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가 지난달 미국 경매에서 사들인 <시왕도>중 일부분. 초강대왕과 오관대왕이 마주보는 장면이다.
“박물관이 소장한 <시왕도>는 원래 봉은사에 걸렸던 불화입니다. 과거 절에 이 작품과 함께 짝맞춰 걸렸던 다른 불화를 최근 되찾았습니다. 언론에 내력을 공개할 수밖에 없어 양해를 구합니다.”
지난 15일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불교조계종 관계자로부터 뜻밖의 사실을 통보받았다. 1996년 미국 소더비경매에서 사들여 그동안 소장, 전시해온 불화 <시왕도>가 원래 서울 강남 봉은사 소유품이란 것. 봉은사와 조계종, 국외문화재보호재단이 지난달 24일 미국 경매에서 매입해 환수한 다른 불화 <시왕도>와 오래 전 한 갖춤으로 절에 내걸렸다가 바깥에 반출됐음을 파악했다는 내용이 덧붙었다.
다음날인 16일 조계종과 봉은사는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최근 환수한 18세기 불화 <시왕도> 1점을 공개했다. <시왕도>는 저승 세계를 다스리는 10대 왕의 재판 모습과 지옥에서 재판에 따른 벌을 받는 망자들을 그린 상상의 불화. 봉은사 <시왕도>는 모두 네 폭의 그림이 경내 명부전에 걸려 있었는데, 1950~60년대로 추정되는 혼란기에 두 점이 유출됐고, 남은 두점은 절 쪽이 동국대 박물관에 기탁해 뿔뿔이 흩어졌다. 도난범들이 유출한 것으로 추정하는 이번 환수품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은 시왕의 주요 대왕 2~3명이 한화면에 함께 나오는 분방한 화풍이나 그림 내력을 적은 화기 글씨 등이 빼어닮아 전문가들이 단번에 한갖춤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날 <시왕도>를 공개한 뒤 친견법회를 벌인 봉은사 쪽은 나머지 석점의 시왕도도 장기적으로 절에 모두 재봉안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설정 총무원장도 공개식에서 “불교문화재를 본래 자리에 돌려놓는 ‘환지본처’가 매우 중요함을 느낀다”며 이를 뒷받침하는 발언을 했다.
봉은사와의 연고를 모르고 시왕도를 매입했던 박물관 쪽은 난감한 기색이다. 명백한 선의취득에 해당하고, 문화재청의 환수문화재 목록에 소장품이 올라있어 법적 하자는 없지만, 절쪽이 환수움직임을 표면화할 경우 교계와 갈등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병찬 학예실장은 “박물관은 소장품을 자의적으로 판단해 돌려줄 수 있는 권한이 없으며, 소송에 의해서만 반환이 가능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대한불교조계종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