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다섯번째 책 낸 언론인 손관승씨
“베를린에 가방을 두고 왔습니다.” 최근 <미(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노란잠수함)를 펴낸 손관승 전 아이엠비시(iMBC) 사장이 주변에 늘 하는 얘기다. 여행 중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베를린이 낳은 전설적인 가수 마를레네 디트리히(1901~92)가 부른 노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비움에서 채움으로’, ‘탈진에서 활력으로’, ‘쇠락에서 재생으로’ 전환되는 삶에 대한 메타포다.
2013년 ‘아이엠비시’ 사장 돌연 퇴임
“갑자기 출근할 곳 없어지니 허탈”
특파원 활동했던 베를린으로 무작정 ‘괴테 여행길 7천km 답사’ 첫 출간
최근 ‘미,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연 100회 강연하는 글로소득자됐죠” 손 작가에게 가장 큰 ‘탈진’과 ‘비움’의 시기는 아이엠비시 사장이었던 2013년 가을 문화방송 그룹 인사에서 자신의 이름이 빠졌을 때였다. “갑자기 출근할 곳이 없어지면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절망에 빠졌다.” 그때 떠오른 것이 ‘베를린 가방’이다. 베를린은 그가 독일 통일 직후였던 1994년부터 연수와 특파원 활동으로 세 차례에 걸쳐 장기 체류를 한 곳이다. 베를린은 그에게 “그곳만의 특별한 공기가 몸과 마음의 구석구석을 휘감아 들어와 모든 것을 잊고 꼼짝 못하도록 몰입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베를린 가방’은 그 베를린에 대한 그리움의 상징이기도 했다. 2014년 “주머니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그는 만사를 제쳐두고 그 ‘가방’을 찾아 베를린으로 갔다. 그리고 빈 주머니는 베를린 가방에서 담아온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퇴직 후 첫번째 책인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2014·새벽)은 그 이야기들을 담은 것이다. 그때 그는 1786년 9월부터 1788년 4월까지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떠났던 7천㎞ 여행길을 따라 다녔다. 그 뒤에도 손 작가는 ‘비움’의 순간 ‘베를린 가방’을 찾아 떠났다. 그 결과 퇴직 뒤 지금까지 공저를 포함해 4권의 책을 펴냈고, 이제 일년에 100회의 강연을 하는 ‘글로소득자’로 탈바꿈했다. 손 작가가 지난해 여름 다시 베를린을 찾아 그 가방에서 채워온 이야기로 엮은 것이 5번째 저서인 <미, 베를린에서…>다. 이 책의 주제는 제목에 나오는 ‘미’에 함축돼 있다. 나, 즉 자기다움을 가리키면서, 그것을 찾아 나설 수 있게 하는 힘인 무빙에너지를 뜻하기도 한다. 손 작가가 직접 둘러본 최근의 베를린은 ‘예술혁명 도시, 라이프스타일 도시, 섹시한 도시, 스토리 도시’다. 통일 전 굳건한 장벽에 의해 동서 베를린으로 나뉘었던 이 도시는 한때는 폭탄이 터진 폐허를 뜻하는 ‘그라운드 제로’라 불렸다. 하지만 통일 이후 놀라울 만큼 변신했다. 3개의 오페라하우스, 50여개의 연극극장, 175개의 박물관과 미술관, 600여곳에 이르는 사설 갤러리들이 전 세계 예술가들을 유혹한다. 또 스타트업 열풍도 눈부신 속도로 불고 있어 ‘스타트업 아우토반의 도시’라 불러도 결코 과장이 아닌 곳이 되었다. 손 작가는 베를린의 이런 변신의 요체를 베를린이 해온 자기다움을 찾는 노력에서 구한다. 베를린이 자기다움을 찾으면서 도시에 ‘스토리’를 더할 수 있게 해준 주요한 힘은 젊은 예술가들로부터 나왔다. 예를 들어, 서베를린의 젊은 예술가들이 동베를린에 있는 폐허가 된 건물 ‘타헬레스’를 1990년 2월 점령하면서 불붙은 예술스운동(예술가들의 건물 무단점거 운동)이 대표적이다. 예술가들이 분단과 통일의 흔적들을 예술적 감각으로 재창조해내면서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베를린스러움’을 만들어냈다. 그 자기스러움이 도시를 ‘섹시’하게 만들었다. 