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못 고치는 카메라 없다…
소리만 들어도 무슨 고장인지 안다”
정부 인정 명장 칭호는 없지만
누구나 그를 명장이라 부른다
초등학교 마치고 ‘입 하나 덜려고’
카메라 수리 겸한 시계수리점 점원
어느날 몽땅 분해된 먼지 쓴 카메라
밤새 뚝딱 조립해 수리 인생 시작
3년 동안 만든 중형카메라 KH-1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카메라
카메라 혁명인 라이카UR은 3대뿐
애호가 위해 만든 수집용 복제품
작동하게 개조해 세계적으로 명성
소리만 들어도 무슨 고장인지 안다”
정부 인정 명장 칭호는 없지만
누구나 그를 명장이라 부른다
초등학교 마치고 ‘입 하나 덜려고’
카메라 수리 겸한 시계수리점 점원
어느날 몽땅 분해된 먼지 쓴 카메라
밤새 뚝딱 조립해 수리 인생 시작
3년 동안 만든 중형카메라 KH-1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카메라
카메라 혁명인 라이카UR은 3대뿐
애호가 위해 만든 수집용 복제품
작동하게 개조해 세계적으로 명성
카메라 수리 53년 ‘달인’ 김학원씨
명장은 대한민국의 고용노동부에서 서류 심사 및 면접을 통해 해마다 각 기술 분야에서 뛰어난 숙련기술을 가진 기술자를 대상으로 선정하는 제도다. 시계 수리는 명장이 있다. 그런데 카메라 수리 부문엔 정부가 선정하는 명장이 없다. 그러나 기계식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53년 동안 카메라 수리만 하고 있는 김학원(66)씨를 가리켜 명장이라고 부르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이 많지 않다. 지난 4월에 세 차례에 걸쳐 김씨를 만나 그의 카메라 수리 인생을 들었다.
서울 중부경찰서 앞에 있는 중앙카메라가 김씨의 공간이다. 쌀알보다 작은 나사, 동전보다 작은 톱니바퀴, 스프링 등과 같은 카메라 부속품과 드라이버, 집게 등 수리 연장들이 제자리에 가지런히 정리돼 있을 것이라 예상했으나 빗나갔다. 1미터50센티 남짓한 수리대 위에 카메라 부속과 연장들이 그냥 쏟아부은 듯 뒤엉켜서 널브러져 있었다. 전적으로 국외자의 생각이었다. 잠시 목례한 뒤 “하던 작업은 마저 하시라”고 하고 그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자니 손놀림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어제 썼던 연장이 어디 있고, 한 달 전에 수리하다 잠시 멈춘 것이 무엇이며, 몇 달 전에 들어온 유아르(UR)라이카에 들어갈, 손톱에 낄 것 같은 크기의 나사는 또 어디에 있는지 척척이었다. 저렇게 혼란스러운 수리대의 삼라만상이 그에겐 질서정연한 우주였다.
세 가지 소망 중 하나는 이뤘는데…
경상북도 점촌 출신인 김씨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입 하나 덜기 위해” 친지가 소개한 대전의 한 시계수리점으로 가게 된다. 당시 사진현상소를 겸하고 있던 그곳엔 시계뿐 아니라 고장 난 카메라도 종종 들어오곤 했다. 숙식을 가게에서 해결하던 어느 날 밤 주인이 퇴근하고 혼자 남은 가게에서 그의 눈에 손님이 맡긴 일제 카메라가 들어왔다. 몽땅 분해가 된 채 먼지가 쌓인 그 카메라를 밤새 조립해버렸다. 작동은 되지 않았지만 김씨의 손재주에 놀란 주인이 수리대를 하나 마련해주고 카메라 수리를 맡겼다. 그날이 50여년 카메라 수리 인생의 시작일 것이라곤 그 자신도 미처 몰랐다. 1970년대 초반에 서울로 올라와 동대문을 시작으로 소공동, 영등포, 남대문 앞으로 가게를 옮겼고 2002년부터 지금의 자리에서 가게를 지키고 있다.
그동안 김씨의 카메라수리점을 거쳐간 사람들은 여러 가지 표현으로 그를 기억한다. 못 고치는 것이 없으며 소리만 들으면 어디에 무슨 고장이 났는지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지 물었다. 김씨는 “내가 포기한 카메라가 없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다른 수리업자들이 못 고치는 것을 나에게 보내는 일도 잦았다. 수리를 하도 많이 해서 어떤 기종이 어디가 자주 고장 나는지 알고 있으니 소리를 들으면 안다는 것도 큰 과장은 아니다”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14년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씨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세 가지를 꼽았는데 지금 그중 한 가지는 확실히 해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카메라. 3년 이상 선반기로 직접 두랄루민 덩어리를 깎아 몸통을 만들고 칼자이스의 비오곤 38㎜를 개조한 렌즈를 부착해 수제 중형카메라 KH-1(김(Kim)이 손(Hand)으로 만든 1(하나)밖에 없는 카메라)을 만들었다. 6×7 중형이다. 너도나도 탐을 낼 카메라인데 판다면 얼마에 팔 것인지 물었더니 “3년 수작업을 했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데 글쎄 얼마에 팔 수 있겠어? 하하. 이보다 작은 중형카메라는 없을 것”이라고 되받았다. 두 번째 소망은 깨끗하고 잘 정돈된 클래식카메라 전문수리점을 내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뒤를 이을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수리 비중을 줄이고 수제 카메라 공방을 하면 좋겠으나 먹고살 일이 아득해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 지겨운 일을 하려고 하겠나”라고 아쉬워했다.
