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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비엔날레급 신작 전시’를 7개월 만에 하겠다고?

등록 2018-03-08 17:57수정 2018-03-09 15:34

-‘MMCA 현대차 시리즈’ 일정 논란-
지난해 10월 작가 선정…올해 9월 전시
10년간 120억원 미술계 후원 불구
‘규모만 앞세운 전시 될라’ 우려
2016년 ‘현대자동차 시리즈’ 작가로 선정된 김수자씨가 그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펼쳐놓은 ‘마음의 기하학’전의 전시장 모습. 19m 타원형 탁자에 관객들이 진흙 덩이를 빚어 굴리는 참여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016년 ‘현대자동차 시리즈’ 작가로 선정된 김수자씨가 그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펼쳐놓은 ‘마음의 기하학’전의 전시장 모습. 19m 타원형 탁자에 관객들이 진흙 덩이를 빚어 굴리는 참여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엉? 이렇게 늦게?”

미술동네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난달 26일 한국에서 미술가에게 가장 많은 돈을 대주는 것으로 유명한 한 기업 후원전시의 올해 작가와 일정이 발표되자 나온 반응들이다.

이 전시는 현대자동차그룹이 후원기업이 되어 국립현대미술관(MMCA)과 2014년부터 함께 진행해온 ‘MMCA 현대차 시리즈’란 기획전. 2014년 현대차 쪽이 앞으로 10년간 무려 120억원을 전시에 지원해주겠다고 협약하고 그해 이불 작가를 필두로 안규철(2015), 김수자(2016), 임흥순(2017) 작가가 미술관의 서울관에서 해마다 큰 전시를 차려냈고, 이번에 다섯번째 작가를 선정, 발표한 것이다. 올해 주인공은 지난 30년간 전통·대중문화를 오가며 키치적 작업을 펼쳐온 스타 작가 최정화(57)씨다. 역량, 인지도 면에서 그다지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촉박한 전시 준비기간과 어마어마한 규모의 전시공간이 문제다. 시리즈전은 올해 9월 지하 5전시장과 바로 옆 통로마당에서 개막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 있다고 미술관은 밝혔다. 5전시장은 300평이 훌쩍 넘는 막대한 공간이다. 여기서 불과 7~8개월 동안 전시 콘셉트와 동선을 잡고 완결된 비엔날레급 신작 전시를 선보여야 하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올해 현대차 시리즈 작가를 선정하는 심사위원 회의가 열렸을 당시 위원들 사이에서는 작가 선정이 최소한 2~3년 전에 끝나야 하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며 촉급한 전시 일정에 강한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미술관 학예사들이 추천해 최종 후보 3인으로 오른 이는 최 작가와 박찬경, 양혜규 작가다. 결국 올해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고 사전에 밝힌 최 작가가 최종 선정됐고, 다른 두 작가는 올해 전시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관 쪽은 2019년, 2020년 전시작가도 확정됐다고 밝혔으나, 누구를 선정했는지는 외부에 공표하지 않고있다. 전시를 치르는 해에 작가 이름을 각각 발표하기로 현대 쪽과 사전에 약정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10여년 전부터 대형 전시를 숱하게 하면서 익히 알려진 기성 작가들이라 참신하지 않았다. 미술관 쪽이 국내 대표 작가들이라고 추천했는데, 너무 안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 4년간 4명의 작가들이 선보인 현대차 시리즈 전시는 애초 기대와 달리 범작이거나 수준 이하였다는 혹평들이 많았다. 규모만 앞세운 설치물 덩어리로 전시장을 무리하게 채워 과시하거나 정리되지 않거나 급조한 느낌이 드는 영상, 퍼포먼스 작업들로 “숙성도가 낮다”“생각 없이 작업했다”는 뒷말이 잇따른 경우도 많았다. 미술계 한 평론가는 “대형 전시를 하려면 최소한 2~3년 기한을 주는 게 서구 미술계에서는 상식인데 거액을 주면서 짧은 시간 안에 알아서 뽑아내라는 단순무식한 틀거지가 전시 부실화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술관 쪽은 작가별 지원 금액을 함구하고 있지만, 개별 작가마다 6억~8억원 정도의 거액이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기업 홍보를 위해 거액을 미술판에 투입한 현대차 입장에서 보면, 시리즈 전시는 공에 비해 득이 별로 없는 결과가 됐다는 게 중론이다. 미술판의 이슈가 되기는커녕 선정 작가들의 작업의식에 대한 불신이나 작품 배경 등을 놓고 개운치 않은 뒷이야기를 낳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기업, 지자체의 미술 후원 프로젝트를 보면, 작가 선정이나 작업 기간 등에 제약을 두기보다 특화된 주제나 형식에 장기간 지원 방식으로 성가를 얻는 사례가 적지 않다. 거장들에게 자사의 생산 차량을 작품 소재로 주어 순회전시를 하는 독일 베엠베(BMW) 그룹의 ‘아트카 프로젝트’는 1975년 알렉산더 콜더를 시작으로 지난해 차오페이에 이르기까지 앤디 워홀, 제프 쿤스 등의 아트카 작업을 지원해왔지만, 1년도 안 되는 기간 안에 전시해야 한다는 성과주의를 고집하지 않았다. 프로젝트 역사가 40년이 넘었지만, 프로젝트는 19차례만 이뤄졌다. 작가별로 구상의 감도와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고려한 결과다. 일본 야마구치현이 운영 중인 예술정보센터(Ycam)는 201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에 출품했던 문경원 작가와 2013년부터 10년짜리 장기 작가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의 주요 미술 아카이브와 작업 소재를 찾고 협업하는 데 거의 무제한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고 작가는 털어놓았다. 일본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는 십여년 전부터 세계 각지의 젊은 아티스트들을 미리 선정해 이들의 신작들을 자사 갤러리 전시공간에 자유롭게 전시해주는 아트갤러리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한결같이 ‘인풋’(투입량)이 있으면 ‘아웃풋’(결과)을 내야 한다는 도식에서 벗어나 시간에 휘둘리지 않는 예술의 잠재성을 중시한다는 게 특징이다.

현대자동차는 국립현대미술관의 10년짜리 시리즈 전시 외에도 영국의 세계적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의 터빈홀 전시를 지원하는 11년짜리 후원전, 미국 엘에이 카운티 미술관(LACMA)의 장기 후원 등 여러 글로벌 아트 프로젝트를 2014년부터 벌여왔다. 미술계로서는 반가운 조력자지만, 지원하면 당장 결과를 내야 한다는 성과주의와 스타 작가 재활용 식의 안일한 운영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현대차 시리즈 전시는 앞으로도 주목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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