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음원 ‘스트리밍 시대’의 그늘
음원 ‘스트리밍 시대’의 그늘
지난 5월 인기가수 지드래곤은 음원을 내지 않고 유에스비(USB·이동식 저장매체)로 제작된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대표적 한류스타인 그의 선택을 두고 창작자가 수익을 얻을 수 없는 국내 음원시장 구조 때문이란 의견도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록그룹 시나위 멤버 신대철(50)씨는 바른음원협동조합을 통해 ‘음원 징수·분배규정 개정 정책제안’을 밝혔습니다. 음악인들 중 수익 상위 1%로 분류되는 지드래곤과 음반 호황기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록스타마저 고민하게 만든 국내 음악계 현실, 그 속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가수 지드래곤의 솔로음반 <권지용> 재킷 사진. 그는 지난 5월 유에스비(USB)로 제작된 음반을 발매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국내 주요차트 9주간 1위 행진
음원수익은 3600만원에 그쳐
유통사업자가 더 많이 가져가 음악인들, ‘멜론’ 등 서비스 플랫폼
음원 ‘진열’ 방식도 문제라는 지적
순위 100위 안에 못 들면 낙오돼
창작자에게 가격결정권 돌아가야 미국의 경우 서비스 사업자 및 유통사가 음원 수입의 30%를 가져가고 나머지를 제작자, 가수 등 저작권자들이 자체적으로 나누고 있다(2012년 문체부 ‘디지털 음악시장 현황 및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 최소한 유통사가 제작자 및 저작권자보다는 수익을 덜 가져가는 구조다. 상품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마트가 상품 수입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지 않는 것과 같다. 신대철 이사장은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며 획일화된 음악시장에서 틈새시장을 공략했던 소형 제작사와 창작자들은 정당한 수익을 얻지 못해 더 이상의 창작활동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음원이 발매되자마자 최대 75%까지 덤핑 할인되어 판매되는 것은 명백한 불공정 사례라는 것이다. 그는 해외처럼 가격 결정권의 일부를 권리자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국내 음원 징수규정상의 할인규정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음원 수익구조에서 저작권자의 분배 비율이 일정 부분 높아지더라도 음악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음원 규정의 정상화가 궁극적으로 음악 업계의 건강한 선순환을 이끌어내는 주된 대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1%의 고소득 저작권자와 99% 저소득 저작권자 이 외에 뮤지션 등 저작권자들이 겪고 있는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뮤지션 홍재목(32)씨는 “음원수익 분배 규정이 창작자에게 유리하게 바뀌더라도 저소득 저작권자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변화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서비스 사업자의 음원 ‘진열’ 방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현 방식으로는 순위권에 들지 못하면 소비자와의 접근성이 급격히 떨어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현재 ‘멜론’ 등 주요 음원사이트에서는 주로 인기 있는 곡, 순위 위주의 진열 방식으로 곡들이 소개되고 있다. 자연히 다양한 장르의 비주류 음악이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접근성이 낮아졌다. 대형 뮤지션을 관리하고 있는 음악제작사 대표 김민재(가명·41)씨도 “국내에서 가장 많은 소비자가 이용하고 있는 음원사이트 ‘멜론’의 경우 인기순위 100위권에 들지 못하는 창작자들은 한 달에 몇만원에서 몇십만원을 받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음원 수익 분배 규정이 창작자에게 유리하게 바뀌더라도 기존 수익에서 1만~2만원 더 받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음원시장은 ‘멜론’ 등에서 운영 중인 100위권 차트로 수익이 좌우된다. 김 대표에 따르면, ‘멜론’에서 음원순위 100위 안에 장기간 머문다면 저작권자도 1990년대 음반 호황기 때처럼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100위권에 입성하지 못할 경우 제작비 회수도 어렵다. 뮤직비디오를 찍지 않고 유명 가수를 고용하지 않을 경우 일반적으로 음원 한 곡의 제작비는 약 500만원을 넘지 않는데도 말이다. 마트에서 소비자가 접근하기 편한 곳에 진열해 놓은 상품이 잘 팔리는 것처럼 ‘멜론’ 등 사이트 역시 100위권 안에 입성한 인기 음악 위주로 곡을 전면 ‘진열’하고 있다. 제작사들이 유명 음원사이트에서 인기순위 100위권 안에 들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는 이유다. ‘멜론’ 100위권에 진입하기 쉬운 방법이 있다. 음악 서비스사업 ㄹ업체의 관계자는 “멜론 사이트 상단에 위치한 신곡 소개 구좌 3곳에 곡이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이 구좌에 올라가면 100위권 입성이 사실상 100% 보장”된다고 그는 말한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이 3구좌를 클릭하기 때문”인데 “이 ‘골든’ 구좌를 얻기 위해 유통·제작사 간의 소리 없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구좌를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멜론’의 주 유통사인 로엔엔터테인먼트에 유통을 맡기면 된다”고 털어놨다. “물론 로엔이라고 해서 유통되는 모든 음원을 ‘골든’ 구좌에 걸어줄 수는 없다.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 기획사의 곡이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유통사를 통하면 수익 중 9%를 추가로 떼줘야 한다. 음악 소비자 대부분은 100위권 음악을 주로 재생한다. 그러다 보니 최근 아이돌그룹은 물론 다양한 장르를 실험해온 유명 창작자들도 개성이 강조되는 음악보다는 대중적 코드에 맞춘 곡을 제작하는 분위기다. 최대한 100위권 내에 오래 머물기 위해서다. 인디밴드 ‘중식이밴드’의 보컬 정중식(32)씨는 뮤지션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토로했다. “실험적 음악 창작을 아직 포기하지 않는 뮤지션들의 경우 현재와 같은 플랫폼 위에서는 음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음원을 그저 홍보성 ‘명함’ 정도로 생각한다. 다양성이 배제되는 음원 진열 구조에서 점차 체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대안은 없을까. 박병운 위원은 “창작자의 경우 신생 음원사이트 ‘바이닐’(bainil)처럼 창작자에게 안정된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대안적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멜론’ ‘벅스’ ‘지니’ 등 기존의 음원 서비스 사업자에게 음원을 제공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음반을 판매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바이닐은 지난 7월 등장한 음원사이트로 기존의 음원사이트와는 다르게 창작자에게 가격결정권을 제공하고 있다. 이 사이트의 창작자 음원수입 분배 비율은 최고 74%에 달한다. 물론 지드래곤처럼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지 않은 경우 음반 자체 판매·유통은 쉽지 않다. 매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나 매체별 결산 때마다 새로운 음악인들이 등장한다. 박병운 위원은 “신인 음악인들이 보여주는 음악적 성취는 기존의 열악한 음악 풍토에 비추면 놀랍기 그지없다”며 “앞으로의 가능성이 충만한 음악인들에게 본의 아니게 가난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계가 명확한 거대 음원사이트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만이 음악인을 지지하는 방법은 아니다. 차라리 그들의 공연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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