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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입체로 빚은 금동제 귀신얼굴상 처음 나왔다

등록 2018-09-04 17:04수정 2018-09-04 22:16

경주 옛 황용사터 조사중 출토
투조기법에 입부분 고리 달려
용도 미상 불탑 장식품 가능성
경주 황용사터에서 나온 금동제 귀신얼굴상. 입체적인 모양새의 금속제 귀면상이 나온 것은 국내 처음이라고 한다.
경주 황용사터에서 나온 금동제 귀신얼굴상. 입체적인 모양새의 금속제 귀면상이 나온 것은 국내 처음이라고 한다.
8~9세기께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제 귀신얼굴상(귀면상)이 경북 경주에서 처음 세상에 나왔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경주시 황용동 동대봉산 기슭의 옛 황용사터를 최근 시굴조사한 결과 탑터 주변에서 국내 처음 입체로 만든 금동제귀면상을 발견했다고 4일 밝혔다. 상은 높이 15㎝로, 입 부분에 고리가 달렸다. 금속판 일부에 구멍을 뚫는 투조 방식으로 입과 주위의 갈기 등을 표현했다. 귀면은 신라의 기와나 문양전 등에 종종 나타나지만, 입체적인 환조기법으로 빚어낸 금속제 상은 전례가 없는 출토품이라고 한다. 연구소 쪽은 “쓰임새는 확실히 모르지만, 탑 부근에서 나왔고 고리에 무엇인가 걸었던 것으로 보여 탑의 장식품일 가능성도 있다”며 “절의 높았던 위상을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절터에서는 귀면상 외에도 석불과 소조불, 용머리 조각, 명문기와 등이 나왔고, 통일신라~조선시대의 건물터, 탑터, 축대, 석렬 등도 드러났다. 황용사는 경주 도심에 있던 신라의 국가사찰 황룡사(皇龍寺)와는 다른 불국사의 말사였다. <불국사고금역대기>에는 선덕여왕 2년인 633년 황둔사란 이름으로 창건돼 소성왕(재위 799∼800) 때 황용사로 바뀌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불교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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