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크리스마스의 ‘다양한’ 의미를 찾아서

등록 2017-12-22 19:56수정 2017-12-22 20:06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드라마 <커뮤니티> 크리스마스 특집편

누군가 해맑은 얼굴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친다면 대부분의 반응은 예의상으로라도 같은 인사를 되돌려주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미국 드라마 <커뮤니티>의 한 인물은 이렇게 반응한다. “‘즐거운 연말연시’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니?” 그는 ‘타 종교의 시선에 민감한 현대 기독교인’이다. 재밌는 건 정작 인사를 건넨 이가 이슬람교도라는 점이다. 이 짧은 대화는 <커뮤니티>가 흥미로운 이유를 보여준다. 작품의 중심 배경인 ‘그린데일 커뮤니티 칼리지’는 종교, 인종, 젠더 등 여러 층위의 다양성이 공존하는 곳이다. 사회적 평가는 학장이 엉겁결에 말한 대로 ‘주류사회에서 밀려난’ 이들이 모이는 ‘루저 칼리지’일지 모르나, <커뮤니티>는 크게 아랑곳 않는다. 이 작품은 차별적 평가 이전의 존재 그대로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탐구한다.

<커뮤니티>의 이 같은 매력이 잘 드러난 에피소드 중 하나는 2시즌의 크리스마스 특집이다. <커뮤니티>는 다양한 대중문화 패러디와 자유분방한 형식적 실험으로도 유명한데 이 특집편은 20분 전체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이 한편으로 다음해 프라임타임 에미상을 수상할 정도로 독립적인 완성도를 공인받았다. 에피소드 주인공은 자타공인 최고의 엉뚱 캐릭터로 꼽히는 아벳(대니 푸디)이다. 도입부에서 성탄 인사를 건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슬람계 미국인 아벳은 무슬림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크리스마스의 광팬이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 세상이 애니메이션으로 변한 것을 깨닫고, 올해 ‘우주 역사상 가장 중요한 크리스마스’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친구들은 평상시보다 더 엉뚱한 아벳의 이상 발언에 심리 치료를 권한다. 에피소드는 아벳이 친구들의 도움으로 심리 치료를 받으며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찾아가는 내용을 흥미진진한 판타지 어드벤처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낸다.

제일 흥미로운 것은 아벳에게 보이는 ‘현실’이 애니메이션이라는 데서 오는 아이러니다. 드라마 속 다른 인물들에게는 세상이 평상시와 똑같이 보이기에 아벳이 보는 ‘현실’은 망상에 불과하다. 드라마 바깥 시청자들의 경우 보이는 ‘현실’은 아벳의 시선과 일치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환상으로도 인식된다. <커뮤니티>는 이렇듯 시선의 안과 밖을 계속해서 뒤집으며 ‘현실’을 여러 층위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곧 다양성을 인정하는 최선의 태도다. 우리는 세상을 하나의 기준으로서가 아니라 늘 위치를 바꿔가며 여러 각도에서 바라봐야 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정관념을 교정해야 한다.

크리스마스 모험을 마친 뒤 <커뮤니티>의 인물들은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크리스마스가 하누카이고, 비디오게임만 종일 할 수 있는 날이며, 음악과 쿠키와 감초 크림이 있는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라는 생각’에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건 모두가 원하는 뭐든 될 수 있죠”라는 한 대사처럼 각자에겐 특별한 의미를 지닌 시간이 있고 그 생각은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고정관념에 바탕한 차별과 혐오의 언어가 그 어느 때보다 기승을 부린 한 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커뮤니티>의 이 에피소드를 떠올려본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어도어 “이사회 개최 거부”…민희진 대표 해임안 상정 ‘불발’ 1.

어도어 “이사회 개최 거부”…민희진 대표 해임안 상정 ‘불발’

한강에서 열리는 ‘수면 콘서트’…침대에 누워 잠들면 됩니다 2.

한강에서 열리는 ‘수면 콘서트’…침대에 누워 잠들면 됩니다

가치관이 너무 안 맞네…일드 ‘부적절한 것도 정도가 있어’ 3.

가치관이 너무 안 맞네…일드 ‘부적절한 것도 정도가 있어’

‘범죄도시4’ 개봉 5일 만에 400만…천만 달성 뒷심은 지켜봐야 4.

‘범죄도시4’ 개봉 5일 만에 400만…천만 달성 뒷심은 지켜봐야

이중섭·박수근의 가짜 그림 전시한 라크마는 답하라 5.

이중섭·박수근의 가짜 그림 전시한 라크마는 답하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