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김해 봉황동 유적 조사현장을 위에서 내려다본 전경.
‘이 고만고만한 동네가 왕궁터였다고?’
경남 김해시 봉황동은 겉보기엔 살림집, 빌라들이 늘어선 옛 도심 주택가지만, 동네의 과거가 간단치 않다. 1899년 펴낸 <김해군읍지> 등의 문헌기록은 기원전후 김수로왕이 세운 금관가야의 왕궁터로 봉황동을 점찍었다. <김해군읍지> ‘고적조’에는 “수로왕궁지는 지금의 김해부에 있다고 전해지며, 고궁지는 서문 밖 호현리(현재 봉황동 일대)에 있다”는 기록도 전한다.
실제로 2015년부터 왕궁터의 실체를 찾기위해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8년 계획을 세워 봉황동 곳곳을 발굴중이다. 그 뒤로 매년 조사 성과를 발표해왔는데, 올해 성과에 유난히 학계의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새 정부가 가야사 연구 지원을 국정과제의 일부분에 포함시켜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궁궐터의 일부일 가능성이 있는 대형 건물터들을 비롯해 당시 가야인 유력계층이 썼을 고급스런 토기류들이 최근 봉황동 유적에서 잇따라 쏟아진 것이다.
유적 세부 모습. 유난히 큰 대형 건물터들이 중복된 양상이어서 금관가야 왕궁터 일부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올해 3월부터 봉황동 유적 북동쪽 대지를 조사한 결과 4세기 후반께 가야시대의 대형 건물터 10여기와 화로, 원통 등의 모양을 한 당대의 토기류 300여점을 발굴했다고 21일 밝혔다.
대형 건물터들이 나온 지점은 깊이 1.5~3m의 가야문화층이다. 이 층위에서 지름 10m를 넘는 타원형 건물터 바닥면들이 중복된 상태로 드러났다. 가장 큰 3호 건물터의 경우 민가 아래서 절반정도 전모가 드러났다. 폭이 15~12m로, 동그랗게 벽체를 두르고 안에 기둥을 세웠던 얼개를 띠고있다. 용도가 확실히 파악되지는 않았으나 규모가 주위 일대에서 과거 확인된 옛 건물터보다 훨씬 크고 얼개도 특이한 양상이어서 궁궐터 일부가 아니냐는 추론이 나온다.
줄이 그어진 삼각형 무늬(삼각 집선문)를 새긴 화로형 토기의 조각. 봉황동 유적의 대형 건물터 주위에서 나온 것으로 생활유적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고급스런 의례형 토기의 일종이다.
봉황동 유적에서는 고대 상류층의 술잔으로 쓰였던 각배 조각도 출토됐다. 실크로드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이다.
또하나 주목되는 것은 고급스런 토기류들. 인근 김해 대성동의 가야 우두머리급이 묻힌 고분에서 나왔던 화로모양 토기와 긴원통 모양의 그릇받침(기대) 조각들이 줄줄이 나왔다. 연속되는 동그라미 무늬를 안에 품은 채 막대기 모양으로 늘어뜨린 기대의 세로 띠 무늬는 처음 확인되는 양식이다. 원통형 기대는 가야의 수장급 고분에서 주로 출토되며, 생활유적에서는 발견된 사례가 없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전 김해 출토품인 기마인물형 토기의 윗부분 각배(잔)와 유사한 각배조각도 출토돼 눈길을 끈다. 각배는 유럽·중앙아시아·서역과의 실크로드 문화교류를 상징하는 유물이다.
연구소의 강동석 연구관은 “조사가 전반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지만, 건물터들이 이례적으로 크고, 토기들도 주변 지역 출토품과 달리 고급 의례용도인 것이 특징”이라며 “작년 발굴에서도 수레바퀴 모양(차륜형) 토기, 구슬?곡옥 등 장신구류가 나온 점을 감안하면 봉황동 일대에 유력한 상위집단이 살며 의례를 행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함께 출토된 원통형 모양의 그릇받침(기대) 조각. 가야고분의 껴묻거리(부장푸)로 출토되는 유물인데, 생활유적에서 나온 것은 전례가 없다. 동그라미 연속무늬가 새겨진 세로줄 띠가 물결무늬와 함께 등장하는 양식도 처음 확인되는 것이라고 한다.
봉황동 유적에서는 구한말인 1907년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내부의 회현리 패총을 조사한 이래 지금까지 부산대와 가야연구소 등이 70여 차례 발굴조사를 벌여왔다. 주거지터와 토성, 도랑, 접안시설 따위가 발견됐으나, 금관가야의 왕성터를 확증하는 단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가야왕궁의 실재 여부는 여전히 안개에 싸여있는 셈이지만, 왕궁의 존재 가능성을 높여주는 유적, 유물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도 조금씩 높아지는 분위기다. 연구소는 22일 오후 2시 현장설명회를 열어 발굴성과를 내보일 예정이다.
글 노형석 기자, 사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