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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울다 미소짓게 하는 동주 형 ‘서시’는 엄청난 약”

등록 2017-12-28 19:08수정 2017-12-28 20:43

[짬] 윤동주 ‘100일 시음악제’ 여는 김발렌티노

김발렌티노씨가 26일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자신이 만든 윤동주 서시 엽서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김발렌티노씨가 26일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자신이 만든 윤동주 서시 엽서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김발렌티노(58)씨는 마흔살 넘어 꽤 오래 ‘병찬’이란 별칭으로 살았다. 술병을 차고 다녀서다. 2002년부터 8년 동안 모두 네차례 알코올 중독으로 폐쇄병동에 갇혔다. “아내가 당시 제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보여줬어요. 미친개더군요.” 2010년 8월 병원 문을 나선 뒤 ‘모범적인’ 치유의 길을 걷고 있단다. 정신과 약을 의사 동의 아래 끊은 지도 5년이 됐다.

“병원장께서 제가 (알코올 중독으로) 아내 가슴에 박은 가시는 아무도 못 뺀다고 하더군요. (가시를 빼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뿐이죠.” 이 ‘돌아온 탕아’가 오는 3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윤동주 탄생 100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잔치를 연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30일 태어났다.

지난 9월부터 열어온 시음악제 포스터
지난 9월부터 열어온 시음악제 포스터

기자와 만난 지난 26일에도 그는 언덕을 올랐다. 9월22일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언덕에서 윤동주 ‘서시’ 엽서를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있다. “엽서를 5천장 정도 찍었어요. 지금은 거의 다 나갔어요. 어떤 날은 300장을 배달하기도 했죠.” 엽서 앞면엔 그가 형님으로 부르는 윤동주의 ‘서시’, 뒷면엔 자작시 ‘향’이 김발렌티노 글씨로 적혀 있다. 언덕에서 ‘형님 시’를 낭송하거나 그가 ‘형님 시’로 만든 노래 ‘새로운 길’을 부르기도 한다.

이 시음악제는 꼭 100일이 되는 30일 오후 1~4시에 열리는 행사로 마무리된다. 이날 기타리스트 김광석, 마임 예술가 유진규, 캘리그래피 작가 이상현, 대금 연주자 이웅열, 춤꾼 장일승 등이 참여한다고 했다. 그가 랩을 담당하는 3인조 밴드 킥킥브라더스(보컬 권우유, 트럼본 윤재형)도 나온다. “누구나 와서 윤동주 시 한편을 무대에서 직접 읽는 기쁨을 만끽했으면 해요. 영화 <동주>를 만든 이준익 감독도 오면 좋겠어요. 얼마나 윤동주를 좋아했으면 영화로 만들었을까요.”

9월 이후 청운동 ‘윤동주 언덕’서
시 낭송과 노래 공연, 엽서 배달
30일 성대한 생일잔치로 마무리
김광석·유진규·킥킥브라더스 등 출연

“마흔 넘어 술에 빠져 가족에게 고통
중독 치유하러 1500일 시 배달도”

“언덕에서 꼭 만나야 할 세가지가 있어요. 맞은 편에 보이는 하얀 십가가와 거기 내려와 앉는 까만 까마귀 그리고 서시 시비 뒤편에 새겨진 ‘슬픈 족속’이란 시입니다.” 왜? “햐안 십자가가 빛이라면 저 같은 사람은 까만 까마귀이죠. 방문객들은 보통 ‘서시’만 읽고 갑니다. (‘슬픈 족속’ 시를 읽는 행위는) 앞만 보지 않고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죠.”
“언덕에서 꼭 만나야 할 세가지가 있어요. 맞은 편에 보이는 하얀 십가가와 거기 내려와 앉는 까만 까마귀 그리고 서시 시비 뒤편에 새겨진 ‘슬픈 족속’이란 시입니다.” 왜? “햐안 십자가가 빛이라면 저 같은 사람은 까만 까마귀이죠. 방문객들은 보통 ‘서시’만 읽고 갑니다. (‘슬픈 족속’ 시를 읽는 행위는) 앞만 보지 않고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죠.”

충북 괴산이 고향인 그는 시를 사랑하는 문학소년이었다. “고교 시절 문학서클을 했어요.” 지금도 시 창작은 삶의 일부다. 그가 쓴 세월호 1주기 추모시 ‘너’는 2015년 4월16일치 <내일신문> 1면에 실렸다.

