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통한 치유와 재구성: 런던의 북한 이탈민들> 논문 쓴 성초롱씨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현재 영국에 약 700여명의 탈북민이 있고 이 중 500여명이 런던 한인타운인 뉴몰든에 살아요. 남북 주민이 함께 사니 한인 행사에서 꼭 나오는 노래가 ‘고향의 봄’ ‘우리의 소원’ ‘아리랑’이죠.”
지난 21~23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2018 ICTM MEA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성초롱(32)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음악인류학 박사과정 연구원이 보기에 한인 2만여명이 사는 뉴몰든은 이미 남북통일이 이뤄진 미래의 도시 같다. 남북한 주민들이 끈끈한 관계를 맺고 살면서 ‘아리랑’을 합창하는 일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영국 내 한인들의 음악과 문화생활’을 3년째 연구 중인 그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세부 주제 중 하나인 ‘음악을 통한 치유와 재구성: 런던의 북한 이탈민들’을 발표했다. 런던 거주 탈북민들이 한인문화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음악의 역할을 짚는 연구다.
지난 21일 국립국악원에서 만난 성 연구원은 “제 전공인 음악인류학은 음악으로 문화를 보는 것”이라면서 “미국·일본·중국의 한인문화 연구는 많은데 유럽은 드물고, 남북한 사람이 한 커뮤니티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흥미로워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럽행을 택한 탈북민들이 특히 뉴몰든으로 몰리는 건 난민 신청이 비교적 쉬워서다. 영국 정부는 2004년부터 탈북민들을 난민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한인타운이 형성돼 있어 언어 장벽 없이 취업할 수도 있다. 탈북민들은 주로 한인들이 운영하는 식당과 슈퍼 등에서 서빙, 청소같은 저임금 단순 노동을 한다. 탈북민이 없다면 영국 동포사회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할 정도여서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는 바가 크다. “탈북민들을 심층면접 해본 결과 이들이 영국을 택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어요. 복지, 자녀교육, 탈북민이 아닌 ‘코리안’으로 보는 인식이요. 영어를 배울 수 있고 자녀들이 편견 없이 자랄 수 있다는 점에서 남한이 아닌 여기로 오는 거죠.”
런던에서 4년째 살며 지켜본 결과 남북 주민들의 편을 가르는 장벽은 보이지 않았다. 탈북민의 99%는 한인교회에 다니면서 빠르게 적응했다. 남북의 중장년층들은 각종 모임에서 찬송가·민요·트로트를 부르며 어울렸다. 서로가 모르는 남북한의 문화는 유튜브를 통해 소통하기도 한다. “언어가 같아 금방 친해지고, 음식을 함께 먹으니 ‘밥정’이 쌓이더라고요. 남한의 ‘뱃노래’를 북한에선 ‘바다의 노래’라고 하는데 다른 노래인 줄 알다가 모두 아는 노래구나 할 때 우리가 한민족임을 느끼시는 거죠.”
탈북민들은 아이들이 영국 사회에 잘 적응해 살면서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길 원했다. 북한 체제가 싫어서 떠나왔을 뿐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마음이 있어서다. “어릴 때 받은 문화교육이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죠. 그런데 한겨레학교엔 음악수업이 없어요. 런던 한인학교에서도 사물놀이 가르치는 게 전부고요. 제가 음악교사 자격증이 있어서 한겨레학교에서 일정 기간 ‘둥글게 둥글게’ 등 동요를 가르쳐봤더니 동요를 배운 아이들이 배우지 않은 아이들보다 한국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이번 연구를 하면서 그가 느낀 건 북한에 대한 관심이 늘었음에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통일시대를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런던 한인타운의 일원인 탈북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부족할 뿐더러 남북의 아이들에게 한민족이란 정체서을 심어줄 수 있는 유년기 문화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성 연구원은 “통일된 미래를 그려보더라도 해외에 있는 한인과 탈북민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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