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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미술평론가 최민씨 별세

등록 2018-05-27 12:41수정 2018-05-27 20:54

80년대 진보미술동인 ‘현실과 발언’ 참여
미술·영화계의 평론가·이론가로 활약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등 번역자로도 명성
최민 평론가의 생전 모습. 도서출판 창비 제공
최민 평론가의 생전 모습. 도서출판 창비 제공
원로 예술평론가이자 시인인 최민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가 27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

고인은 1944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같은 대학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했다. 그 뒤 프랑스 파리 1대학 조형학부 미학과에서 예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와 초대 영상원장을 지냈다. 그는 국내 미술계, 영화계에서 70년대 이후 진보 문화진영의 이론가, 번역가로 활약하면서 예지가 넘치는 평론글들을 다수 남겼으며, 여러 전시와 영화제들의 기획에 관여했다. 특히 1979년 태동한 진보미술인모임인 ‘현실과 발언’의 창립동인으로 참여하면서 80년대 참여미술운동의 이론가로 명성을 쌓았다. 1977년 국내 최초로 번역, 소개한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명저 <서양미술사 1·2>(열화당)은 지금도 널리 읽히는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1998년에는 3회 광주비엔날레 총감독과 전시기획위원장으로 위촉됐으나, 운영체계를 둘러싼 광주시와의 갈등으로 8달여만에 해임되면서 파문을 던지기도 했다. 영화계에서는 2002년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과 청룡영화상, 대종상 본심심사위원 등을 맡았다.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1969년 <창작과비평>여름호에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이래 시집 <상실>(1974)과 <어느날 꿈에>(2005)를 내며 꾸준히 시작을 창작해왔다. 빈소는 서울 반포동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 21호실이며 발인은 29일 오전 6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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