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극 <리처드 3세>
절대악의 화신을 허무주의자로 표현
프랑스 연극 <리차드 3세>
2인 광대극으로 재해석해 잔혹함 극대화
절대악의 화신을 허무주의자로 표현
프랑스 연극 <리차드 3세>
2인 광대극으로 재해석해 잔혹함 극대화
‘셰익스피어가 창조해낸 가장 매력적인 악인’ 리처드 3세가 각기 다른 연극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독일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연극 연출가가 실존인물인 리처드 3세로 이달 맞대결을 펼친다. 각각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선보이는 두 연극은 인물 해석, 무대 연출도 달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먼저 무대에 오르는 건 독일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리처드 3세>다. 작품마다 기발한 해석으로 공연마다 충격을 던지는 오스터마이어는 현대 실험 연극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샤우뷔네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유럽 연극계의 거장이다.
그가 선보이는 <리처드 3세는> 2015년 샤우뷔네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 시대를 연상시키는 반원형 무대와 무채색의 황량한 구조물, 흩날리는 꽃가루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해 핏빛 살육의 현장을 강렬하게 부각한다. 특히 객석을 넘나드는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강한 비트의 라이브 드럼 연주가 몰입감을 높인다. 천장에 매달린 마이크를 권력의 메타포(은유)로 활용하거나 죽은 리처드 3세를 정육점 천장에 매달린 고깃덩어리처럼 표현하는 연출 방식도 새롭다.
오스터마이어는 “이 작품을 만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주제는 권력과 욕망”이라면서 “리처드 3세는 자신의 환상에 갇힌 위험한 사이코패스라기보다는 니힐리스트(허무주의자)에 가깝다”고 해석했다. 그는 “리처드 3세가 저지르는 악행들이 평소 우리의 내면에서도 충분히 저지르고 싶은 행동들이기 때문에 관객들도 그에게 매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극에서 리처드 3세를 맡은 배우는 라르스 아이딩어다. 2010년에 오스터마이어의 또 다른 연극 <햄릿>으로 내한한 바 있는 그는 이번엔 왕좌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는 심리 변화를 신들린 연기력으로 표현해낸다. 17일까지 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
프랑스 리무쟁 국립연극센터 예술감독인 장 랑베르-빌드는 원작을 2인 광대극으로 재해석한 <리차드 3세>도 선보인다. 등장인물만 40여 명에 달하는 원작의 서사를 단 2명의 배우가 풀어나가며 2016년 초연 당시 프랑스 연극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그간 수많은 리처드 3세가 인물의 악행과 비극에 집중했다면 이번 공연은 광대극 특유의 유머가 특징이다. 비극에 희극 요소를 섞고, 희극 속에 비극 요소를 숨겨두는 셰익스피어의 천재적인 극작술을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하지만 광대의 익살스러운 표정은 오히려 리처드 3세의 잔혹함과 양면성을 더욱 극적으로 부각한다.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무대 디자인도 환상 동화의 한 장면처럼 흥미롭다. 평소 “연극의 기술은 시적인 미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장 랑베르-빌드의 연극 철학을 그대로 담았다.
장 랑베르-빌드는 자신을 리처드 3세라고 여기는 광대역을 맡아 직접 연기도 한다. 하얀 분칠을 하고 러플 칼라(풀 먹인 리넨, 레이스를 정교하게 주름 잡아 만든 높고 둥근 옷깃)를 목에 두른 그는 곱사등 없이 파자마 차림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등장해 관객을 사로잡는다. 다른 한 명의 출연자인 로르 올프는 리처드 3세와 엮이는 여인들과 리처드 3세의 수족들을 연기한다. 무대 위에서 쉴 새 없이 의상과 분장을 교체하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29일부터 7월1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연출한 연극 <리처드 3세>. 엘지아트센터 제공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연출한 연극 <리처드 3세>. 엘지아트센터 제공
장 랑베르-빌드가 연출한 연극 <리차드 3세>. Tristan Jeanne-Vales 제공
장 랑베르-빌드가 연출한 연극 <리차드 3세>. Tristan Jeanne-Vale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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