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미국 현지 경매에서 환수한 표암 강세황의 증손 강노의 초상. 표범 가죽을 씌운 의자에 앉은 반신상을 그렸다. 얼굴의 반점과 가는 터럭, 치켜 올라간 눈꼬리 등을 세밀하게 옮긴 사실적 묘사를 통해 그림 주인공의 강직한 성품과 기질을 엿볼 수 있다.
18세기 대화가 단원 김홍도의 스승이었고, 당대 문화예술계 최고 실력자(영수)로 추앙받은 문인화가 표암 강세황(1713~1791)은 원숭이상을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풍모의 자화상, 초상화로도 이름 높다. 이 표암의 초상을 포함해 그가 속한 진주 강씨 은열공파 가문의 시조 및 선조, 후손 6대에 이어진 초상화가 국내외에 흩어졌다가 처음 한자리에서 만나게 됐다.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10월 미국 현지 경매를 통해 표암의 증손 강노(1809~1886)의 초상화를 환수했다며 19일 작품을 공개했다. 재단 쪽은 10월초 국내외 유물 경매시장을 검색하다가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 에버러드 경매감정소에 강노 초상이 나온 사실을 파악하고, 현지에서 진품 여부와 소장 내력을 조사한 뒤 10월27일 진행된 온라인 경매에서 작품을 낙찰받았다고 전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인 강노의 선조들 4대의 초상화.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강현, 강세황, 강이오, 강인의 초상.
환수된 ‘강노 초상’(가로 47㎝, 세로 60.7㎝)은 표범 가죽 두른 의자에 관복을 입고 앉은 주인공의 상반신을 얇은 한지에 그렸다. 화면을 보면, 종이 뒷면에서 채색해 앞쪽으로 색이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배채법이 확인된다. 초상 오른쪽에는 그림 정보를 적은 화기(畵記)가 있는데, 강노가 71살이 된 기묘년(1879) 9월에 그렸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얼굴의 주름선과 콧등의 마마 자국, 수염 터럭 한올 한올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한 사실주의 작법으로 인물의 강직한 인격과 내면까지 표현하면서 조선 초상화의 특장인 전신사의(傳神寫意) 원리를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다. 그림을 분석한 김울림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은 “조선 초상화의 절정기는 18세기지만, 터럭 한올도 놓치지 않는 특유의 사실정신이 19세기에도 여전히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며 “서양화법에서 유래한 18세기 초상의 도드라진 음영법 표현이 원만한 필치로 토착화한 양상이 보이는 것도 주목된다”고 짚었다.
재단에 따르면, 경매에 초상화를 출품한 이는 서배너에 사는 현지인이었다. 뉴욕의 한 가톨릭교회가 자산처분을 위해 내놓은 것을 샀다고 한다. 추가 확인한 결과, 교회 쪽은 뉴욕의 옛 소장자로부터 그림을 포함한 전 재산을 기증받은 것으로 밝혀졌으나, 초상이 미국에 반출된 시점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재단 쪽은 전했다.
표암 강세황이 속한 진주 강씨 은열공파 가문의 시조인 강민첨의 초상화. 11세기 고려의 문신이자 장군으로, 강감찬과 더불어 거란족의 침략을 격퇴하는 데 큰 공로를 세웠다.
‘강노 초상’은 8일 항공편으로 들어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문화재청은 박물관을 그림을 소장, 전시할 관리기관으로 지정한 상태다. 앞서 박물관 쪽은 지난 9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표암의 아들 강인(1729~1791)의 초상을 구입한 바 있어, 국가보물로 소장해온 강민첨(강씨 가문 시조), 강현(표암의 아버지), 강세황, 강이오(표암 손자) 초상과 함께 국내 유일한 문인가문 6대 초상화 컬렉션을 갖추게 됐다. 배기동 관장은 6대 초상화를 함께 선보이는 특별전을 내년 8월 열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강노는 19세기 흥선대원군 집권 당시 병조판서, 좌의정 등을 지냈다. 1873년 대원군을 몰아내라고 상소한 최익현의 처벌을 주장하다 파직됐고, 이후 재등용됐으나 1883년 임오군란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아 귀양길에 오르는 등 파란만장한 말년을 보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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