이 나왔다. 문화예술인(소설가 김정한, 화가 유영국·천경자), 학자(이희승, 최태영, 이기백), 성직자(김수환 추기경), 출판인(정진숙, 한만년) 등 당대 한국 사회를 이끌어간 인물들의 얼굴사진을 통해 그 내면과 시대상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서울 효자동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출판기념 사진전도 열리고 있다. 8일 전시장에서 마련한 조촐한 출판기념회에는 박씨와 부인 이영순(71)씨를 비롯한 가족들과 동료·선후배 기자들이 함께 축하를 나눴다.
박용윤씨 15년간 ‘신동아’ 연재 인물사진
‘어제와 오늘의 한국인’ 묶어 펴내
김수환·천경자·김정한 등 200여명 필름·원본 없어 3개월간 잡지 사진 스캔
미수맞아 출간기념 사진전도 열어
“알츠하이머 투병에 더 서둘렀죠”
박용윤씨는 195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60년 ‘3·15 부정선거’를 비롯한 숱한 역사적 순간을 기록했다. 마산에서 시위대가 마산경찰서장 지프에 불을 지른 현장 사진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동아일보실 박용윤 이라는 크레딧을 달고 실리기도 했다. 4·19혁명 때는 이승만 하야를 주장하는 전국 대학교수들이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는 장면도 찍었고, 이 대통령의 ‘하야’ 소식을 들은 계엄사단장이 시민들과 함께 탱크 위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는 극적인 장면도 포착했다. 64년 도쿄올림픽 때는 북한 신금단 선수가 남한의 아버지와 상봉하는 장면을 찍었다.
미수에 이르러 뒤늦게나마 첫 사진집을 만든 것은 부인 이씨의 간절한 바람 덕분이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이씨는 “사진기자로서 누구 못지않게 자부심을 갖고 평생 몸 바쳐서 뛰었던 남편인데,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면 너무 허무하다 싶었다”고 입을 열었다. “더구나 알츠하이머 증세로 투병 중이다 보니 마음이 조급해졌어요. 큰딸을 시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봤는데 신통치 않았죠. 그러다 남편의 신문사 후배인 전민조(73)씨의 도움으로 신속하게 출간작업이 진행됐어요.”
마침 곁에 있던 전씨가 말을 이었다. “박 선배는 신문 지면을 빛내는 취재는 많이 했지만 남아 있는 사진이 별로 없었어요. 역사의 순간을 담은 필름과 사진이 대부분 소실된 겁니다. 궁리하다가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와 함께 안산에 있는 동아일보사 서고를 찾아갔어요. 후배들의 도움도 받아 과월호를 몽땅 뒤져 사진으로 스캔해냈죠. 한 3개월 걸렸나.”
다시 부인 이씨에게 사진집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소감을 물었다. “물론 감격스러웠죠. 남편이 현역에 있을 때도 ‘신문사 일이 힘들구나’라고 느꼈지만 사진집을 보니 새삼스러웠어요. 내 남편이 이런 일을 했구나. 책으로 낼 수 있는 일을 했구나. 자랑스럽기도 하고. 좀 더 일찍 책을 준비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워낙 그런 욕심이 없는 사람이어서…, 이제라도 책이 나왔으니 기쁩니다.”
박용윤씨는 가장으로도 훌륭한 남편이었을까? 이씨는 “성실했다. 가족에게 충실하려고 애쓰긴 했는데 기자라는 직업 탓에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출장을 밥 먹듯 가고 일요일도 없고 새벽에 가면 퇴근은 밤 12시가 넘었어요. 그 시절은 몸으로 뛰어다녔잖아요? 아내로서 조금 원망도 했죠. 한번은 휴일인데 출근하더라구요. 그래 오기가 나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다니는 애들 셋을 나 혼자 데리고 관광버스를 타고 민속촌으로 구경을 갔어요. 그런데 거기서 남편 회사 후배인 김수남 기자를 만났지 뭐예요. 그 역시 휴일에 나와 굿을 취재하고 있더라구요. 하하 다들 그런 시절이었어요.”
책에 실린 인물들을 직접 만나본 적도 있는가? “남편이 친화력이 강한 편이었요. 책에 실린 사람들, 그러니까 <신동아>에 연재된 분들과 이후에도 친하게 지냈어요. 나를 불러서 같이 식사도 하고 그랬죠. 정명훈 선생은 콘서트에 우리를 초대하기도 했어요. 균학자 김삼순(1909~2001) 선생도 기억나요. 또 강신명(1922~2006) 선생은 각별한 인연이 었어요. 산부인과 의사로 우리 아이 셋을 다 받아주셨으니까요.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도 취재하고 인간적으로 친해졌는지 회사도 찾아가고 그러더라구요. 아! 이분 장윤석(86) 선생 역시 의사인데, 유일하게 선물을 받아온 일화가 있었어요. 남편은 그 시절 보기 드물게 촌지를 안 받는 기자로 유명했어요. 장 선생이 ‘봉투는 안 받는다니 대신 이건 꼭 받아가시라’ 하며 한복 옷감을 줬더라구요. 지금도 옷을 안 만들고 집에 그대로 있어요. 하하.”
이날 출판기념식에서 가족을 대표해 할아버지에게 꽃다발을 건넨 외손녀 최유진(기흥고 1년)양은 “멋있다. 교과서에서 본 소설가의 얼굴사진이 저렇게 벽에 걸려 있는데 그걸 우리 할아버지가 찍었다니 놀랍다. 누구냐구요? 아, 박완서도 있고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쓴 조세희도 있다. 이거 친구들에게 자랑할 일인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글·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지난 8일 서울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열린 첫 사진집 <어제와 오늘의 한국인> 출판기념 전시회에서 나란히 선 원로사진가 박용윤(왼쪽)·이영순(오른쪽)씨 부부.
‘어제와 오늘의 한국인’ 묶어 펴내
김수환·천경자·김정한 등 200여명 필름·원본 없어 3개월간 잡지 사진 스캔
미수맞아 출간기념 사진전도 열어
“알츠하이머 투병에 더 서둘렀죠”
박용윤 사진집 표지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