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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때 ‘아름다워서 슬픈’ 가리왕산도 기억했으면”

등록 2017-12-24 20:09수정 2017-12-24 20:42

【짬】 환경운동하는 사진가 조명환씨

조명환씨가 18일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달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명환씨가 18일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달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겨울이면 눈이 허벅지까지 쌓여 설피를 신고서도 겨우 올라갈 수 있는 강원도 정선의 가리왕산을 열여섯번이나 다녀온 사진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조명환(62)씨가 가리왕산의 사진으로 2018년도 달력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달력에는 흔히 “멋지지만 틀에 박힌 사진”이 아니라 평창겨울올림픽 스키 활강장을 짓느라 파괴된 가리왕산의 사진이 절반 이상 들어 있다. 달력의 제목조차 ‘아름다워서 슬픈, 가리왕산’이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효령로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조씨를 만나 산과 사진과 달력에 대해 인터뷰했다.

백두대간 종주하며 사진 찍다 ‘전업’
2006년부터 가리왕산만 16차례 촬영
스키활강장에 잘려나간 원시거목들
“밑동만 남은 설경조차도 아름다워”

사진집 작품으로 ‘2018년 달력’ 제작
“가리왕산 희생 기리는 푸닥거리라도”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그는 평범한 공학도의 길을 걸었다. 아이티(IT) 관련 회사를 10년간 다닌 뒤 직접 업체를 일으켜 10년간 운영했다. 50살이 되던 2004년 여름 백두산 여행 때 우연히 한 산악회원들과 동행하면서 등산과 인연을 맺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같이 산행합시다”라는 말에 덥석 그러자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매 주말 백두대간 산행이 시작되었다. 대학 시절 한양대 사진동아리인 ‘하이포’에서 활동하면서 상도 받았고 단체전도 열었던 열정이 되살아나 산 사진에 빠지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회사를 정리하고 조그만 스튜디오를 차려 산 사진가로 제2의 업을 찾았다. 백두대간 종주만 대여섯번 했다. 요즘은 금요일 밤에 출발하는 무박 산행이 유행이지만 예전엔 토요일 아침에 출발했기 때문에 하루 6시간 정도 걸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한 주도 빼먹지 않고 2년 조금 넘게 해야 백두대간 완주를 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환경 문제도 눈에 들어왔다. 그는 “산에서 환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백두대간을 몇번 오가면서 산길의 폭이 점점 넓어지고 시설물이 계속 늘어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러다가 어느 날 파괴의 현장을 보곤 욱하는 마음이 생겼다. 우리 땅의 ‘생것’(원형)을 찍어서 남기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조씨의 산행과 사진은 책과 전시로 이어졌다. ‘백두대간 생것들’을 시작으로 그동안 모두 8권의 책을 자비로 출판했다. 첫 책은 친구가 만들어줬으나 그 뒤부터 비용을 아끼기 위해 1인 출판을 하고 있다. 애초에 돈 벌 목적도 아니었지만 그동안 10% 정도도 안 팔렸을 것이라고 한다. 2011년엔 처음으로 굴업도에 갔다가 매혹되어 수차례 다니다 2013년 <굴업도 생것들>을 냈다.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의 대표인 건축가 김원씨는 조씨의 굴업도 사진에 대해 “거기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의 생명력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된다”고 평했다.

가리왕산은 2006년 처음 찾았다. 오지에 있어 사람의 접근이 어려웠던 덕분에 태고적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사계절을 카메라에 담기로 작정하고 수시로 그 험한 가리왕산을 올라갔다. 2011년 평창올림픽 유치가 확정되고 이듬해 스키 활강장이 들어서기로 확정이 되었다. 조씨는 이 무렵을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해인가부터 가리왕산의 거목들 허리에 노란 리본이 둘러지기 시작했다. 사형선고를 받은 나무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2014년 벌목이 시작되었고 순식간에 원시림이 사라졌다. 환경단체에서 조사해보니, 훼손 수목이 10만그루가 넘는다고 하더라. (평창)조직위의 조사에서도 경급(가슴높이 지름) 50㎝ 이상의 훼손 수목이 202주로 나타났다.”

가리왕산을 찍으면서 그는 자꾸만 분한 생각이 들었다. “벌목이 완전히 끝난 뒤 황폐해진 숲을 예상하고 겨울 가리왕산을 올랐더니 밑동만 남은 나무들이 눈에 덮여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어 언뜻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게 역설적으로 더 슬펐다.” 이렇게 찍은 가리왕산 사진으로 2015년 4월 사진집 <아름다워서 슬픈 가리왕산>을 내고 사진 전시도 열었다.

이번에 가리왕산 달력을 만든 이유에 대해 조씨는 작은 소망이 있다고 했다. “올핸 유난히 새해 달력이 드물어서 내가 볼 달력을 직접 만들기로 한 거예요. 물론 2018년 2월 평창겨울올림픽에 맞춰 망가진 가리왕산의 현장을 다시 상기시키자는 뜻이 강하죠. 주변에서 ‘평창, 평창’ 예찬하는데 그새 사람들이 가리왕산의 파괴를 다 잊어버린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달력이니 1년 내내 어딘가에 걸려 있을 것 아닌가?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들을 건드리고 싶어요. 책이든 달력이든 알리는 것이 가장 큰 목적입니다.”

그는 새해 2월 겨울올림픽 개막일에 즈음하여 ‘가리왕산 사진전’을 열고 싶어 장소를 찾아보고 있다. 사진전만이 아니라 예술인들을 모셔와서 가리왕산을 달래는 진혼굿도 열고 싶어 한다. “겨울올림픽 개막에 맞춰 푸닥거리라도 한판 해야죠.”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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