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을 인솔하는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지난 3월31일 오후 평양순안국제공항에 도착, 박춘남 문화상(가운데),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의 환영을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0일 언론을 비롯해 민간에서 각종 남북교류 제안이 쏟아지는 데 대해 “북한은 일단은 남북정상끼리 합의한 것, 고위급회담에서 논의하기로 한 것부터 먼저 하자는 입장”이라며 “우리 정부 입장 역시 차분하고 질서있게 해나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 장관은 이날 한국여기자협회가 주최한 오찬간담회에서 언론사의 북한 지국 설치 문제에 대해서도 “문체부가 관여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지국을 지금 바로 세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평창겨울올림픽을 비롯해 남북 문화·체육 교류의 주무 장관인 그는 북한의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치권에 들어오기 이전 시인으로서 남북 예술교류를 위해 여러번 북한과 접촉했던 경험을 비교하며 “예전에 북한 사람들은 논의·협상하다가 잘 안되면 그냥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거나 중단시키고, 중단시키면서도 아무 설명도 안해주는 일이 있었는데 이번엔 북한이 정말 달라졌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도 장관은 “지난 2월 남한에 왔던 삼지연관현악단의 연주곡 중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노랫말이 있어서 내가 빼야 한다고 했더니 북한이 결국 이를 수용했다. 애초 연주곡이 적혀 있던 팸플릿도 배포 하지 말자고 하자 여기에도 동의해줬다. 북한이 굽히는 모습을 처음 봤다. 유연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인상에 대해 묻자 “그동안 김 위원장은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으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그 한복판에 있었고 그에 대한 정보들로 안 좋은 이미지만 있었는데 직접 보니 (밖에 비친 이미지와는 달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내 자신에서부터 내적 충돌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남북이 직접 만나는 시기로 전환되고 있으니 이미지보다 실체를 먼저 보자, 있는 그대로 보자고 생각했다”고 전제하며 “직접 만나보니 무슨 주제든 거침없이 자연스럽고 화통하게 얘기했다. 호기심도 많고 남쪽 문화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기자가 “가십성 질문을 하겠다”며 리설주 여사·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세 명 중 ‘누가 가장 멋있냐’고 묻자 “내가 또 북한에 가야하니 이거 답변하면 곤란하겠다. 북한에서는 남한 뉴스 다 본다. 지난번엔 고위급 인사가 ‘드루킹이 뭐냐’고 나한테 묻기도 했다”며 재치있게 넘어갔다.
지난 4월 평양에서 진행된 ‘봄이 온다’ 공연 뒷얘기도 소개했다. 그는 “김 위원장과의 만찬장에서 윤도현이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록 버전으로 부르는 와중에 노랫말이 (스크린 자막으로) 띄워졌다. 마지막 노랫말 ‘남자는 다 그래’가 나오자 김여정·리설주 두 사람이 ‘맞아~’라고 공감하면서 손뼉을 치더라. 남이나 북한이나 ‘남자는 다 그렇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김 위원장이 “왜 온다던 배우(가수)가 안 왔느냐”고 물으며 나훈아를 언급했다는 얘기도 전했다.
도 장관은 “당시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현송월 단장을 만났는데 그의 첫 질문이 ‘우리 노래 많이 준비해오셨습니까?’였다. 북한은 2월에 남한 노래를 10곡 넘게 준비했는데 우리는 북한 노래를 불러본 적도 없고 아는 것도 없었다”며 “우리가 더 경직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우리는 북한에 남한 음악 영향을 많이 주려고 하면서 정작 저쪽을 알려는 노력은 안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도 장관은 마무리 발언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언급하며 “기자로 살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웨일즈의 시인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1871~1940년)의 시 ‘삶의 여유’를 읊었다.
그것이 무슨 인생인가, 근심으로 가득 차 잠시 멈춰 서 바라볼 시간조차 없다면.
나뭇가지 아래서 양과 소의 순수한 눈길에 펼쳐진 풍경을 차분히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숲을 지나면서 수풀 속에 도토리를 숨기는 작은 다람쥐들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대낮에도 마치 밤하늘처럼 반짝이는 별들을 가득 품은 시냇물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다정한 눈길에 고개를 돌려 춤추는 그 고운 발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된 그녀의 환한 미소가 입가로 번질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면.
얼마나 가여운 인생인가, 근심으로 가득 차 잠시 멈춰 서 바라볼 시간조차 없다면.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