손 작가는 “분단 시절 베를린은 어쩌면 ‘빈티’ 나는 도시였지만, 그 가운데에서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찾으면서 그것이 오히려 ‘빈티지’가 되었다”고 말한다. 손 작가는 “이런 힘이 있었기에 베를린은 죽어가던 ‘동력’을 ‘다시’ 얻고자 하는 도시재생의 원래 정신에 부합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도시재생이 이뤄지는 곳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미, 베를린에서…>는 이런 베를린 이야기를 통해 독자 개개인에게 ‘당신은 당신스러움을 찾았습니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어쩌면 2013년 가을의 손 작가처럼 ‘빈 주머니인 자신’을 발견할지라도, “자기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과거를 미래로 바꾸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바로 ‘나는 나의 가방을 어디에 두고 왔을까?’이다. 어쩌면 그 가방은 베를린과 같은 영감을 주는 도시일 수도 있고, 자신을 기록해온 ‘나만의 수첩’일 수도 있다. 손 작가도 아이엠비시에서 퇴직했을 때, 서가에 남아 있는 수첩 12권이 ‘베를린 가방’을 찾는 단초가 되었다고 말한다. 남겨졌다고(혹은 버려졌다고) 느껴지는 자신을 사랑할 때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우리 모두 자신만의 수첩과 가방이 있을 테니, 그것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렇게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면, 한 여행지에 도착하고, 다시 그 여행지를 떠나 다른 여행지로 나아가기도 한다. 손 작가도 이제 베를린과 함께 판문점, 서울, 제주도 얘기를 하고 싶다. 분단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독일과 한국, 그리고 분단의 상징이면서 오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하는 판문점. 그 ‘판문점에 두고 온 손 작가의 가방’이 채워져 또 다른 강연과 책으로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글로소득자’로 제2인생을 개척한 손관승 전 아이엠비시 사장이 다섯번째 책 <미,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를 냈다. 사진 김보근 기자
“갑자기 출근할 곳 없어지니 허탈”
특파원 활동했던 베를린으로 무작정 ‘괴테 여행길 7천km 답사’ 첫 출간
최근 ‘미,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연 100회 강연하는 글로소득자됐죠” 손 작가에게 가장 큰 ‘탈진’과 ‘비움’의 시기는 아이엠비시 사장이었던 2013년 가을 문화방송 그룹 인사에서 자신의 이름이 빠졌을 때였다. “갑자기 출근할 곳이 없어지면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절망에 빠졌다.” 그때 떠오른 것이 ‘베를린 가방’이다. 베를린은 그가 독일 통일 직후였던 1994년부터 연수와 특파원 활동으로 세 차례에 걸쳐 장기 체류를 한 곳이다. 베를린은 그에게 “그곳만의 특별한 공기가 몸과 마음의 구석구석을 휘감아 들어와 모든 것을 잊고 꼼짝 못하도록 몰입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베를린 가방’은 그 베를린에 대한 그리움의 상징이기도 했다. 2014년 “주머니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그는 만사를 제쳐두고 그 ‘가방’을 찾아 베를린으로 갔다. 그리고 빈 주머니는 베를린 가방에서 담아온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퇴직 후 첫번째 책인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2014·새벽)은 그 이야기들을 담은 것이다. 그때 그는 1786년 9월부터 1788년 4월까지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떠났던 7천㎞ 여행길을 따라 다녔다. 