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대통령 관저 북쪽 보안구역에 자리한 석불좌상. 1974년 서울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래 44년 만에 국가보물로 지위가 격상된다.
경주 옛 자리 반환을 놓고 학계와 종교계 등에서 논란을 빚어온 서울 청와대 경내의 통일신라시대 석조여래불상(청와대 불상·서울시유형문화재 24호)이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격상된다. 청와대 불상이 보물이 되면 관할권이 서울시에서 국가(문화재청)로 넘어가 불상의 경주 이전을 둘러싼 행정적 논의가 정부 차원에서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위원장 신승운 한국고전번역원장)는 8일 낮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회의를 열어 청와대 불상의 국가보물 지정 안건을 공식 의결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위원들이 9세기께로 추정하는 불상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별다른 이견 없이 지정 안건을 통과시켰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곧 관보에 정식공고를 내어 청와대 석조여래불상을 보물로 지정예고하고 30일간의 의견수렴 기간을 거쳐 최종 확정하게 된다.
문화재위 동산분과는 지난해 9월 서울시 문화재위원회가 청와대 불상의 국가보물 지정 건의안을 의결해 문화재청에 올린 뒤로 연구팀을 꾸려 불상의 양식적 가치, 보존 상태 등에 대한 심층조사를 벌여왔다. 조사팀에는 불교미술사학자인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와 정은우 동아대 교수, 동산분과 위원인 배재호 용인대 교수, 손영문 문화재청 전문위원이 참여했다. 이들은 그동안 몇차례 검토회의를 열어 청와대 불상이 보물급 가치가 충분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명대 교수는 보고서에서 “통일신라 석불상들 가운데 보기 드물게 불상 전체가 온전하게 보존된 완형”이라며 “당당하고 강건한 몸체와 표정, 다른 불상들에서 찾기 힘든 독특한 사각형 대좌 등 9세기 당대의 신라 불상들을 대표하는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청와대 불상은 1912년 연말 경주에서 서울 예장동 왜성대에 있던 조선총독관저로 옮겨진 것으로 전해진다. 1912년 11월 데라우치 마사타케 초대 총독의 경주 순시 당시에 환심을 사려는 현지 일본인 유지가 갖고 있던 불상을 밀반출했다고 알려져 있다. 데라우치는 이듬해 2월 관저에서 불상의 개안식을 열고 사진까지 찍었으나 한동안 이런 사실은 묻혀 있다가 1934년 3월 <매일신보>에 총독부 박물관이 불상 소재를 찾았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존재가 세간에 드러났다. 그 뒤 1939년 북악산 기슭 청와대 자리에 새 총독관저가 지어지자 다시 옮겨져 지금에 이른다.
해방 뒤 이승만~박정희 정권 시기 불상은 1974년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된 것 외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았으나, 90년대 초 김영삼 정권 때 개신교도인 대통령이 불상을 몰래 치웠다는 괴소문이 교계에 돌면서 다시 세상의 눈길을 끌게 된다. 특히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뒤로 경주의 시민단체와 문화재단체 등에서 불상 반환을 요구하는 성명 발표와 청원서 발송이 잇따랐고, 8월 문재인 대통령이 반환할 수 있는지 여건을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청와대 불상의 경주 귀환은 문화재 학계와 불교계, 경주 현지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상태다.
경주에 청와대 불상이 원래 있던 자리는 명확하지 않다. 학계에서는 청와대 불상과 빼닮았으나 목은 없는 쌍둥이 불좌상이 나온 경주 남산에 있었다는 설과 1939년 총독부 박물관 조사 당시 반출터로 지목한 경주 도지동 이거사(유덕사)터 설이 엇갈리고 있다. 문화재청 쪽은 “보물 지정 검토를 위한 과학조사를 통해 불상의 석재가 남산과 이거사터 등에 분포한 경주 지역 암석의 재질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확인했으나, 구체적인 장소를 특정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복원과 원위치 확인을 위해서는 좀더 심도있는 조사연구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이와함께, 문화재청 관계자는 청와대 불상을 받치는 사각 중대석이 국립춘천박물관 경내에서 따로 발견됐다는 학계 일부의 주장과 관련해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벌인 조사 결과도 이날 밝혔다. 현재 청와대 불상 아래 놓인 상대석과 춘천박물관 소장 중대석의 표면과 재질을 비교해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암질이 일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중대석을 청와대 불상의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내용이다. 앞서 불교미술사가인 임영애 경주대 교수는 춘천박물관 경내에서 발견된 중대석이 청와대 불상 상대석과 한갖춤의 석물이었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지난 연말 학술지 <미술사학연구> 296호에 발표한 바 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