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최근 한한령 완화 움직임을 보이면서 문화콘텐츠 교류에 대한 기대감도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중국 문화콘텐츠 제작회사로부터 100만달러를 투자받은 뮤지컬 <벤허>, ‘2018 상하이 국제 티브이 페스티벌’에 출품되는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칸국제영화제 필름 마켓에서 중국인들의 관심을 모은 영화 <허스토리>, 10월 중국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심야식당>, 중국 수출 계약을 앞둔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각 제작사·방송사 제공
지난 4월 열린 ‘제8회 베이징국제영화제’에 한국영화가 초청된 데 이어, 오는 12일 ‘2018 상하이 국제 티브이 페스티벌’에서 2년 만에 한국공동관이 운영되면서, 2016년 한반도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중국 정부가 내린 한한령(한류제한령)이 완화 국면에 접어드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한국·중국 두 나라 모두 리더십 교체 또는 정비가 이뤄진 이후 정상간 교류가 재개된 데 이어 남북관계도 개선되면서 한국의 대중문화콘텐츠들이 대륙을 향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10월 중국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심야식당>. <한겨레> 자료사진.
■ 중국 진출, 투자 ‘낭보’ 쏟아지는 뮤지컬 중국과의 교류가 가장 활발한 곳은 공연계다. 중·소극장 창작 뮤지컬의 라이선스 진출이 늘고, 한국 대형 창작 뮤지컬에 중국 자본 투자가 이뤄지는 등 중국 관련 낭보가 쏟아진다. 공연제작사 라이브의 <마이 버킷 리스트>는 지난해 8월과 올해 3월 중국 상하이에서 공연을 성사시킨 데 이어 영화 제작을 위한 사전작업(프리 프로덕션)을 하고 있다. 극단 연우무대의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중국 대형 제작·배급사인 카이신마화와 중국 전역에서 공연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앞두고 있다. 뮤지컬 <심야식당>도 올해 초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상하이에서 배우 오디션 등 10월 공연을 목표로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수출 계약을 앞둔 <오! 당신이 잠든 사이>. <한겨레> 자료사진
중국 자본이 한국에서 공연되는 대극장 뮤지컬에 투자하는 첫 사례도 나왔다. 지난 4월 한국 대형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과 <벤허>는 중국 문화콘텐츠 전문 제작회사로부터 각각 100만달러씩 투자받았다. 두 작품 제작사인 인터파크 자회사 뉴컨텐츠컴퍼니(NCC)는 대만, 홍콩 등 중화권 투어 공연도 적극 검토중이다. 이종규 인터파크 공연사업본부장 겸 뉴컨텐츠컴퍼니 프로듀서는 “사드 이후 주춤했던 한중 문화산업 교류를 다시 본격화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중관계 경색으로 지난해 홍콩에서 열렸던 ‘케이(K)-뮤지컬 로드쇼’도 올해는 다시 상하이에서 개최된다. 이 자리에선 예술경영지원센터(예경) 공모에서 선정된 한국 창작뮤지컬 5편이 소개된다.
