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화가 휴버트 보스가 1899년 그린 <서울풍경>. 봄날 북악산 아래 경복궁, 광화문과 서울 도심 일대의 풍경을 파노라마 구도로 정갈하게 담았다. 국내에서 그려진 서양식 유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미술사적 의의가 큰 작품이다.
36년전, 서울 덕수궁 석조전 신관 전시장에는 비운의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수심과 애상에 잠긴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는 그림이 처음 내걸렸다. 1982년 7월부터 1983년 5월까지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네덜란드 작가 휴버트 보스(1855~1935)의 고종황제 초상화 ‘특별전시회’였다.
보스의 손자인 미국 기업가 휴버트 보스 3세한테서 빌려온 출품작은 겨우 석점. 하지만 특별전은 대박이 났다. 언론은 처음 공개된 고종 생전의 유화 초상화임을 부각시키며 대서특필했고, 국내에서 가장 연대가 이른 유화 제작품의 실물을 보여준다는 점도 큰 화제를 모았다.
1899년 6월 휴버트 보스가 한달간 서울에 머물며 그린 이 작품들은 관복을 입은 고종 황제의 전신상 초상과 왕실 외척 민씨 일가의 엘리트 관료였던 민상호의 선비 복식 차림 초상, 그리고 북악산 자락 아래의 봄날 정경을 그린 <서울풍경>이란 풍경화였다. 당대 유럽과 미국에서 뛰어난 초상화가로 이름난 보스가 마침 초상화 스케치 여행중 한국을 찾아와 관료 민상호의 위풍당당한 초상화를 그렸고, 이 사실이 알려지자 고종이 그에게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휴버트 보스가 그린 고종황제의 초상화. 원래 두벌을 그렸다. 고종을 모델로 정밀하게 그린 한벌은 덕수궁에 봉안했다가 화재로 불타 전하지 않는다. 현재 남은 고종의 초상은 보스가 기억을 되살려 그린 그림이다.
보스가 그린 조선 관료 민상호의 초상. 당당하면서도 지적인 엘리트 관료의 풍모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휴벗보스라는 작가 이름이 한글로 적혀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보스가 고종 초상을 그린 사실은 구한말 <황성신문>이나 황현의 <매천야록> 등에 거금 1만원을 받고 제작한 기록 등이 나온다. 그러나 고종초상은 덕수궁에 봉안됐다가 1904년 대화재로 궁이 불타 더이상 볼 수 없게 됐다는 사실만 전해오던 터였다. 이런 기록과 달리 보스의 그림 컬렉션이 아직 남았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건 1979년 <코리아쿼터리>란 영문 계간지를 통해서였다. 미국 코네티컷에 사는 보스의 후손이 고종과 민상호의 초상, <서울풍경>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고, 당시 미국서 박물관 연구원으로 일하던 미술사학자 김홍남이 직접 후손의 집을 찾아가 그림을 열람하고 한국전시를 기획해 성사된 것이다.
고종초상을 실견한 기쁨은 컸지만, 열달의 전시기간이 지난 뒤 세 작품은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했다. 기획을 주도했던 이경성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장과 김홍남은 전시기간 국내 미술관이나 기업을 후손들과 연결시켜 작품을 매입하는 방안을 알선할 요량이었지만, 그 정도까지 관심을 가진 이들은 없었다. 김홍남은 “그림이 돌아가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던 생각부터 난다”고 했다.
이후 소장자가 <서울풍경>을 제외한 고종 초상과 민상호 초상을 경매에서 처분하며 작품의 운명은 엇갈린다. 1998년 김희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1958~1999)가 ‘근대를 보는 눈’ 전시를 기획하면서 재미동포 수장가에게 넘어간 고종 초상을 빌려왔는데, 우연히 한국에 왔다가 전시회를 보게 된 휴버트 보스 3세가 반가워하면서 수중의 <서울풍경>도 함께 대여전시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 두 작품은 상설 전시되다가 <서울풍경>은 2003년 미술관이 매입했고, <고종 초상>은 소장자와의 이견으로 회수돼 지금은 소재를 모르는 상태다. 국내 화상한테 넘어갔다는 설이 나오는 민상호 초상도 소재가 불분명해 앞으로 두 작품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