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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나 빼!” 한국 힙합씬에 일갈

등록 2018-02-04 16:00수정 2018-02-04 20:31

래퍼 화지, 새 앨범 ‘WASD’서
대기업 자본에 의지하는
‘쇼미더머니’ 중심 현실 비판
래퍼 화지. 인플래닛 뮤직 제공
래퍼 화지. 인플래닛 뮤직 제공
다섯 살에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중학생 때 잠시 한국에 들어온 적이 있지만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줄곧 미국에서 생활했다. 미국에선 제일 대중적인 음악이었기 때문에 중·고등학생 때부터 힙합을 들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자연스럽게 랩을 하며 장난처럼 서로를 디스했다. 미국에서 듣는 한국 힙합도 멋있었다. 다이나믹 듀오와 가리온, 이센스, 마스터 우를 들으며 한국을 동경했다.

한국 힙합에 대한 동경으로 2011년 한국에 건너왔다.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한국에 와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말할 화(話)에 종이 지(紙)를 써서 ‘화지’란 이름을 만들었고, 그동안 정규 앨범 두 장과 디지털음반(EP) 한 장을 발표하며 한국 힙합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두 장의 앨범 모두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힙합 앨범상’을 받는 성과를 거두었고, 그가 쓰는 깊이 있는 가사와 은유는 그를 한국에서 드문 힙합 작사가로 만들어주었다.

화지가 최근 발표한 디지털음반의 제목은 <더블유에이에스디>(WASD)다. 더블유에이에스디는 1인칭 게임에서 캐릭터의 방향을 움직일 수 있게 해주던 키보드 자판을 의미한다. “키보드로 방향을 전환하고 마우스로 전방위적인 화면을 둘러보며 시야를 넓힌 것이 ‘신세계’처럼 다가왔던” 그 순간을 기억하며 “지금까지 해왔던 움직임을 벗어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다는 뜻에서 제목을 <더블유에이에스디>로 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더블유에이에스디>는 화지의 지난 작업과는 조금 다르다. 지난 앨범들이 확고한 세계관이 담겨 있고 일관된 스토리가 있어 “왠지 각 잡고” 들어야 했다면 <더블유에이에스디>는 상대적으로 더 편한 상태로 작업했다. 지난 앨범에서 가져온 ‘21세기 히피’라는 캐릭터를 이어 좀 더 세상을 관조하며 그 안에 몸담기보다는 관망하듯 바라본다.

첫 곡 ‘나 빼’에서 화지는 “한국 힙합에 나 빼/ 싸울 시간 내 음악 해/ 뭐 비록 여긴 대기업에 몰락했지만”이라며 자신을 지금 한국 힙합에서 빼라고 말한다. 그가 동경했던 한국 힙합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 힙합은 <쇼미더머니>에 출연하는 래퍼와 출연하지 않는 래퍼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지는 <쇼미더머니>에 출연하지 않으며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대표적인 래퍼다. ‘나 빼’의 의미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돈은 버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냥 내가 (쇼미더머니에 출연하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 것뿐이지, 오랫동안 힙합 신에서 활동하며 지쳐 있다가 그걸 생활의 탈출구로 선택하는 걸 절대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런 선택을 해서 간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을 조롱하듯 가사를 쓰거나 언더그라운드 어쩌고 하는 걸 이해하기는 어려운 거죠.”

이런 피곤함 때문에 한국 힙합에서 날 빼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걸 신경 쓸 시간에 어린 시절 가졌던 작가의 꿈을 떠올리며 꾸준히 글을 쓰고, ‘토종’ 래퍼들이 의미 없이 영어 욕을 섞으며 랩을 할 때 한국어 가사를 더 잘 쓰기 위해 계속해서 생각하고 가사를 다듬는다. 그게 지금의 래퍼 화지를 만들었다. 한국 힙합의 모든 부정적인 요소 반대편에 화지가 있다.

김학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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