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군 가야리 일대에서 확인된 5~6세기 아라가야의 대형 토성 성벽. 비슷한 시기 가야권역의 토성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아라가야는 5~6세기 한반도 남부에서 가야 연맹국을 이룬 여섯개 작은 나라(가야 6국)중 하나다. 경남 함안에 있었다는 이 나라는 고대 일본의 사서 <일본서기>에 529년 백제, 신라, 왜국과의 국제회의를 주선했다는 기록이 나올 만큼 세력을 떨쳤다. 이런 문헌 기록들과 달리 고분 말고는 뚜렷한 유적이 없었던 아라가야의 왕성터가 처음 세상에 나와 관심을 모은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최근 함안군 가야리 일대 4200여평을 발굴한 결과 큰 토성과 울타리·건물터 등 5~6세기 아라가야의 왕성 추정터를 발견했다고 7일 발표했다.
확인된 토성은 전체 높이 8.5m, 윗부분 폭은 20~40m로 비슷한 시기 가야권역에서는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흙 쌓는 과정에서 성벽이 밀리지 않도록 공정마다 나무기둥을 박았고, 층층이 흙을 쌓아 다지는 판축 기법을 썼다. 윗부분에는 방어 울타리로 보이는 두줄의 나무기둥 흔적들도 확인됐다. 연구소 쪽은 “같은 시기 가야권역의 다른 유적엔 없는 왕성급의 축조기법과 규모”라고 분석했다.
토성 안에서 확인된 울타리(일렬로 이어진 작은 동그라미 표시)와 건물터, 수혈(왼쪽 네모진 구덩이) 유적의 모습.
토성 안에는 울타리 흔적과 건물터, 구덩이 등이 나왔다. 건물 터는 고상건물(땅위에 기둥을 세워 건축물 바닥을 높게 올린 건물)로 추정된다. 구덩이는 암반을 파들어간 것으로 안에 부뚜막 같은 흔적이 있고, 고분 의례 공간에서 발견되는 원통모양그릇받침(통형기대)이 나와 특수한 용도로 파악된다. 토성 축조시기를 알려주는 유물인 토기류는 손잡이 달린 그릇(파수부완)과 붉은빛 연질토기 조각들이 나왔는데, 5세기 중반~6세기 중반께의 것들이다.
발굴된 유적, 유물들은 아라가야의 토목기술과 방어체계, 생활문화를 처음 밝혀주는 고고학 자료들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연구소 쪽은 “아라가야가 가야 중심세력으로 활동했던 정치·경제적 배경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성과들”이라며 “<일본서기>의 6세기 기록에 나오는 ‘안라왕(아라가야 왕)’의 거주 공간을 추정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토성 유적에서 나온 5~6세기대의 아라가야 토기류 조각들.
가야리 일대는 16세기 나온 읍지 <함주지> 등에서 아라가야 왕궁터로 지목됐던 곳이다. ‘선왕고분군’, ‘신읍(臣邑)’ 등 왕궁과 연관된 지명도 전해지나,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장 설명회가 11일 오후 3시 열린다.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