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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아트바젤 홍콩’서 드러난 한국화랑의 초라한 민낯

등록 2018-04-11 19:11수정 2018-04-11 20:46

-울림과 스밈-
‘아트바젤 홍콩’에서 눈길을 끈 중국 작가 저우위청의 설치 작품. 가사 도우미가 온종일 식기를 닦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노형석 기자
‘아트바젤 홍콩’에서 눈길을 끈 중국 작가 저우위청의 설치 작품. 가사 도우미가 온종일 식기를 닦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노형석 기자
‘코리아 패싱’은 북한 핵 협상에서 한국이 따돌림당하는 것을 뜻하는 시사용어다. 이 말이 요사이 국내 화랑가의 유력한 유행어로 등장했다. 지난달 28~30일 홍콩섬 컨벤션센터에서 폭발적인 열기 속에 치러진 국제 미술품 장터 ‘아트바젤 홍콩’이 남긴 화두랄까.

세계 미술판의 제국으로 일컬어지는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가 아시아 거점으로 2013년부터 신설한 아트바젤 홍콩의 올해 전시들은 강렬하고 압도적이었다. 현장을 찾은 한국 미술인들이 ‘역부족’이란 말을 단박에 떠올릴 만큼 작품들의 물량과 질적인 측면에서 한국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전세계 32개국 248개의 대표 화랑이 출품한 본전시는 ‘갤러리스’‘카비네트(캐비닛)’‘인사이츠’‘디스커버리스’ 섹션 등으로 세분되어 20세기 초 근대미술부터 첨단 미디어아트와 설치미술,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층위의 신구작 명품들을 망라한 명품 미술거리가 됐다. 전시장 주위 도심엔 세계적인 명문 화랑들이 입점한 에이치(H)퀸스 빌딩, 페더 빌딩 등 갤러리 전용관들이 포진해 동서양 대가들의 개인전을 잇따라 개막했고, 카오룽(주룽)반도 해변에 자리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종합미술관 단지인 엠(M)플러스, 아시아소사이어티 등 수많은 미술 인프라에서도 숱한 전시들이 펼쳐졌다. 경매사 소더비가 페어에 때맞춰 컨벤션센터에서 연 피카소와 조지 콘도의 경매 프리뷰는 두 거장의 뛰어난 수작들이 나와 큰 호평을 받았다. 컬렉터는 물론 일반 대중까지 빨아들이는 거대한 문화산업체가 바로 아트바젤 홍콩이었다.

중국과 홍콩 중심으로 시장의 게임법칙이 확실히 바뀐 것을 선포한 이번 페어에서 한국 화랑들은 망연자실한 채 각자도생하는 모습이다. 페어에 참가한 국내 화랑은 올해 11군데로 늘어났지만, 출품작들은 작가층, 사조 등에서 층위가 얇고 빈약한 인상을 주었다. 단색조 회화의 거품이 빠지면서 관련 출품작들은 확연히 줄고 70년대 실험미술 작품이나 민중미술 작품들을 내걸고, 부스 구성도 미술관풍으로 맞추는 등 변화를 꾀하기는 했다. 그러나 일개 작품 거래액만 수백억원이 넘는 거장 명품들을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배치하며 관객 눈길을 다잡는 서구 화랑들과는 대등한 경쟁 구도를 펼칠 수 없다는 한계가 명확했다. 참가 화랑은 아니지만, 현장의 부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국내 화랑업자들도 숱하게 보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장에 온 상당수 업자들은 다른 국외 화랑 부스의 거장 명품들을 화랑들 간에 거래하는 싼 도매가로 사들이는 데 주력한다. 국내에 갖고 들어가 비싼 값에 컬렉터한테 팔아 시세 차익을 남기려는 목적”이라고 털어놨다. 경쟁 대신 일종의 틈새 보따리장사 전략을 택한 셈이다.

아트바젤 홍콩이 끝난 뒤인 지난 2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 중장기 진흥계획을 내놓았지만, 복지 차원에서 푼돈 나눠주는 식의 작가 지원금 외에 획기적인 유통 개선책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화랑협회가 여는 페어인 키아프나 화랑미술제는 참가 화랑을 솎아내는 심사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병폐가 심각하지만, 회원 화랑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운영틀 개선은 난망한 지경이다. 이런 한계들 탓에 유력 컬렉터들은 대부분 홍콩 등의 국외 장터에서 ‘직구’를 하고, 화랑업자들은 당장 눈앞의 돈 되는 작품들만 눈독 들이는 중개상으로 변해간다. 업계 스스로 특단의 혁신 없이는 국내 미술시장의 생존 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세계 미술시장 구도에서 ‘코리아 패싱’은 눈앞의 현실로 닥칠 공산이 크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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