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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왜 음악인이 평화에 관심? 경계 허물기가 바로 음악 본질”

등록 2018-03-25 18:26수정 2018-04-26 23:06

【짬】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황정인 활동가

즉흥 연주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 연대 운동을 하고 있는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황정인 활동가. 사진 고한솔 기자
즉흥 연주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 연대 운동을 하고 있는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황정인 활동가. 사진 고한솔 기자

“소리는 파장이자 에너지잖아요. 타인과 함께하는 마음을 함께 소리로 실어 나른다면 그 여운이 오래가지 않을까요.”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29일부터 진행하는 음악 워크숍의 타이틀은 ‘사람의 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이다. ‘국경 없는 음악인’ 황정인(31)씨는 시민들과 함께 워크숍을 이끌고 있다. 워크숍은 각자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외쳤던 촛불집회의 경험을 즉흥연주를 통해 되살리고자 마련됐다. 시민들은 악기가 아닌 프라이팬, 분유통 등 일상의 도구를 쥐고 소리를 내어 즉석에서 음악을 창작한다. 이렇게 완성된 음악은 다음달 14일 열리는 세월호 참사 4주기 집회 사전 행사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지난 24일 황씨를 만났다.

그는 2015년, 세월호 참사 이후 500일째 열린 광화문 집회에 참여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참사에 대응하는 정부의 모습에 분노를 느꼈고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했다. 매주 일요일 홍대입구역 8번 출구에서 플루트를 연주한 이유다. 2년 동안 음악가들과 함께 ‘잊지 말라 0416’ 버스킹을 진행하면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았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음악으로 시민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그가 음악을 처음 시작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중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넘어간 뒤 미국 코네티컷주의 한 사립대에서 플루트 연주를 전공했다. 그러나 2011년 위스콘신주에서 일어난 대규모 집회를 목격한 뒤 음악 인생에 큰 변화를 맞았다. 당시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가 공공부문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폐지하는 ‘반공무원 노조법’을 추진했고 분노한 시민들은 들불처럼 일어섰다. 하지만 대학원 담장 안은 고요했다. 개인의 음악적 역량을 기르는 데 집중하는 대학원에서 노동과 사회 이슈는 암막커튼 밖의 아득한 햇살처럼 ‘신경쓰지 않으면 그만인’ 남의 일이었다. “음악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선한 의도를 가질 수 있다 생각했는데 회의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는 17년간 쓰던 플루트를 팔고 2012년 무작정 한국에 들어왔다.

다시 음악을 시작한 것은 우연찮은 기회 덕분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충북 제천 간디학교에서 2년 동안 교사로 일하던 중 학생들과 함께 필리핀 평화여행을 떠났다. 학생들과 함께 묵은 숙소에 고장 난 플루트가 있었고 자연스레 플루트를 쥐게 됐다. 한 학생이 말없이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음악으로 학생과 대화하는 느낌이랄까요. 음악을 매개로 타인과 무언가 나누고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거죠. 음악을 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음악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단 걸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음악은 그에게 나눔과 소통의 매개였다.

‘사람의 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참여연대 워크숍 참가자들과 4월 14일 공연
일상 도구로 즉석에서 음악 창작

아시아 분쟁 피해자 지원 단체 활동도
로힝야족 난민캠프에서 증언 수집
오는 8월 ‘학살 1주기 추모’ 평화콘서트

2015년 참여한 한 워크숍은 음악으로 가야 할 길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그해 국외 비영리 단체 ‘국경 없는 음악인’(Musicians without Borders)이 개최한 ‘창의적 음악활동 지도 워크숍’에 참여했다. ‘국경 없는 음악인’은 음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무너진 관계를 복원하자는 취지로, 세계 분쟁 지역을 방문해 음악을 가르치고 전하는 비영리 단체다. 꼭 전문적인 음악가일 필요도 없었다. 네덜란드에서 열린 워크숍에는 음악치료사, 변호사, 교육자 등 세계 각국 40여명이 모였다. 음악을 통해 어떻게 사람과 사람을 이을 수 있는지 배웠다.

“음악교육을 받으며 독창적이고 뛰어난 연주를 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내려놓고 공감하고 소통하게 하는 게 음악의 본질이란 걸 다시 한 번 배우게 됐어요.” 음악에 대한 그의 신념은 자연스레 평화와 인권에 대한 관심으로 번졌다. 음악을 통한 사람과 사람의 연결에는 우리 사회와 시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는 성공회대에서 ‘음악을 통한 평화 구축’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수료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아디·ADI)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디는 아시아의 분쟁·재난 지역을 찾아가 피해자와 활동가를 지원하는 한국의 시민단체다. 지난해 8월 미얀마군은 학살, 방화 등을 일삼으며 70만명이 넘는 로힝야족을 국경 밖 방글라데시로 몰아냈다. 아디는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 캠프를 방문해 피해 생존자를 만나고 그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있다. 지난 2월 난민 캠프를 방문한 그는 5월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통해 여성 청소년의 심리를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한다. 학살 1주기인 8월 로힝야 난민 이슈를 다루는 평화콘서트(가제)도 열 예정이다.

“회색빛 임시 정착촌에서는 삶 자체가 마치 언제 버려질지 모를 일회용품 같았어요. 증언을 위해 힘든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분들을 위해 음악으로 마음을 다독이고 타인과 그 마음을 이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세월호 4주기 추모 공연에서도 음악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길 바란다. ‘사람의 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워크숍은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14일 세월호 추모집회 사전 행사에 올릴 공연까지 모두 네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이번 공연이 점차 사그라드는 세월호의 기억을 되새길 기회가 되기를 꿈꾼다. “나와 타인의 경계를 지우고 온전한 나를 표현하고 나누는 일이 음악이 가진 힘 아닐까요?” 그의 미소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할 따뜻한 온기가 흐른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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