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감포 대왕암에서 파도소리를 채록장비를 들고 녹음중인 김영일 작가.
676년 당군을 내몰고 한반도 통일을 마무리지은 신라 임금 문무왕(재위 661~681년)은 5년 뒤 동해바다 한가운데서 영원히 잠들었다. 신라고도 경주에서 추령 고개를 넘어가면 나오는 감포 해변 앞바다의 대왕암(해중릉)이다.
한국역사상 가장 뛰어난 제왕들 가운데 한분으로 손꼽히는 문무왕은 생전에 죽어 왜구를 막는 동해의 용이 되겠다고 유언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신라인들은 동해 대왕암에서 왕의 장례를 치렀다고 <삼국유사> 등의 사서는 전한다. 대왕암의 정체가 인공적으로 만든 무덤인지, 화장하고나서 유해의 재를 뿌린 산골처인지는 아직 수중발굴이 되지 않아,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고있다. 하지만, 거대한 바위 덩어리 사방으로 십자모양의 수로가 트여, 파도치는 바닷물도 한가운데 틈 안에 들어오면 잠잠해지는 대왕암의 신비스런 얼개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중견사진가이자 음반사 ‘악당 이반’을 운영해온 소리수집가 김영일(55)씨가 최근 대왕암의 우렁찬 파도소리를 담은 사운드아트 신작을 내놓았다. 지난 28일부터 서울역 옆 고가공원 ‘서울로 7017’ 보행로에 평창문화올림픽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하나로 출품된 ‘생태학 아카이빙-한국의 소리’란 작품의 일부다. 이 사운드 작품은 지난 10월말 문무왕의 기백이 깃든 대왕암에 작가가 찾아가 바위 사이를 휘감고 들어오는 파도의 현장음을 고감도 장비로 녹음한 결과물이다. 서울로 공원 보행로 곳곳에 배치된 폴대 스피커를 통해 행인들에게 현장음을 압축해 들려주고 있다.
과거에 대왕암을 답사하거나 조사한 전문가들은 더러 있었지만, 대왕암 바위에 발을 붙이고 파도소리를 직접 녹음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김 작가는 “20년 가까이 이땅 산하 곳곳의 소리들을 모아왔지만, 이렇게 웅장하고 힘찬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1400년전 문무왕의 포효를 듣는 듯했다”고 녹음 당시의 감동을 전했다. 이 사운드 작품은 내년 2월 말까지 들을 수 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박영우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