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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아이러니한 구사일생 이후…찢기고 버려진 궁 안의 시간

등록 2018-07-31 05:00

작품의 운명 ⑧ 김주경의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

발전된 경성 근대적 경관 담아
‘항일성향’ 작가 뜻 무관하게
이왕가 ‘내선일체’ 표상으로 구입
해방 뒤 창덕궁 방치…훼손 극심
보존 관리 기록조차 남지 않아
김주경이 1927년 그린 유화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 1929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 특선작으로 당시 옛 조선왕실의 후신인 이왕실에서 직접 구입해 눈길을 모았던 작품이다. 해방 뒤 창덕궁에 방치돼 크게 훼손됐다가 1980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돼 복원수리가 이뤄졌다.
김주경이 1927년 그린 유화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 1929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 특선작으로 당시 옛 조선왕실의 후신인 이왕실에서 직접 구입해 눈길을 모았던 작품이다. 해방 뒤 창덕궁에 방치돼 크게 훼손됐다가 1980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돼 복원수리가 이뤄졌다.
요즘도 직장인들로 붐비는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 뒤쪽 골목 풍경을 91년전 영원의 이미지로 남긴 작가가 있었다. 오지호(1905~1982)와 더불어 한국적 인상주의를 개척한 화가 김주경(1902~1981). 그가 1927년 그린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은 근대 도시공간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화폭에는 1927년 당시 ‘하세가와 마치’라고 불렀던 소공동 조선은행 뒤쪽 골목길 주변 풍경이 짜임새있게 그려졌다. 멀리 북악산과 경성부청(서울시청), 경성공회당의 첨탑이 보이고 그 아래 자잘한 건물들과 담벼락 아래 사잇길로 여인이 걸어간다. 하얀 원피스 차림에 빨간빛 양산을 쓰고 걸어가는 뒤태가 당대의 모던 걸이다. 폭염 머금은 햇빛을 받아 주위 건물들이 허연 광채를 내뿜는 가운데, 그 중심에 빨간 빛 양산을 둘러쓴 ‘모던걸’의 뒷 모습은 화룡점정처럼 화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김주경은 도쿄미술학교 출신의 엘리트 화가로, 해방 뒤 월북해 북한 평양미술대학의 학장을 오랫동안 지냈다. 당시 유행하던 일본풍의 인상주의 사조인 ‘외광파’의 영향을 벗어나 1930년대 중반 청명한 조선의 하늘과 자연의 색채감을 표현한 토착적 인상주의 화풍을 선보였다. 1938년 국내 최초로 오지호와 함께 출간한 2인 컬러화집은 우리 근대미술사의 획기적 사건으로 기록된다. <북악산…>은 1929년 조선미술전람회 특선작으로 특유의 인상주의가 본격적으로 시도되기 전의 작품이다. 하지만, 근대건물들에 부딪히는 빛의 굴곡을 생생하게 부각시켜 일찍부터 인상파 화풍에 심취한 흔적을 보여준다. 근대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의 한국판 풍경화라고 할 정도로 그림 속 건물들은 단단하고 구축적인 양상을 띠어 작가가 서구 근대회화사의 흐름을 체화했다는 것도 일러준다.

<북악산…>은 1938년 덕수궁에 전용미술관(이왕가 미술관)을 세운 이왕가(옛 조선왕실의 후신)가 수집한 몇 안되는 국내 작가 컬렉션중 일부다. 이왕가는 일본 근대미술품들과 한반도 고미술품들은 집중수집했지만 국내 작가들 작품은 구입하지 않았다. 후대 사가들은 <북악산…>을 사들인 배경으로, 경성의 발전된 근대적 경관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당시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을 뒷받침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고있다. 김주경은 1927~29년 선전에 3회 연속 특선을 했지만, 그 뒤로는 선전을 어용전람회로 보고 아예 출품하지 않을 정도로 항일 성향을 보였다. 그런데도, <북악산…>이 내선일체를 표상하는 컬렉션으로 이왕가가 구입한 덕분에 살아남았다는 건 아이러니다. 김주경은 자신의 작품들을 해방 뒤 학교와 신문사 등에 기증했으나 대부분 전쟁 때 소실됐다. 오지호와의 2인화집에 실린 <가을의 자화상> 등의 명작 10점도 전하지 않는다. <북악산…>은 살아남았지만, 미술관에는 상처 투성이로 들어왔다. 해방 뒤 창덕궁에 방치됐다가 1980년 12월 함께 있던 서양화 10점과 함께 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소장처가 바뀌었다. 이관 당시 작품은 물감층 곳곳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극심하게 훼손돼 별도의 수복과정을 거쳐야 했다. 문화재청에 확인한 결과 80년 이관 전까지 이 그림이 어디서 어떻게 관리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1980년 이관 공문에는 ‘현대미술품은 현대미술관에 이전하여 일괄 보존관리하도록 감사원에 의해 지적되어 시정 조치를 하는 것’이라는 내용만 적혀 있었다. <북악산…>은 국가의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했던 우리 근대문화유산의 쓰라린 상처를 오롯이 간직한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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