그 뒤에도 손 작가는 ‘비움’의 순간 ‘베를린 가방’을 찾아 떠났다. 그 결과 퇴직 뒤 지금까지 공저를 포함해 4권의 책을 펴냈고, 이제 일년에 100회의 강연을 하는 ‘글로소득자’로 탈바꿈했다. 손 작가가 지난해 여름 다시 베를린을 찾아 그 가방에서 채워온 이야기로 엮은 것이 5번째 저서인 <미, 베를린에서…>다. 이 책의 주제는 제목에 나오는 ‘미’에 함축돼 있다. 나, 즉 자기다움을 가리키면서, 그것을 찾아 나설 수 있게 하는 힘인 무빙에너지를 뜻하기도 한다. 손 작가가 직접 둘러본 최근의 베를린은 ‘예술혁명 도시, 라이프스타일 도시, 섹시한 도시, 스토리 도시’다. 통일 전 굳건한 장벽에 의해 동서 베를린으로 나뉘었던 이 도시는 한때는 폭탄이 터진 폐허를 뜻하는 ‘그라운드 제로’라 불렸다. 하지만 통일 이후 놀라울 만큼 변신했다. 3개의 오페라하우스, 50여개의 연극극장, 175개의 박물관과 미술관, 600여곳에 이르는 사설 갤러리들이 전 세계 예술가들을 유혹한다. 또 스타트업 열풍도 눈부신 속도로 불고 있어 ‘스타트업 아우토반의 도시’라 불러도 결코 과장이 아닌 곳이 되었다. 손 작가는 베를린의 이런 변신의 요체를 베를린이 해온 자기다움을 찾는 노력에서 구한다. 베를린이 자기다움을 찾으면서 도시에 ‘스토리’를 더할 수 있게 해준 주요한 힘은 젊은 예술가들로부터 나왔다. 예를 들어, 서베를린의 젊은 예술가들이 동베를린에 있는 폐허가 된 건물 ‘타헬레스’를 1990년 2월 점령하면서 불붙은 예술스운동(예술가들의 건물 무단점거 운동)이 대표적이다. 예술가들이 분단과 통일의 흔적들을 예술적 감각으로 재창조해내면서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베를린스러움’을 만들어냈다. 그 자기스러움이 도시를 ‘섹시’하게 만들었다. 손 작가는 “분단 시절 베를린은 어쩌면 ‘빈티’ 나는 도시였지만, 그 가운데에서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찾으면서 그것이 오히려 ‘빈티지’가 되었다”고 말한다. 손 작가는 “이런 힘이 있었기에 베를린은 죽어가던 ‘동력’을 ‘다시’ 얻고자 하는 도시재생의 원래 정신에 부합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도시재생이 이뤄지는 곳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미, 베를린에서…>는 이런 베를린 이야기를 통해 독자 개개인에게 ‘당신은 당신스러움을 찾았습니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어쩌면 2013년 가을의 손 작가처럼 ‘빈 주머니인 자신’을 발견할지라도, “자기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과거를 미래로 바꾸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바로 ‘나는 나의 가방을 어디에 두고 왔을까?’이다. 어쩌면 그 가방은 베를린과 같은 영감을 주는 도시일 수도 있고, 자신을 기록해온 ‘나만의 수첩’일 수도 있다. 손 작가도 아이엠비시에서 퇴직했을 때, 서가에 남아 있는 수첩 12권이 ‘베를린 가방’을 찾는 단초가 되었다고 말한다. 남겨졌다고(혹은 버려졌다고) 느껴지는 자신을 사랑할 때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우리 모두 자신만의 수첩과 가방이 있을 테니, 그것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렇게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면, 한 여행지에 도착하고, 다시 그 여행지를 떠나 다른 여행지로 나아가기도 한다. 손 작가도 이제 베를린과 함께 판문점, 서울, 제주도 얘기를 하고 싶다. 분단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독일과 한국, 그리고 분단의 상징이면서 오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하는 판문점. 그 ‘판문점에 두고 온 손 작가의 가방’이 채워져 또 다른 강연과 책으로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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