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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별걸 다 개척하는 괴짜들을 위한 안내서

등록 2018-06-04 05:00수정 2018-06-04 10:24

‘2018 스페이스 오디티’ 콘퍼런스
데이비드 보위 노래 제목과 같은
패션·음식 등 영역불문 교감하며
“모든 게 콘텐츠다” 창작자 발굴

패션 후기·수제맥주·평양냉면부터
“한물 갔다” 평 듣던 백열전구까지
스토리 담으며 SNS ‘핫 아이템’ 변신

장르·국적 구분 없는 ‘유튜브 시대’
플랫폼은 물론 일상의 경계 허물고
‘치맥용 맥주’ 등 협업 프로젝트로
콘텐츠 공유, 일상의 공감으로 확장
“그라운드 컨트롤 투 메이저 톰”(여기는 지상 관제소, 톰 소령 나와라)이라는 교신으로 시작하는 노래 ‘스페이스 오디티’는 영국 가수 데이비드 보위가 1969년 발표한 곡이다. 외롭고 두렵지만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우주비행사 톰 소령의 이야기를 담았다. 벤 스틸러 주연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도 등장하는 ‘톰 소령’은 고독한 개척자를 상징하는 이름이 됐다.

한국의 ‘스페이스 오디티’는 지난해 창업한 음악 콘텐츠 회사다. 가수뿐 아니라 작곡가, 작사가, 뮤직비디오 감독 등 음악 분야에서 독립군처럼 일하는 이들을 서로 연결해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한다. 이 회사가 지난달 30~31일 서울 중구 위워크 서울역점 라운지에서 ‘2018 스페이스 오디티’ 콘퍼런스를 열었다. 음악뿐 아니라 패션, 음식, 디자인 등 다양한 업종에서 일하는 이들이 참여했다. 김홍기 스페이스 오디티 대표는 “스스로 자기 영역을 넓혀가는 이 시대의 괴짜 창작자들은 모두 ‘스페이스 오디티’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영역에서 콘텐츠 트렌드를 이끌어온 이들과 영감을 나누기 위해 콘퍼런스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콘퍼런스에서 트렌드 리더로 주목받으며 마이크를 잡은 이는 모두 16명. 이 자리에서 어떤 얘기들이 오갔으며 새로운 콘텐츠 트렌드는 뭔지 세가지 열쇳말로 정리해봤다.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위워크 서울역점에서 열린 ‘2018 스페이스 오디티’ 콘퍼런스에서 박찬일 셰프가 평양냉면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스페이스 오디티 제공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위워크 서울역점에서 열린 ‘2018 스페이스 오디티’ 콘퍼런스에서 박찬일 셰프가 평양냉면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스페이스 오디티 제공
■ 모든 게 다 콘텐츠

지금은 음악, 영상뿐 아니라 맥주, 냉면, 백열전구 등도 콘텐츠가 되는 시대다. 김 대표는 “네이버, 페이스북, 유튜브 등 온라인 서비스뿐 아니라 메신저 대화방, 술자리 대화 같은 것도 플랫폼이고 여기서 오가는 얘기가 다 콘텐츠다. 요즘 뜨는 맛집, 유행하는 패션, 인테리어처럼 라이프스타일이 다 콘텐츠가 되는 시대가 왔다”고 설명했다.

송채연씨가 대학교 2학년 때인 2011년 학교 선배와 창업한 ‘스타일쉐어’는 패션 에스엔에스다. 이용자들이 각자 입은 옷, 신발 등 사진을 올리면 그게 콘텐츠가 된다. 사람들은 남들이 올린 콘텐츠를 즐기고 반응한다. 스타일쉐어는 15~29살 여성 인구의 80%에 해당하는 380만명이 쓰고 있거나 써본 적 있는 인기 애플리케이션이 됐다. 2016년부터 쇼핑 기능도 결합해 지난해 거래액 300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수제맥주 회사 ‘더부스’는 맥주에 스토리를 담았다.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기사를 쓴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 기자 대니얼 튜더, 한의사 김희윤, 애널리스트 양성후가 의기투합해 2013년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에 작은 맥줏집 문을 연 게 더부스의 시작이다. 더부스는 2014년 덴마크 회사 미켈러와 협업해 ‘대동강 페일에일’을 국내 출시하려 했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제품명을 두고 “대동강 물이 들어갔다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며 불허했다. 결국 인쇄된 상표의 ‘동’ 자 위에 일일이 스티커를 붙이고 ‘대강 페일에일’이란 이름으로 내놓게 됐다. 더부스는 “너의 이름 꼭 찾아줄게”라는 동영상으로 이 사연마저 콘텐츠화했다.

