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홍대 앞엔 아직도 돈으로 못 사는 그 무엇 있죠”

등록 2018-02-06 08:01수정 2018-02-06 14:49

공연장 ‘벨로주’ 10년 맞은 박정용 대표
“음악 있는 공간 만들고 싶어”
네이버서 나와 차린 ‘벨로주’

록 음악 공연 일색 탈피해
재즈·포크·월드뮤직 무대 세우며
‘홍대음악’ 산실로 자리매김

자본의 습격 견뎌낸 10년 자축하며
이승열·3호선 버터플라이·김목인 등
함께 성장한 뮤지션들과 3월 기념공연
10주년을 맞은 공연장 ‘벨로주’의 박정용 대표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 벨로주 무대 위에서 사진 취재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0주년을 맞은 공연장 ‘벨로주’의 박정용 대표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 벨로주 무대 위에서 사진 취재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두가지 목표를 세워두었다. 마흔이 되면 음악이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쉰이 되면 작은 도시에 내려가서 사는 것. 한겨레문화센터를 시작으로 라이코스, 네이버에서 콘텐츠 기획자로 일했다. 네이버 뮤직과 네이버 스포츠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던 그는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 마포구 서교동 2층에 음악이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평일에는 좋은 음악이 흐르는 카페였고 주말에는 공연을 하는 공간이었다.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지금 네이버 임원이 돼 있다. 이른 선택이었을 수 있지만, 그래도 퇴직금으로 원하는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일찌감치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자고 마음먹었다. 공간의 이름은 브라질의 전설적인 음악가 카에타누 벨로주에게서 따온 ‘벨로주’였다. 꼭 10년 전인 2008년, 직장인 박정용은 카페 사장 박정용이 됐다.

서교동에서 시작한 벨로주는 같은 동네에서 3번을 이사했고, 현재는 망원동의 건물 4층에 터를 잡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벨로주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3면의 벽을 가득 채운 시디였다. 음악은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자양분이었다.

벨로주는 기존의 음악 공간들과 다르다. 흔히 ‘음악 바’ 하면 ‘아저씨 취향’의 지하 어둑한 분위기가 연상되지만 벨로주는 일부러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잡았다. 신청곡도 받지 않았다. 지겹도록 ‘호텔 캘리포니아’를 트는 대신 자신이 선곡한 노래를 틀었다. 카에타누 벨로주에게서 상호를 따온 것에서 알 수 있듯 록 음악 위주에서 벗어난 재즈, 포크, 월드뮤직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밝은 볕 아래서 울려 퍼졌다. 프리재즈 거장 강태환, 재즈펑크 밴드 세컨 세션, 싱어송라이터 웨스 에이치큐 등 록 음악 일변도에서 벗어나 대중적이진 않지만 의미 있는 공연들을 예나 지금이나 벨로주 무대에 세우려 한다.

지난해 5월26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밸로주에서 우주히피(위)와 박지하가 공연하고 있다. 벨로주 제공
지난해 5월26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밸로주에서 우주히피(위)와 박지하가 공연하고 있다. 벨로주 제공
“제 취향이기도 하고 일부러 차이를 두려고 한 것도 있어요. 기존과 다르게 해서 경쟁력을 갖겠다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제 성향을 드러내려 한 거죠. 지금이야 어쿠스틱한 음악이 유행하고 있지만 벨로주에서 처음 그런 스타일의 공연을 할 때만 해도 당시 홍대에선 그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없었어요.”

이 ‘다름’은 벨로주를 더 돋보이게 했다. 벨로주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벨로주에서 공연하는 팀도 당시의 홍대 분위기와는 달랐다. 또 많이 공들인 게 느껴지는 조명과 사운드도 벨로주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공간을 마음에 들어 한 이승열은 아예 (브이) 앨범 녹음을 벨로주에서 했다. 홍대에서 공연을 자주 보는 이들에게 벨로주는 사운드와 분위기 모두 가장 선호하는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벨로주의 10년이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여러번 이삿짐을 쌌다 풀었다 한 배경엔 그 어려운 사정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를 잘나가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으로 보지만 사실 10년 내내 초조함과 불안함 같은 게 있었어요. 역시 경제적인 이유가 제일 컸는데 10년이 되어서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걸 곁에 둔다 해도 결국은 그런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래서인지 이제는 좀 편해졌어요.”

10년을 맞아 벨로주는 큰 변화가 생겼다. 망원동으로 이사했던 벨로주는 서교동에도 공간을 만들어 동시에 두곳을 운영하게 됐다. 박정용 대표는 “홍대에서 이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어쩌면 서울에서 가장 상업화된 곳이 홍대지만 아직도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움직임과 영역이 남아 있는 동네 역시 홍대라고 생각해요. 그런 동네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관계들을 맺었다는 것,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깊이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래서 작은 도시에 내려가 살겠다는 쉰살의 계획은 당분간 실행하기 어렵게 됐다.

‘홍대 피플’들이 아끼는 공연장인 서울 홍대 벨로주가 10주년을 맞았다. 벨로주 페이스북 갈무리.
‘홍대 피플’들이 아끼는 공연장인 서울 홍대 벨로주가 10주년을 맞았다. 벨로주 페이스북 갈무리.
10주년을 맞아 벨로주는 가장 벨로주다운 방식으로 자축 행사를 연다. 거창하게 인기 가수들을 부를 법도 하지만 벨로주에서 처음 공연했던 음악가나 그동안 벨로주 무대에 자주 서온 음악가들을 10주년 무대(3월1~4일, 9~11일)에 세우기로 했다. 10년 전 벨로주의 첫 무대에 섰던 시와를 비롯해 이승열, 3호선 버터플라이, 디어 클라우드, 안녕하신가영, 김목인 등 벨로주와 깊은 인연을 맺으며 함께 성장해온 음악가들이 10년을 축하해준다.

박 대표 스스로는 벨로주의 10년을 이렇게 평가했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가진 공간을 운영해간다는 건 시간을 쌓고 견디는 일이에요. 돈이 많으면 근사한 인테리어와 훌륭한 스태프를 데리고 멋진 문화공간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 공간의 색깔이 만들어지는 건 시간을 쌓고 견뎌야만 가능한 거고, 그건 누구에게나 공평해요. 그래서 처음 공간을 만들었을 때의 의도와 목표, 마음과 뜻을 버리지 말고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0년을 돌아보자면, 그래도 그동안 벨로주의 색깔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

김학선 객원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