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전리 절터에서 나온 청동인장. 왼쪽 인장에는 '범웅관아지인'이란 글자가 새겨졌다. 오른쪽 인장은 ‘卍(만)’자처럼 글자선을 늘이거나 굽혀 연결한 모양새가 판독된다.
1200년전 통일신라 승려들이 썼던 청동도장(인장)이 강원도 산골 절터에서 나왔다.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최근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절터를 발굴조사한 결과 한변의 길이가 5.1㎝인 정사각형 청동인장 2점을 발견했다고 5일 발표했다. 끈을 달 수 있게 구멍이 뚫린 손잡이가 위에 붙어있고, 찍는 면(인면)의 글자는 돋을새김한 것이 특징이다.
인장 2점 가운데 한 점의 인면에 새긴 글자들은 '범웅관아지인'(梵雄官衙之印)으로 판독된다. 범웅은 '석가모니', '부처'를 다르게 부르는 존칭. 따라서, 글자들 전체 뜻은 부처의 관아, 즉 승관(僧官)의 도장이 된다. 연구소 쪽은 “‘범응관아’ 명문은 국내 문헌, 금석문을 통틀어 처음 나타나는 용어”라면서 “통일신라, 고려시대 관아의 도장은 모두 국가가 관리했으므로, 이번에 나온 인장명문들은 당대 승단 조직과 국가의 관계를 밝히는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고 했다. 또다른 인장의 인면에 새겨진 것은 ‘만(卍)’자처럼 글자선을 늘이고 굽힌 추상적인 기하문으로 판명됐다. 신라 청동인장은 경주 황룡사터와 경기도 양주 대모산성 등에서도 나온 바 있는데, 이번에 나온 유물은 황룡사터 출토품과 외형, 서체 등이 매우 닮았다는 평가다.
흥전리 절터에서 청동인장 2점이 발견될 당시 모습이다. 둘다 구멍뚫린 손잡이가 달렸다.
발굴 뒤 거둔 청동인장을 좀 더 가까이에서 찍은 모습. 인장 손잡이에 뚫린 구멍도 장식 문양처럼 조형성을 가미해 멋을 냈다.
연구소 쪽은 또 이번 발굴에서 간장, 된장 등의 식재료를 담아놨던 사찰 장고 터도 찾아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저장 항아리 12개를 묻었던 흔적들이 나왔다. 옛 장고 터는 남원 실상사, 경주 황룡사 터 등에서도 자취가 확인된 바 있다.
흥전리 절터는 문헌 등에 구체적인 내력이 전하지 않은 채 고려시대 허물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2014년부터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해왔다. 통일신라~고려시대 나라를 이끄는 큰 고승에게 주어지는 칭호인 '국통'(國統) 글자를 새긴 비석 조각과 화려한 금동번(깃발), 9세기께의 청동정병 등이 최근 수년간 잇따라 출토돼 학계의 주목을 받는 유적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불교문화재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