최근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더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평양냉면은 에스엔에스 단골메뉴다. 냉면 사진은 물론 ‘냉면은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식의 면스플레인(냉면에 대한 지식을 과시하는 태도를 뜻하는 신조어)을 곧잘 발견할 수 있다. 박찬일 셰프는 “평양냉면이 지닌 이질성과 신비로움이 부각되고, 블로그·에스엔에스 등 1인 미디어를 통해 자칭 미식가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평양냉면이 중요한 콘텐츠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일광전구의 화분을 닮은 백열전구 조명. 일광전구 제공
일광전구의 화분을 닮은 백열전구 조명. 일광전구 제공
1962년 창업한 일광전구는 백열전구를 만드는 회사다. 하지만 2010년대 초중반 정부가 에너지 효율을 이유로 가정용 백열전구 퇴출을 결정하면서 존폐 기로에 섰다. 일광전구는 유일한 백열전구 제조사로 남는 길을 택했다. 대신 제품 디자인을 고급화해 인테리어 소품으로 격상시켰다. 이제 이 회사 백열전구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한 아이템으로 통한다. 권순만 일광전구 브랜드 디렉터는 “인스타그램에서 조명, 조명빨, 전구 등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6만개가 넘는다. 이제는 전구를 생필품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의 하나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광전구는 인천 중구의 낡은 건물을 개조해 백열전구를 테마로 한 전시장 ‘라이트 하우스’를 올가을 열 계획이다.

일광전구와 협업한 제주도 펜션 토리코티지의 내부 모습. 일광전구 제공
일광전구와 협업한 제주도 펜션 토리코티지의 내부 모습. 일광전구 제공
■ 허물어지는 경계

요즘 콘텐츠 트렌드에서 주목할 만한 또다른 특징은 경계가 무너진다는 점이다. 1990년대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유튜브로 음악을 많이 듣는다. “이들은 뮤직비디오 하나를 보고 나면 관련 영상으로 타고 넘어가면서 감상한다. 이들에게 장르, 스타일, 국적 같은 경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게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음악가들도 장르를 따지며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이젠 일렉트로닉, 아르앤비, 힙합, 록 등의 경계가 사라진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플랫폼과 콘텐츠의 경계가 허물어진 사례도 있다. 가수 윤종신이 매달 음원을 발표하는 프로젝트 ‘월간 윤종신’이 대표적이다. 조영철 미스틱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월간 윤종신을 2010년부터 9년째 이어오다 보니 열렬한 팬덤은 아니어도 취향을 공유하는 구독자가 생기더라. 월간 윤종신은 음악 콘텐츠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플랫폼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미 서울에 10곳 넘게 생겨난 글로벌 공유 오피스 ‘위워크’는 물리적 공간이 플랫폼이 된 경우다. 1인 기업, 스타트업 등이 사무공간을 공유하면서 특유의 문화를 형성한다. 각자 공간에서 일하다가도 라운지에서 커피, 맥주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혀 다른 분야의 두 업체가 협업해 새로운 판을 벌이기도 한다. 현혜조 위워크 마케팅 디렉터는 “회사와 회사의 경계를 허물 뿐 아니라 일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것도 위워크가 추구하는 문화”라고 설명했다.

배달의 민족과 더부스가 협업해 만든, 치킨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맥주 ‘치믈리에일’. 더부스 제공
배달의 민족과 더부스가 협업해 만든, 치킨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맥주 ‘치믈리에일’. 더부스 제공
■ 연결·공유·공감의 힘

사람과 사람, 콘텐츠와 콘텐츠가 연결되고, 사람들끼리 콘텐츠를 공유하고 공감함으로써 더 큰 힘이 생긴다는 것도 요즘 콘텐츠 생태계의 새로운 흐름이다. 고건혁 대표는 “과거에는 음악가들이 독립적으로 각자 활동했는데, 밀레니얼 세대 친구들은 에스엔에스, 유튜브 등으로 연결해 협업할 사람들을 찾더라. 밴드 새소년은 영상 서비스 비메오를 보고 독일 베를린에 있는 생면부지의 일본 작가에게 연락해 ‘긴 꿈’ 뮤직비디오 작업을 같이 했다”고 전했다.

기업들의 활발한 협업활동도 새로운 콘텐츠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더부스는 방송 프로그램, 출판사, 각종 브랜드 등 다양한 업체와 60건 넘는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최근에는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이 주최한 ‘치믈리에’ 이벤트와 협업해 ‘치믈리에일’ 맥주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벤트에서 선발된 치킨맛 감별사 119명과 함께 치킨과 가장 잘 어울리는 맥주를 개발한 것이다. 일광전구도 제주도 펜션 토리코티지, 음악 축제 그랜드민트페스티벌 등과 협업해 근사한 결과물을 내놓기도 했다. 위워크는 회사들끼리 자연스럽게 협업하는 문화를 조성하고 있다.

개인들이 콘텐츠를 공유하고 더 많이 공감할수록 영향력이 커지기도 한다. 패션 에스엔에스 스타일쉐어의 장점은 일상의 공감에 있다. 다른 패션 에스엔에스 서비스들이 모델이 입은 근사한 옷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과 달리 스타일쉐어는 주변의 평범한 이들이 입은 일상복을 공유함으로써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송채연 스타일쉐어 공동창업자는 “유튜브를 보면 패션, 뷰티 분야 인기 유튜버들이 많은데, 스타일쉐어에서는 생소한 이들이 인기를 얻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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