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정원영이 5일 서울 마포구 씨제이아지트(CJ Azit) 녹음실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정원영은 3년 만에 발표하는 새 음반 <테이블세터>를 이곳에서 녹음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네버 렛 미 고’(Never Let Me Go)를 녹음한 날은 무척이나 추웠다. 소음 때문에 난방기를 틀지 못해 녹음실은 추웠고 피아노 건반은 얼음장 같았다. 여섯 번 정도 녹음을 반복한 뒤 얼어붙은 손을 화장실 히터에 녹인 뒤 다시 녹음했다. 열 번의 녹음 가운데 일곱 번째 이후 녹음을 사람들은 추천했지만 정원영은 다섯 번째 녹음을 택했다. “뒤에 녹음한 것들은 손이 다 풀려서 너무 깨끗하게 녹음이 됐어요. 다섯 번째 녹음은 잡음도 들어갔고 꽁꽁 언 손으로 녹음했지만 그날의 추웠던 순간과 긴장감이 다 담겨 있어요.” 그렇게 정원영의 신곡 모음집 <테이블세터>가 만들어졌다.
테이블세터는 야구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다. ‘밥상을 차려준다’는 뜻 그대로 중심타선에 기회를 만들어주는 1, 2번 타자를 뜻한다. ‘앨범’도 아니고 ‘미니앨범’도 아니고 ‘신곡 모음집’이란 말은 아무래도 생소하다. 그는 이번에 발표한 3곡, 여름쯤 발표할 5곡, 그리고 이후 발표할 3곡을 묶어 한장의 앨범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그는 이 신곡들이 앨범의 1, 2번 타자라 생각하고 제목을 <테이블세터>라 지었다.
대중에게 정원영은 ‘교수’ 혹은 ‘심사위원’이란 수식어가 더 친숙하겠지만 그는 여전히 활발하게 음악을 하는 음악가다. 석기시대, 사랑과 평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등의 밴드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했고, 미국 유학 뒤 이른바 ‘버클리 1세대’로 불리며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또 호원대학교에서 실용음악과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실용음악과 교수 직함을 갖고 그처럼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음악가는 드물다. 그에겐 음악이 여전히 가장 즐겁다. 선배 음악가로서 후배들에게 음악을 계속 열심히 하게끔 모범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주위에선 또 언제 준비 다 했냐고 놀라는데 전 이게 가장 재미있거든요. 곡 써서 소리 들려주는 게 가장 즐거운 일이에요.”
음악은 자기 안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3년 전 발표한 7집 <사람>은 온전히 세월호를 위한 것이었다. 앨범을 발표한 뒤 그는 별다른 홍보 없이 그저 음악으로 추모했을 뿐이다. 이번에 발표한 신곡 ‘친구에게’와 ‘네버 렛 미 고’ 역시도 추모와 그리움을 담고 있다.
‘친구에게’는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어린 시절의 친구에게 바치는 곡이고, ‘네버 렛 미 고’는 조동진을 비롯해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음악가들을 추모하는 곡이다. ‘네버 렛 미 고’는 노벨문학상(2017)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에서 제목을 따왔다. “마음속의 감정을 다 털어내지 않으면 그다음으로 가기가 어려운 거예요. <사람>도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발표해야 했고, 이번에도 친구가 세상을 떠난 게 너무 충격이어서 그 감정을 담아 곡을 완성했어요.”
비록 세 곡뿐이지만 <테이블세터>에는 교수가 아닌 음악가 정원영의 감수성과 정서, 그리고 음악에 대한 태도가 모두 담겨 있다. 가을에는 이 신곡들을 모아 한장의 앨범을 발표할 계획이다. 김학선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