알코올 중독 환자가 된 뒤 시는 이전과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단다. “마지막으로 병원을 나서고 1년쯤 지난 2011년 7월부터 1500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 배달을 했어요. 매일 한지에 붓글씨로 시를 쓰고 장미꽃 한송이와 함께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전했어요.” 왜? “술을 안 먹기 위해 일기 쓰듯 한 일입니다. 밖에 나가면 다 술이잖아요. 100일과 365일 되던 날엔 최승호 시인과 황지우 시인에게 시 배달을 했어요.”

2012년 12월24일 본명을 버리고 가톨릭 영세명으로 이름을 바꾼 것도 “술을 끊기 위한 장치”라고 했다. 그는 2006년 가톨릭에 입교했다. “신자가 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죠. 영세를 받은 뒤에도 두번 더 병원 신세를 졌어요.”

밴드 킥킥브라더스. 왼쪽부터 김발렌티노, 윤재형, 권우유씨.
밴드 킥킥브라더스. 왼쪽부터 김발렌티노, 윤재형, 권우유씨.

그에게 시는 ‘엄청난 약’이다. 특히 윤동주의 ‘서시’가 그렇다. “중독은 불치병입니다. 영원히 치유가 되지 않아요. 스스로 항상 경계하고 늘 반성해야 합니다. 윤동주 ‘서시’는 끊임없이 저를 때리는 채찍질이죠.” 말을 이었다. “‘서시’엔 부끄러워하고 참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나옵니다. 저는 너무 부끄러운 사람이거든요. 시 마지막에 나오는 초라한 별빛은 저의 길을 비춰주는 빛이죠. 저의 잘못된 생애를요. 길을 가다 이 시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 시에 희망도 있죠. (‘서시’는) 결국엔 저를 미소짓게 만듭니다.”

김수영과 백석의 시도 좋아한다. “4년 뒤엔 김수영 탄생 100년이 됩니다. 그때도 100일 시음악제를 할 겁니다. 윤동주 별세 100년이 되는 2044년도요. 그때는 제가 85살이 되지요.”

왜 생을 포기하려고 했을까. “가까운 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어요. 그 때문에 아내와 두 아들이 큰 고통을 겪었죠. 지금은 가정을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인생은 아름다와라.’ 그가 2년 전 서울 불광동에 연 카페 이름이다. “카페를 오후 5시에서 새벽 2시까지 엽니다.” 카페는 집이기도 하다. “의자 3개를 붙여놓고 잡니다. 감사하지요.” 카페엔 라이브 음악이 흐르고 시 낭송도 한다. “힘들었던 모든 생명은 다 오라는 의미로 카페 이름을 지었어요.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려고요.” 알코올 중독자 가족들이 카페를 자주 찾는다고 했다. “모든 중독의 첫번째 이유는 외로움입니다. (중독자와) 친구가 되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지난 1월 김발렌티노씨가 연 전시회 포스터.
지난 1월 김발렌티노씨가 연 전시회 포스터.

3년 전 아들뻘 되는 청년 둘과 결성한 밴드 킥킥브라더스는 가출 청소년이나 노숙인 대상 공연을 주로 한다. 지난 4년 동안 경찰서 유치장을 찾아 감금된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원봉사도 했다. “폐쇄병동에 있을 때 새 인생을 살면 갇힌 분들을 위해 살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병동에서 큰 폭력을 당했어요. 머리를 민 것도 돌발상황이 종종 생기는 병동에서 좀더 강하게 보이려는 마음 때문이었죠.” 지난 2년 동안 시서화전을 4번 열었고 연극(<요셉 임치백>) 무대에도 섰다. 요즘 그의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은 ‘함께하는 세상’이다. “함께하려면 싸우지 않아야 합니다.”

‘시의 힘’은? “사랑입니다. 시는 뿌리이기 때문이죠.” 그가 황지우 시인에게 장미꽃 365송이와 함께 시 선물을 배달했을 때 시인은 그에게 ‘시란 뭐냐’고 물었단다. “음핵이라고 답했죠. 시는 드러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의 뿌리가 됩니다. 시는 지상의 열매를 꿈꾸지 않고 한방울의 물을 빨아들이기 위해 어둠 속으로 더 뚫고 들어갑니다. 저도 그런 삶을 꿈꿉니다.”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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