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에 선보일 ‘바래’의 신작 `꿈 세포'. 1968년 서울 구로 벌판에서 펼쳐졌던 산업박람회장과 박람회 이후 구로공단의 공간 역사, 미래에 대한 상상 등을 가상 이미지에 표현하는 내용이다.
“1960년대 국내 건축계에서는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라는 국영토목회사가 국가 주도 건축사업들을 도맡았어요. 줄여서 ‘기공’이라 불렀죠. 경부고속도로, 여의도 개발, 세운상가 같은 국가 기반시설, 거대건축물들을 설계했어요. 김수근, 윤승중, 김석철, 김원 등 한국 현대건축사의 주역들이 대부분 여기서 일했습니다. 현대도시 서울의 뼈대도 당연히 기공에서 만들었죠.”
올해 5~11월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에서 열리는 16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을 앞두고, 한국관 전시 기획을 맡은 박성태 예술감독(53·정림건축문화재단 상임이사)은 ‘기공’이 한국의 도시와 건축에 남긴 흔적들을 화두로 다루겠다고 털어놓았다. 21일 낮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기자간담회에서 박 감독은 올해 한국관 전시주제로 설정한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Spectres of the State Avant-garde)’은 유령, 귀신처럼 희미해진 ‘기공’의 옛 기억들을 불러내어 성찰하는 개념이라고 했다.
“한국의 초창기 도시계획을 입안했던 기공의 프로젝트들은 국가의 강압적인 건설 이데올로기 정책과 건축가의 자유로운 이상이 기묘하게 맞물려 나온 것들입니다. 세운상가, 여의도 등 서울 도시공간에는 지금도 이 회사의 사업 흔적들이 상당부분 남았지만, 건축사 도시사 맥락에서 본격적으로 조명된 적은 없어요. 서구 건축에는 나타나지 않은 국가 주도 현대건축사를 4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색다르게 되살펴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관 전시는 박 감독과 공동큐레이터인 최춘웅 서울대 건축학과 부교수, 박정현 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정다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가 꾸린다. 기공이 설계한 프로젝트들 가운데 세운상가(1967), 구로 산업박람회장(1968), 여의도 마스터플랜(1969), 일본 오사카 엑스포 70 한국관(1970)을 대표사례로 골라 이들을 여러 형식으로 재조명하는 내용이다. 네 프로젝트에 대한 당시 건축가들의 제안과 도면 기록 등을 보여주는 아카이브로 먼저 당시의 건축 과정과 배경을 소개하며, 이 프로젝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양한 상상력으로 형상화한 건축가, 문인 등의 일곱 가지 신작들이 같이 어우러지는 틀거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박 감독은 전했다. 출품작가로는 공동큐레이터인 최 교수와 김성우(엔이이디 건축사사무소), 건축스튜디오 ‘바래’(전진홍, 최윤희), ‘설계회사’(강현석, 김건호), 김경태 사진가, 정지돈 소설가, 서현석 영상작가가 참여한다.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은 아일랜드의 여성 건축가인 이본 파렐과 셸리 맥나마라가 총감독을 맡았으며 ‘자유공간’(Freespace)’이란 전체 주제 아래 5월26일부터 11월25일까지 본전시와 국가관 전시를 펼칠 예정이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