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디지털뉴스팀 기자
지난 주말 바이크 동호인들의 ‘번개 모임’에 다녀왔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건 ‘일단은’ 중국 음식 마라탕이었다. ‘번개’의 최초 제안자는 서울경제신문
바이크 칼럼 ‘두유 바이크’를 연재하고 있는 유주희 기자. 유 기자가 주말에 마라탕 맛집을 방문하자는 제안글을 트위터에 올리자 바이커들이 하나둘씩 동참을 표시해 왔다. 때는 이때다. 덕(후) 중에 덕(후)들을 만날 수 있겠다. 참여 의사를 전달했다.
하필 날씨 예보에 비구름이 떴다. 모임 장소가 있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 건대 입구까지는 대략 15km, 초행길은 여전히 많이 긴장되기 때문에 비까지 내릴까 봐 걱정이 앞섰더랬다. 모임 당일 아침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다가 결국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 장소에 도착해 보니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와중에도 두 대의 바이크가 가게 앞에 서 있었다. 이렇게 모두 8명의 ‘트바움’이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직업이 UI 디자이너인 트바움이 제작한 ‘페미니즘 라이더 스티커’를 부착한 벤리 110.
“트위터에 트바움이라고 쳐봐요.” 처음 스쿠터를 사고는 모르는 것 투성이라 답답할 때 얻은 정보다. 가장 먼저 검색된 것은 ‘바이크 전도사’라는 아이디를 쓰는
배우 김꽃비의 트위트였다. 그에 따르면, 트바움의 정의는 ‘트위터 하고 바이크 타는 사람’이란 뜻이다. 다만 여기서 ‘움’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움(Wom)은 페미니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에 등장하는 단어로, 영어에서 맨(Man)이 인간을 대표하듯 이갈리아의 세계에서는 ‘움’이 일반적인 인간을 대표한다. 바이커라고 하면 고배기량의 바이크를 탄 남성의 모습을 떠올리는 고정관념을 단번에 깨는 단어였다.
실제로 여성 바이커들은 “여성분이 바이크 타세요?” 혹은 “여성분이 잘 타시네요”와 같은 말을 종종 듣는다고 고백한다. 마치 바이크가 남성의 전유물인 것처럼. ‘트바움’인 한 바이커는 이런 선입견에 답하는 스티커를 제작하기도 했다. 스티커에는 ‘여성처럼 달린다(Ride like a Girl)’, ‘남성분이 바이크 타세요?’ 등 여성 라이더 중심의 문구가 담겼다. 그렇다고 트바움에 여성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생활 속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남성들 또한 트바움이다. 이들의 친절하고 소소한 바이크 일기·조언·정보는 트위터에 언제나 열려있다.
역시나 이날 트바움들의 번개는 자연히 마라탕으로 시작해 바이크에 대한 이야기로 끝났다. 월동에 필요한 바이크 타이어 정보에서부터 올드바이크 구입기, 2종 소형 면허증 취득기까지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해도 피와 살이 되는 이야기가 오갔다. 5개월 차 바이커가 주워 담기엔 못 알아듣는 말이 너무도 많았지만 마음만은 든든했다. 언제든 나와 같은 고민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가까이 있다는 것. 그것만큼 힘 나는 일이 또 있을까.
김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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