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 교수(왼쪽·박종식 기자)와 최 교수가 지은 소설 <청년의인당>(책세상 펴냄)
개혁에 성공한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모두들 궁금해하지만 이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개혁의 분야가 다양할 뿐 아니라 개혁의 우선순위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 ’선거제도 개혁’이 한국 개혁의 최우선 과제라고 여겨온 한 정치학자가 있다. 그런데, 그가 소설을 펴냈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 교수가 쓴 소설 <청년의인당>(책세상, 4월20일 발간)에는 선거제도 개혁을 성공시키는 청년 정치인들의 이야기와 그 결과로 한국이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복지국가로 거듭나는 모습이 담겼다.
정치학자인 그는 왜 소설을 펴냈을까? ″선거제도 개혁이 인생살이의 문제라면 이를 다룬 이야기에서는 사람 냄새가 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새벽부터 밤늦도록 소설 쓰기에 매달렸다고 한다.
소설을 쓰기 전 최 교수는 현실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비롯해 2015년에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과제 가운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들어간 것은 그의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 개입할수록 실망도 커졌다. 한국의 거대 정당들이 선거제도 개혁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등 많은 의석수를 차지하는 정당들은 자신들이 가진 파이가 줄어들 수도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회의적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말 그대로 정당이 선거에서 얻은 득표율만큼 의석을 가져가는 제도다. 예를 들어 ㄱ당이 선거에서 10%를 득표하면 전체 의석 300석 가운데 10%의 의석, 즉 30석을 얻는다. 이렇게 되면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소수 정당이 의회에 진입할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진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국가로 연결되는 중요한 ’길’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북유럽 복지국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은 모두 이런 방식의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정치권 논의가 지지부진하던 사이 최 교수는 어렵고 딱딱한 선거제도 이야기를 시민들이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소설 <청년의인당>이다. 현실에서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최 교수는 소설을 통해 이뤘다.
소설 속에서 일자리, 결혼, 출산에서 소외된 청년들은 ’청년의인당’이라는 정당을 만들고 국회 의사당을 점거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총선에서 20%를 득표하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선거 제도인 소선거구제로 인해 12석의 의석수를 차지하는데 그친다.
’청년의인당’을 대표하는 주인공 최드림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의욕적으로 개혁 과제를 추진하지만 보수 세력의 저항을 비롯한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식물 대통령’의 한계를 절감한 최드림은 결국 대통령직을 걸고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시민의회’라는 개혁안을 내놓는다. 300명의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시민의회는 9개월 동안의 토론을 통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개혁안을 내놓게 된다. 국회 표결 결과, 191표 찬성으로 가결. 이후 한국은 약자의 정치적 대표성이 보장되는 복지국가의 길을 걸어간다.
소설 <청년의인당은> 최 교수가 그간 그가 써왔던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말하다>, <신자유주의 대안론>(공저), <자유주의는 진보적일 수 있는가>(공저) 등의 학술 서적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는 “이런 학술적·논리적 방식으로는 생동감이나 절실함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며 “사람 냄새가 나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선거제도 개혁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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