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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조세희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7년만 200쇄 기록

등록 2005-12-01 19:17

“세월 흘러도 ‘난쟁이 가족’ 삶 나아지지 않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작을 쓸 때 제 심정은 벼랑 끝에 ‘위험’ 표지판 하나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대로 끌려 가면 벼랑으로 떠밀리겠다는 두려움이었죠.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땅 밑 도처에 지뢰가 묻혀 있어서 언제고 폭발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게 당시 제가 보는 세상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자본에 착취 여전
소설 대신 집회장소 찾아 사진 찍어

1970년대 산업화의 그늘을 조명한 연작 장편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이 200쇄를 기록했다. 1978년 6월 문학과지성사에서 초판이 나온 지 27년 만의 일이다. 문학과지성사로부터 <난쏘공> 판권을 인수해 지난 2000년부터 발행하고 있는 출판사 ‘이성과힘’은 <난쏘공> 200쇄를 기념해 한정본 특별판을 만들었다. 판화가 이철수씨가 제목 글씨와 뫼비우스 모양 띠 안에 난쟁이 가족의 팍팍한 삶을 담은 그림을 새겼고, 디자인 회사 ‘끄레’가 표지 디자인을 맡았다. 양쪽 모두 무료 봉사.

“27년 만에 <난쏘공>이 200쇄를 기록했지만, 지금 상황은 처음 이 소설을 쓰던 때와 똑같아 보입니다. 날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본에게 매를 맞고 착취 당하고 있어요. <난쏘공>을 처음 쓸 때는 상황이 그렇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소수만 알고 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겠죠.”

1일 낮 작가로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들 ‘200쇄 기념 기자 간담회’ 자리에 나온 조세희(64)씨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에게는 당장 자신의 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간담회보다는 대학로의 농민 집회와 여의도에서 열리는 노동자 총파업 집회가 더 중요해 보였다.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850만명이고 농민이 350만명입니다. 합해서 1200만명이죠. 이들은 대부분 한 가정의 가장이고 집안의 유일한 노동력이기 십상입니다. 이들이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슬프게 사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일 수는 없는 것이죠.”

미출간 장편 <하얀 저고리> 이후 십수 년 동안 소설 발표를 하지 않는 대신 그는 주요 집회와 시위 장소를 찾아 사진을 찍고 있다. 펜 대신 카메라로 그의 표현 수단이 달라진 것일까. 지난달 15일 농민 전용철씨가 희생된 여의도 집회장에도 갔다가 한바탕 물대포 세례를 받았다.

“당시 분위기는 엄청난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경찰의 곤봉과 방패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는 농민들 모습을 보면서도 저는 분노로 몸을 떨 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제가 계속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찾아 다니는 이유는 두 가집니다. 동시대인으로서 내가 보고 겪은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카메라를 지니고 있으면 현장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작가는 카메라가 아닌 펜으로써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잊지 않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건강이 허락한다면 그동안 소홀히 했던 글을 다시 써야죠. <하얀 저고리>도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지어야 하고, 짧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동시대의 사람과 사회를 담아내는 글도 쓰고 싶어요.”

간담회를 끝내고 그는 서둘러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사진기자들이 메고 다닐 법한 가방 안에는 <난쏘공> 200쇄 기념호와 함께 그의 또 다른 ‘무기’인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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