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플로이드 <아톰 하트 마더>. 그책 제공
소년은 티브이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처음 듣고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음반점으로 달려갔다. 티브이에서 들은 ‘타임’이 들어 있는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을 사려 했지만 음반이 없어 다른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아톰 하트 마더>를 샀다. 이유는 단순했다. 어떤 설명도 없이 젖소 사진만이 가득한 커버에 끌렸기 때문이다. <아톰 하트 마더>를 들은 소년은 곧 핑크 플로이드와 프로그레시브 록에 빠져들었고, 30년이란 세월이 흘러 운명처럼 책 <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오브리 파월 지음, 도서출판 그책)의 번역자가 되었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경진의 이야기이다.
<아톰 하트 마더>에서 시작해 <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에 이른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톰 하트 마더>는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가 담당한 대표작이었고, <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는 힙노시스가 지금까지 작업한 373장의 모든 커버 아트와 주요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모아놓은 책이다. 핑크 플로이드를 비롯해 레드 제플린, 폴 매카트니, 예스, 피터 가브리엘, 유에프오, 레인보 등 지면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음악가의 커버 아트가 324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에 담겨 있다.
레드 제플린의 <인 스루 디 아웃 도어> 앨범 커버. 그책 제공
힙노시스는 스톰 소거슨, 오브리 파월, 피터 크리스토퍼슨 등이 중심이 돼 활동했던 디자인 그룹이다. 그들은 음반 재킷 디자인이 음악 자체와 상관이 있든 없든 좋은 디자인은 항상 사람들의 흥미를 일으킨다는 생각을 갖고 작업했다. 이들의 대담하고 새로운 방식에 감탄한 음악가들이 앞다퉈 작품을 의뢰했다. 음악가들과 신뢰를 쌓았고 음악 이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커버를 쏟아냈다. 때로는 초현실적으로, 때로는 아주 단순하게 다양한 작품세계를 펼쳐 보였다.
책 <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 그책 제공
<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의 표지로 쓰인 핑크 플로이드의 <위시 유 워 히어>를 비롯해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등 전성기 작품 대부분을 작업했고, 레드 제플린의 <인 스루 디 아웃 도어>, 피터 가브리엘의 <3>, 폴 매카트니의 <밴드 오브 더 런>, 티렉스의 <일렉트릭 워리어> 등 음악만큼 유명한 커버들이 그렇게 탄생했다. 자신들이 담당한 앨범의 음악들만큼 파격적이었고 진보적이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에이드리언 쇼너시는 <아톰 하트 마더> 커버를 가리켜 “상업성에 반하는 커버”라며 “앞면 커버에는 밴드 이름조차 나오질 않아서 향후 수십년간 모든 급진적인 커버 제작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힙노시스의 일원이었던 오브리 파월은 1973년부터 1982년까지가 자신들의 전성기였다고 말한다. 이는 곧 바이닐(LP)의 시대이기도 했다. 1980년대로 넘어가며 제작자들은 커버 아트보단 뮤직비디오 제작에 더 많은 돈을 투자했고, 자그마한 시디(CD)가 등장하며 커다란 커버는 조금씩 힘을 잃어갔다. 그래서 <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는 힙노시스의 역사이며 동시에 록 음악과 바이닐 시대의 역사를 담은 소중한 기록이다.
김학선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