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월지 복원건물지 앞으로 지나가는 옛 석조수로의 일부 모습.
7세기 후반 통일신라 문무왕 19년(679)에 세자의 동궁전을 포함한 궁궐정원으로 만들어진 경주 인왕동 월지(안압지)는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중 하나다. 1975~76년 발굴조사에서 3만점 이상의 유물을 쏟아낸 이 유적은 80년 전면복원된 이래 현지에서 가장 큰 인기를 모으는 명소로 꼽힌다.
연못과 어울려 빼어난 조경미를 자랑하는 월지 정원은 일반 관객들은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인 독특한 딸림 유적을 하나 품고 있다. 월지 서쪽 기슭의 첫 번째 복원건물 서쪽에서 시작해 지그재그 모양으로 이어진 채 나타나는 돌수로다. 회랑 터와 건물터를 타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9번이나 꺾여 이어지는 이 돌수로는 너비 29~30cm, 전체 길이는 107m나 되는데,시작과 끝부분은 어디인지 정확하게 모른다. 시작부분과 중간 부분에 폭이 다소 넓은 큰 수조형 용기 2개가 나타나 물길이 다소 넓어지면서 연결되는 수로는 개당 길이 2.4~1.2m에 이르는 통돌 수십여개를 깎아 벽면과 바닥을 정교하게 다듬으며 이은 것이 특징이다. 75~76년 안압지 발굴 훨씬 전부터 연못 부근의 주요 유물로 경주 사람들에게 알려져왔지만, 수로의 정체는 지금까지 오리무중이었다. 옛 건물 처마끝에서 비가 오면 떨어지는 낙숫물에 땅이 패이지 않도록 하는 장치라는 막연한 추정만 냈을 뿐 학계의 연구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 수로가 낙숫물받이가 아니라 정원의 고급 전각이 불이 났을 때 효율적으로 불을 끄기위한 국내 최고 소화전이라는 학설이 최근 나왔다. 박홍국 경주 위덕대 박물관장은 신라사학회의 학술지 <신라사학보>43호에 실은 ‘신라 동궁지 석조수로의 기능에 대한 고찰’란 논문에서 석조수로는 월지 서편의 회랑내 중심건물과 호안 건물에 불이 날 때를 대비한 방화 전용시설이었다는 견해를 처음 내놓았다. 단시간에 소방용 물을 조달하기 위한 시설로서 국내외 전무후무한 방화용 수로라는 게 그의 주장인데, 구체적인 정황 분석과 근거를 내놓아 눈길이 쏠린다.
박 교수는 우선 수로가 낙수받이가 되려면, 수로가 건물의 동서남북 방향 처마 끝선 아래 모두 설치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며, 석조수로 바닥 면에도 패인 자국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다고, 경관용으로 생각하기엔 수로나 중간 수조의 폭이 너무 좁다. 게다가 수로들은 회랑 내부를 지나거나 건물 기단 앞에도 있어 되려 경관을 해치고 통행에도 불편을 준다. 회랑을 갖춘 존엄한 궁궐 구역 안에서 좌우대칭이란 관행을 깨뜨린 시설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굳이 이런 시설물을 설치한 이유를 추적해보면, 화재가 일어날 경우 바로 옆에서 물을 퍼올리며, 신속하게 불을 끌 수 있는 방화 수로, 즉 통일신라판 소화전이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게 박 관장의 추정이다. 얼핏 큰 연못인 월지가 바로 옆에 있어 화재에도 큰 걱정이 없을 듯 해보이지만, 실제로는 못이 높이 4~5m의 축벽 아래 있어 화재가 날 경우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동궁 궁궐은 구조적으로 불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화재 때 초기진화를 위한 시설을 고민하다 낸 아이디어가 바로 건물과 회랑을 따라 배선처럼 이어지는 정교한 물길이었다는 이야기다. 이 수로는 반경 40m 범위 안에 남문과 회랑 내부 중요 건물이 있는 구역 대부분이 포함돼 한줄만 지나가도 동궁건물을 화재로부터 지켜낼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고 그는 적었다. 화랑과 평행하거나 건물 기단부 외곽을 무려 9번이나 90도로 꺾이면서 지나가게 한 것도, 설치는 하되 조금이라도 통행과 경관에 끼치는 불편함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시공했기 때문에 나타난 배치구도였다는 분석이다. 석조수로를 사이사이 배치한 것도 소화용 물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물에 떠내려오는 자갈돌과 토사를 침전시키기 위한 용도였다고 그는 해석한다. 가장 중요한 궁궐시설인 동궁전의 화재 보호를 위한 시설이기에 수로 내부와 양쪽 테두리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면을 정성스럽게 가공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월지 궁원의 석조수로는 지금은 사라진 장엄한 동궁지 건물을 화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과학적 시설물로서, 국내 소방 전용 시설의 효시일 뿐 아니라 통일신라판 소화전으로 자랑할만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박 관장은 동궁지의 석조수로를 자세히 관찰하다 우연히 물막이판을 꽂았던 홈을 발견하면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석조수로가 낙숫물을 받아 보내거나 단순한 배수로라면 전혀 필요 없는 물막이판 삽입장치가 왜 있을까란 고민에서 출발해 논문을 구상했다고 그는 말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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