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고국을 찾아와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고 강재언 선생. <한겨레> 자료사진
1960~70년대 조선근대사상사 연구를 개척한 대가인 재일역사학자 강재언 선생이 지난 19일 오전 일본 오사카 현지에서 노환(심부전)으로 별세한 사실이 21일 국내에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91. 선생의 지인들은 “유족들이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고인의 장례 의식까지 치른 것으로 안다”고 이날 전했다.
고인은 제주 출신으로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일본으로 밀항해 1953년 오사카상과대학(현 오사카 시립대학)을 수료했다. 81년 교토대에서 한국근대사 전공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은 뒤 교토 하나조노대학 교수를 지냈다.
그는 1954년, 당시 동학난으로만 인식되어 온 19세기 말 동학농민전쟁의 역사적 의미와 반봉건 반외세 전쟁의 성격을 본격적으로 부각시킨 논문 <조선봉건체제의 해체와 농민전쟁>을 발표하며 일본 학계에 조선근대사 전문가로 두각을 드러냈다. 70년 <조선근대사연구>를 펴낸 뒤로는 한국 근대사의 저변에 흐르는 개화사상과 개화운동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조명하는 작업에 말년까지 몰두했다. <한국의 개화사상>(1981) <한국근대사연구>(1982)<한국의 근대사상>(1985), <조선의 서학사>(1990) <조선유교의 이천년>(2000) 등의 저술들은 그 결실로 국내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노작들이다. 교토에 고려미술관을 세운 동포기업가 정조문이 70~80년대 개설한 일본 속 조선문화기행’의 주요 참가자였던 그는 조선통신사의 유산들을 알리는 데도 힘써 <조선통신사의 일본견문록>(2005)을 국내출간하기도 했다.
강 선생은 차별받는 재일동포들의 현실을 대변하는데도 관심이 깊었다. 현지 학계, 문단의 동포 지식인들과 75년 계간지 <삼천리>를 창간해 87년 종간 때까지 편집진으로 일했으며, 다른 잡지 <계간 청구>의 편집위원도 맡으며 동포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말년까지 애썼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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