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아트 록 밴드 ‘언리얼 시티’ 팬이었다가 이들의 공연기획까지 맡게 된 대학생 오현재씨. 사진 김학선 객원기자
중학생 때 외삼촌 방에 있던 핑크 플로이드와 에릭 클랩턴, 마이클 올드필드의 시디를 듣곤 했다. 좋다기보다는 신기한 마음이 더 컸다. 고3 시절 공부를 하며 심야 라디오를 듣다가 다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과 만났다. 처음 들었을 때보다 감흥이 컸고 새롭게 다가왔다. 그때부터 ‘심각한’ 음악을 찾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차트 100위 노래를 주로 듣는 또래와는 다른 취향이 생겼다.
이제 대학교 4학년, 1993년생인 오현재씨 이야기다. 핑크 플로이드에 대한 관심은 프로그레시브 록과 아트 록으로 넓어져서 새로운 아트 록 밴드를 찾아 음악을 듣곤 했다. 그 가운데는 이탈리아 아트 록 밴드 언리얼 시티도 있었다. 언리얼 시티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즐겨찾기하고 그들의 음악과 동향을 살폈다. 언리얼 시티가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전까진 그저 순수한 팬이었다.
언리얼 시티는 일본 공연 일정을 잡으며 한국에서도 공연하길 원했다. 과거 뉴트롤스부터 이탈리아 아트 록에 우호적인 한국을 찾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그들은 거의 유일한 한국인 페이스북 친구인 오현재씨에게 연락을 했다. 공연기획자나 언더그라운드 밴드를 소개해줄 수 있냐는 요청이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여러 공연기획사와 공연장이 있는 구청을 찾았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한국에선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이미 과거의 음악처럼 인식되는 이탈리아 아트 록 밴드의 내한공연을 추진한다는 건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현재씨는 그 실현 불가능한 공연을 직접 하기로 했다. 오기도 생겼다. 그 뒤의 과정은 맨땅에 헤딩하기에 가까웠다. 신촌에서 상수동까지 걸어 다니며 공연장과 엘피(LP)바에 포스터를 붙였고, 2월 몹시 추운 날에 홍대 거리에서 포스터를 직접 들고 서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 했다. 포스터를 직접 만들기 위해 계절학기에 포토샵 수업을 듣기도 했다.
“반응이 너무 냉담하더라고요. 어리고 대학생이라고 상대를 잘 안 해주기도 하고, 일단 연줄이 전혀 없으니까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 힘든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건 언리얼 시티의 훌륭한 음악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언리얼 시티는 이탈리아 아트 록의 새로운 세대로 주목받으며 과거의 유산을 지금 시대에 재해석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밴드다.
갑작스레 공연기획자가 됐지만 오현재씨는 또 다른 현실에선 취업을 걱정하고 있는 대학졸업반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하는 전문 공연기획자가 될지 일반 회사에 들어가야 할지 고민 중이지만, 일단은 언리얼 시티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게 우선이다. “그래도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다고 많은 걸 양보하면서 이탈리아에서 오는데 관객이 너무 적으면 미안할 것 같아요. 끝까지 홍보 많이 해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요.” 공연은 4월27일 서울 신촌 프리버드에서 열린다.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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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학선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