“이젠 한국의 미스터 김만 가능”
지금 김씨는 수리라고 부를 수도 없는, 카메라 개조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전 세계 라이카 마니아들이 라이카의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UR라이카의 복제품을 촬영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1913년과 1914년 사이에 독일 라이츠사의 기술자 오스카어 바르나크가 만든 최초의 라이카가 UR라이카다. 카메라의 역사에서 UR라이카의 등장은 마치 아날로그 전화기 시대에 스마트폰이 도래한 것 같은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 전까지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삼각대 위에 세워진 거대한 상자 카메라와 한번에 한 장 찍을 수 있는 거대한 판때기 같은 필름을 넣고 보자기를 뒤집어쓴 채 셔터를 누른다는 것을 뜻했다. UR라이카는 손바닥만한 크기에다 가벼워서 주머니에 쏙 들어갔다. 여러 장의 촬영이 가능했기 때문에 혁명적이었다. 이후 상업용 모델은 1923년쯤부터 속속 등장한다.
견해는 약간씩 다르지만 최소 3대의 UR가 있다. 1913년의 첫 모델은 현재 라이츠 박물관에 있고 두 번째 모델은 사라졌다. 1918년에 세 번째 UR가 만들어졌다. 1970년대에 라이츠사는 라이카 애호가와 수집가들을 위해 UR 복제품을 만들었다. UR 복제품은 외형만 UR와 같고 대부분 작동하지 않게 만들어졌다. 현재 200대 안팎의 UR 복제품이 세계 곳곳에 나도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2016년 연말 김씨는 자신의 손으로 처음으로 UR 복제품을 작동 가능한 상태로 개조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에서 한국 대전으로 이주한 전직 카이스트 교수 조지 퍼스트가 UR 복제품의 개조를 의뢰했다. 기자는 조지와 전자우편과 문자메시지로 네 차례 인터뷰를 했다.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라이카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바르나크가 만든 최초의 UR와 UR 복제품을 알게 되었고 이를 개조하며 작동 가능한 상태로 만들고 싶었으나 이 작업을 할 사람이 없었다. 조사해보니 1980년대에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각각 이 작업을 성공한 적이 있다고 했다. 몇 년이나 걸려 드디어 서울 충무로의 미스터 김을 알게 되었다. 그는 신기에 가까운 손재주가 있었다. 이베이에서 UR 복제품을 하나 사고 상태가 좋지 않은 구식 라이카와 내 렌즈를 미스터 김에게 보냈다. 무려 3개월이나 기다린 끝에 나는 작동 가능한 UR를 손에 넣게 되었다. 2017년에 오스트리아의 란(Rahn) 경매시장에서 사용 가능한 UR 한 대가 3800유로에 낙찰되더라. 독일의 카메라 장인 롤프 오벌렌더가 1980년대에 개조한 극소수의 UR 중 하나였다. 그는 이미 1995년에 세상을 떴다. 글쎄, 이제 한국의 미스터 김 말고 이 작업이 가능한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라고 답했다.
수리 비법? “응용해서 혼자 쭉쭉”
그 후 김씨는 조지의 의뢰로 두 번째 작동되는 UR 라이카를 만들었으며 올해 4월 세 번째 개조작업을 하고 있다. 조지가 전 세계인들이 함께하는 라이카 포럼에 마치 라이카 한국특파원인 것처럼 수십 차례 글을 올려 작동하는 UR 라이카를 자랑하자 한 라이카 마니아가 조지의 글에 자극을 받아 김씨에게 개조를 의뢰한 것이다. 김씨는 “3개월 만에 해준다고 했는데 며칠 전에 외국에서 또 누군가가 부탁해왔다. 제4의 UR 라이카 복제품이 지금 국제우편으로 한국으로 날아오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네 번째 주인은 운이 좋은 편이다. 내가 제3의 작업을 하면서 부속품을 하나씩 더 만들고 있으니 개조 기간이 다소 짧아질 수도 있겠다”라고 말했다.
카메라 수리의 비법 같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 김씨는 “기술이라고 딱히 할 만한 것이 없다. 나는 단 한 번도 누구에게 배운 적이 없다. 책도 안 봤다. 이 기술은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하나를 이야기하면 응용해서 자기 혼자 쭉쭉 나가야 하는데 가르쳐준 것밖에 안 하면 못 배운다. 기본 원리는 대단히 간단하다. 카메라 기계의 동작은 밀고 당기고 좌로 돌리고 우로 돌리는 것이 전부다”라고 했다. 카메라 수리에 필요한 연장은 몇 가지나 될까. “연장? 아이구. 수리하는 도구는 무지하게 많다. 필요한 연장은 만들어 쓴다. 라이카는 기존의 연장을 못 대게 만들었다. 연장을 대면 상처가 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가게에 선반을 들여다 놓았다. 규격별로 일일이 만들어서 쓴다. 그러니 못 고치는 것이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카메라 수리 53년의 ‘장인’ 김학원씨가 지난달 23일 서울 충무로에 있는 수리점 중앙카메라에서 자신이 직접 깎아서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KH-1을 보여주고 있다.
김학원씨가 사용하고 있는 카메라 수리대. 부품과 연장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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