중국 뮤지컬 규모는 2016년 기준 매출액 300억원으로 한국 시장(3천여억원)의 10분의 1 수준이나 풍부한 잠재관객, 공연장 확대 등으로 성장가능성이 높다. 박병성 공연평론가는 “중국은 뮤지컬 제작능력과 인적 인프라가 부족하다.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의 작품보다 정서적으로 가까운 한국 뮤지컬에 기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중론도 나온다. 김신아 예경 산업진흥실장은 “중국은 아직 불안정성이 큰 만큼 현지 뮤지컬계와의 긴밀한 관계를 쌓아야 한다”면서 “중국 시장만을 노린 뮤지컬보다는 더 다양한 문화권에서 유통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2018 상하이 국제 티브이 페스티벌’에 출품되는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제이티비시 제공
■ 방송, 영화도 ‘신호’는 온다 한한령으로 타격이 컸던 방송과 영화의 경우 당장 손에 잡히는 성과는 없지만, 중국이 한국 콘텐츠에 다시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여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방송업계에서는 12~14일 열리는 ‘2018 상하이 국제 티브이 페스티벌’이 국내 방송콘텐츠의 중국 수출 재개 가능성을 타진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페스티벌은 각국의 제작물들이 총출동하는 중국 최대의 방송영상콘텐츠 시장인데 한국은 지난해엔 참여하지 못했다. 2년만에 재등장한 한국공동관에선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에스비에스>(SBS), <교육방송>(EBS)과 씨제이이앤엠(CJ E&M), <제이티비시>(JTBC)와 15개 미디어 기업이 <이리와 안아줘> <미스 함무라비> 등 드라마와 예능을 선보인다. 이에 앞서 중국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국 스타를 내세운 콘텐츠 제작이 활발해지기도 했다. 중국 웨이보는 한류 스타 라이브 방송을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브이 플러스’를 개설해 ‘박해진 채널’을 내보낸 바 있다.
칸국제영화제 필름 마켓에서 중국인들의 관심을 모은 영화 <허스토리>. <한겨레> 자료사진.
영화계에서도 지난달 열린 칸국제영화제에서 중국 바이어들이 한국영화에 큰 관심을 나타냈으며, 이를 전후해 일부 영화가 중국 수출 계약을 한 것이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칸국제영화제 필름 마켓에서는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된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세계 100여 개국에 수출된 가운데, 수출국 명단에 중국이 포함됐다. 이 밖에도 위안부 문제를 다룬 민규동 감독의 실화 영화 <허스토리> 등 역사물에 대한 중국 바이어들의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중국에서 활약한 바 있는 곽재용 감독의 최신작 <바람의 색>도 중국 수출이 성사된 바 있다. 지난 4월 열린 ‘제8회 베이징국제영화제’에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 연상호 감독의 <서울역>, 홍상수 감독의 <클레어의 카메라> 등 한국영화가 대거 초청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와 방송계 역시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국내 최대 영화 투자배급사인 씨제이이앤엠 관계자는 “중국 바이어들이 한국영화를 구매한다고 해서 이것이 중국 내 상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 쪽에서도 한한령의 해소를 기대하며 작품을 구매하는 것일 뿐이다. 중국 개봉 일자가 확정돼야 실질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에서 144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신과 함께>는 지난 3월 말 중국의 문화·미디어 산업을 총괄하는 주무부처인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에 심의를 신청했으나 아직까지 상영 허가를 받지 못했다. 방송콘텐츠 역시 상하이 페스티벌에서 곧바로 계약 실적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다. 방송업계 쪽에선 행사 현장에서 바이어와 미팅을 하고 상담은 하겠지만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라는 의견이 많다.
칸국제영화제 필름 마켓에서 중국에 수출된 영화 <버닝>. <한겨레> 자료 사진
■ 음악·게임 업계는 여전히 ‘얼음’ 게임·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선 좀처럼 훈풍이 불지 않고 있다. 국내 게임이 중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하려면 정국 정부로부터 심의를 받고 ‘판호’(고유번호)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이를 받은 국내 게임은 하나도 없다. 엔터테인먼트 쪽도 뚜렷한 변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중국 최대 게임쇼 차이나조이가 올해엔 ’한국관’ 명칭을 허용하는 등 미세한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해 한국은 차이나조이에 최대 규모의 전시관을 꾸렸지만 주최 쪽이 ‘한국'이나 ‘KOREA'라는 이름을 허락하지 않아 ‘코카 파빌리온(KOCCA Pavilion)'이라는 애매한 명칭을 붙였다. 일부 엔터테인먼트 업체에선 현지화 전략도 취하고 있다. 제이와이피엔터테인먼트는 9월께 평균 나이 13살의 중국 소년 6명으로 꾸린 아이돌 그룹 ‘보이스토리’를 데뷔시킬 계획이다.
남지은 김미영 유선희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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