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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고구려 고분은 ‘평창 아이돌’의 보물창고

등록 2018-02-27 17:29수정 2020-12-27 17:32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평창올림픽 개폐막 무대에 오른
덕흥리 고분 벽화 ‘인면조’와
강서대묘 벽화 속 ‘백호’에
한국 관객 물론 전세계 열광
미래 콘텐츠 무한 잠재력 확인
학계-업계 신산학협력 연구 필요
2018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상상의 동물 인면조. 하얀 색감에 치마와 소매가 넓은 고구려풍 복식을 입은 무희들이 뒤에 보인다.  평창/연합뉴스
2018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상상의 동물 인면조. 하얀 색감에 치마와 소매가 넓은 고구려풍 복식을 입은 무희들이 뒤에 보인다. 평창/연합뉴스
놀라운 혁신이었다. 이 땅의 고대 문화유산들이 올림픽 마당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활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지난 9일과 25일 열린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에서 1500여년 전 우리 고대 유산들은 무덤 속에서 뛰쳐나와 스타로 떠올랐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새의 몸체를 하고서 기린처럼 긴 목에 갓 쓴 미남자의 얼굴을 얹은 인면조가 백미였다. 고구려 벽화 고분의 이미지에서 따온 반인반수의 기괴한 동물은 날개를 펄럭거리며 정교한 움직임으로 무대를 휘젓고 다녔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에스엔에스 등에서 팬덤을 형성했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인면조. 이번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나온 인면조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인면조. 이번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나온 인면조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개막식에는 인면조의 배경으로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나온 춤 장면이 현실로 나타났다. 저고리를 길쭉하게 늘이고 허리에 끈을 맸으며 옷감에 점들이 찍힌 벽화 속 무희의 복식은 흰 바탕에 먹점을 찍은 듯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새단장했다. 개막을 알리는 평화의 종이 울리자 아이들을 축제의 마당으로 이끌고 간 동물은 강서대묘의 고구려 벽화에서 튀어나온 백호였다. 첨단 디지털 이미지로 재현된 백두대간 위에서 고구려 벽화의 사람과 신수들이, 서낭당 만신들과 함께 뛰놀았다. 대중은 여태껏 몰랐던 우리 고대 유산의 진면목에 열광을 보냈다.

평창올림픽은 첨단 아이티 기술력과 고대 유산들의 콘텐츠가 찰떡궁합을 맞춘 성과로 평가된다. 개폐막식엔 고구려 문화의 재발견이란 콘셉트가 짙게 깔려 있다. 밑그림을 만들 때 송승환 총감독은 고구려 벽화의 최고 권위자인 전호태 울산대 교수 등 문화재 학계 전문가들과 기획 단계에서 세심한 교감을 나눴다고 한다.

중국 만주 집안(지안)에 있는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나오는 무희들의 춤 장면. 평창올림픽 개회식 때 선보인 군무의 복식과 춤사위는 이 벽화의 모티브를 반영해 만들어졌다.
중국 만주 집안(지안)에 있는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나오는 무희들의 춤 장면. 평창올림픽 개회식 때 선보인 군무의 복식과 춤사위는 이 벽화의 모티브를 반영해 만들어졌다.
고구려는 한국의 영어 이름 코리아의 기원이 된 고려 국호를 5세기 장수왕 때 가장 먼저 썼으며 한반도 문화의 기본 원형을 만든 나라다. 고구려 문화의 특징인 개방성과 창조성이 이번 개폐막식에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 성과의 원동력이라 할 만하다. 중국 고대의 지리서 <산해경>에 이미 원형이 등장하고 도교·불교의 도상으로서 동아시아에서 장수, 평화, 천인합일의 메신저로 받아들여진 인면조를 고구려인들은 여러 벽화에 독창적인 모양새로 바꿔 그려넣었다. 동아시아 공통의 신령한 동물인 인면조를 대표 이미지로 등장시키고 그 얼굴은 조선시대 각시탈의 형상으로 만든 것은 절묘한 문화사적 혼성이라 할 수 있다. 전호태 교수는 “고구려가 다민족 국가로서 보편성과 고유성이 잘 혼합된 고구려 특유의 브랜드 문화로 모든 걸 통합시켜 갔기 때문에 그런 정체성이 21세기 글로벌 시대 다민족 국가로 변해가는 지금 한국적 상황에서 설득력을 얻은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얼마 전 시왕도 같은 전통불화를 모티브 삼은 주호민 원작 영화 <신과 함께>가 대박을 친 사례도 비슷한 흐름으로 비친다. 고대사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 차원 접근을 넘어 문화유산의 이미지와 감성 그 자체에서 예술작업이나 디자인의 영감, 모티브를 길어올리는, 진화된 양상이 도드라지고 있는 것이다. 고대 유산의 콘텐츠 잠재력은 일찍부터 학계에서 주목해왔지만, 대중의 관심이 증폭되는 양상은 평창이 몰고 온 변화다. 고구려 벽화나 백제·신라의 고분 부장품, 공예품, 기와 등에 보이는 문양과 동식물, 자연신 등의 이미지들은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보고다. 수년 전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영산강 반남면 고분 출토의 용머리 달린 신발이나, 경주 신라고분 식리총에서 나온 금동신발 바닥의 괴수 문양, 그리고 월성에서 나온 사슴 무늬 전돌의 아련한 미감 등은 콘텐츠업계 사람들이 눈여겨봐야 할 고대 유산의 금맥들이다. 이제 콘텐츠 업계와 문화재 학계가 손잡고 경계를 건너뛰는 문화재 산학 협업이 본격화해야 할 시점이 됐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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