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판사님께>(에스비에스)가 ‘사이다 법정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 전과 5범인 쌍둥이 동생이, 사라진 판사의 빈자리에 들어와 재판을 한다는 설정으로, 1인2역을 맡은 윤시윤의 연기가 돋보인다. 법정물이긴 하지만 <미스 함무라비>에서 보았던 직업세계에 대한 엄밀한 묘사나 팽팽한 법리 논쟁은 없다. 판사가 사건의 변호사, 검사, 피해자 가족 등을 무람없이 만날 정도로 리얼리티가 부족하다. 설정이 독창적인 것도 아니다. 가짜 법조인이나 범죄자 출신의 법조인이 활약하는 이야기는 <스위치> <슈츠> <무법변호사> 등에서 이미 보았다. 요컨대 웰메이드도 아니고, 독창적인 설정도 아니지만, 인기를 누리는 비결은 따로 있다. 바로 현실 반영과 대리 만족의 쾌감 덕분이다.
드라마는 검사 성추행, 재벌 갑질, 재판 거래 등 민감한 현실 이슈를 담는다. 첫 회부터 검사시보 송소은(이유영)을 검사 홍정수가 성추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홍정수는 성적 평가를 빌미로, 송소은의 몸을 만지고 술을 강권하고 “같이 자자” 말한다. 송소은이 이 사실을 부장 검사에게 알리지만, 무시당한다. 송소은이 ‘위력에 의한 간음’을 언급하자, 부장 검사는 도리어 송소은에게 증거를 내놓으라며 윽박지른다. 홍정수는 송소은의 앞길을 방해할 거란 암시를 하고, “검사가 ‘미투’를 다 하더라”며 기막혀 한다. 송소은은 법조인이 되기보다 킬러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성폭행을 당한 언니가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를 겪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자살을 시도하고, 송소은이 가까스로 말렸지만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는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연상시킨다. 서 검사는 2010년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이었던 안태근 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상부에 알렸지만 묵살 당했으며, 오히려 지방 발령이라는 불이익을 당했다. 또한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기소된 안희정 재판도 연상시킨다. 피해자의 폭로 직후 안희정은 동의에 의한 성관계가 아님을 시인했지만, 말을 바꾸었다. 또한 연인이었다는 증거를 내놓긴 커녕 증거를 인멸했다. 그러나 판사는 안희정에게 이를 묻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자를 집요하게 심문하고, 안희정 가족이 피해자를 음해하도록 허용하였다. 그리고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2011년에는 성폭력 피해자가 노래방 도우미였다는 이유로 수치스러운 재판을 받은 후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올해 강간사건 중 가해자가 잘못을 시인했음에도 1심에서 무죄를 판결 받은 사건이 2건이나 된다. 재판부가 여전히 피해자 행실을 문제 삼고, 사력을 다해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드라마에서 악의 정점에 선 인물은 재벌 2세 이호성이다. 그는 운전기사와 술집 사장을 폭행하고, 로펌 변호사들에게도 막말을 퍼붓는다. 공장직원을 폭행해 실명시키고도 회사 돈 500만원을 집어주고, 변호사 비용으로는 50억 원을 쓴다. 가짜 판사 한강호(윤시윤)는 자신이 받을 뇌물이 변호사 수임료에 비해 턱없이 적은 것에 분개해 이례적인 중형을 선고한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은 오히려 한강호를 원망한다. 재벌의 보복으로 생계를 위협받기 때문이다. 한편 이호성은 정·재계 2세들과 마약파티를 즐겼으며, 이를 덮기 위해 검·판사를 매수해 엉뚱한 사건으로 여론몰이를 한다. 끊임없이 터지는 재벌 갑질 파문과 민감한 사건을 덮기 위해 여론을 다른 곳으로 집중시키는 기법은 흡사 공기처럼 느껴진다.
드라마는 판사가 뇌물을 받는 광경을 보여준다. 뇌물은 유형일 수도 있고, 무형일 수도 있다. 재벌은 내기 골프를 빌미로 돈 가방을 안기기도 하고, 재벌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면 고액 연봉의 재벌 법무 팀 자리를 주겠노라 제안하기도 한다. 그보다 통 큰 거래도 있다. 드라마에는 “대법원장도 뒷거래하는 마당에 나 같은 평판사가 뭐라고” 라는 대사가 나온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판 거래를 가리키는 대사다. 양승태는 견제 받지 않는 사법 권력인 상고법원을 설립하기 위해, 민감한 시국사건에서 박근혜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상납했다. 드러난 사건만 해도, 강제 징용과 위안부 피해자의 일본 상대 배상소송, 통상임금, 전교조 법외노조, 케이티엑스(KTX) 승무원과 쌍용차 해고, 제주해군기지와 밀양송전탑 건설, 키코 사건, 한명숙 정치자금법 위반사건, 원세훈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사건 등이 망라된다. 이를 위해 양승태는 하급심 재판에 간섭하고 판사들을 사찰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드라마는 제목부터 아이러니로 가득 차있다. 사고뭉치 한강호가 모범생 한수호의 빈자리에 들어가 그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는지 실감한다. 그런 한강호도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다. 그가 판사 자리에 계속 머무는 것은 뇌물을 받기 위함이다. ‘자잘하게 해로운’ 잡범 한강호가 본의 아니게 좋은 판결을 내리는 것은 그 자리에 잡범 수준의 인간만 있었어도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라는 역설이 숨어 있다. 현실이라는 서브 텍스트가 없었다면 리얼리티 없는 드라마로 배척받았을 테지만, 양승태 사법농단을 거치면서 법정드라마에서 리얼리티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아버린 시청자들의 환호를 받는다. 지독한 역설이다.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