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현관에 1988년 설치된 뒤 30년간 가동해온 비디오아트 거장 백남준(1932~2006)의 대형 영상탑 <다다익선>은 요사이 왜 전원이 꺼졌을까. 지난 2~3월 안전점검에서 기기 노후화에 따른 누전 상태임이 드러나 더는 가동할 수 없다는 판정
(<한겨레> 4월19일치 18면)이 내려진 이 대작에 대해 미술관 쪽이 그동안의 곡절을 설명하는 이색 전시회를 마련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7월말이나 8월초부터 <다다익선>의 설치 역사와 수리 및 가동 중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아카이브 전시를 작품 주위의 현관 공간에서 열기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작품 관련 설치 및 운영 기록과 모니터에 비췄던 영상 콘텐츠 등을 선보이면서 가동 중단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특정 작품의 전시 중단 과정을 해명하는 별도 전시를 여는 것은 미술관 역사에서 전례가 드문 일이다. 류지연 소장품자료관리과장은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인 <다다익선>이 계속 꺼진 채로 공개되면서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상황이어서 대안으로 설치 때부터 지금 상황까지 변천사를 드러내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며 “소장품으로 등록됐으나 현재 상영이 중단된 작품의 영상 콘텐츠를 함께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다익선>의 탑 구조물 자체는 1988년 설치 당시부터 소장품이 아닌 시설물이며, 현재 모니터의 영상만 소장품으로 등록돼 있다.
아울러 미술관 쪽은 <다다익선>의 철거나 기기 교체 등을 둘러싼 장래 운영 방향을 자문하기 위한 전문가·관계자 30여명 선정 작업을 최근 마쳤다. 명단에는 고인의 대리인인 장조카 켄 백 하쿠타 등의 유족과 작품 저작권을 갖고 있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관계자, 2003년 <다다익선>의 모니터 전면 교체 작업을 담당했던 전속 기술자 이정성씨와 정준모 전 학예실장 등이 포함됐다. 미술관 쪽은 이달 말부터 명단에 나온 핵심 관계자들을 먼저 개별 접촉하면서 의견을 취합하고 내년에는 <다다익선>의 장래 활용 방안에 대한 대형 국제 심포지엄을 열어 대안들을 정리한 뒤 최종 결론을 내릴 계획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백남준 작품을 비롯한 미디어아트 작품의 장기적인 보존 유지 방향에 대해서는 미술관이나 전문기관, 소장자들 사이에 통용되는 보편적인 매뉴얼이 없는 상태다. 나라나 지역, 소장기관마다 원형성, 지속성 등에 대해 별개의 원칙을 자체 적용하고 있다. 그만큼 논의 과정에서도 전문가들 사이에 숱한 이견이 제기될 것으로 보여 의견을 모으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류지연 과장은 “국내외 관계자들의 수가 많은데다, 각자 다양한 의견을 쏟아낼 것이 분명해 작품의 존치 여부에 대한 결론은 내년께나 되어야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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