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세계산악문학상 수상자 크리스 보닝턴
올해 울주세계산악문화상을 받은 크리스 보닝턴이 7일 울주시 울주군 복합웰컴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올해 울주세계산악문화상을 받은 크리스 보닝턴이 7일 울주시 울주군 복합웰컴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사무국 제공
처음 오른 영국 출신 전설적 산악인 겸 문필가
“아버지 잃은 어린 시절 외로움과 불안으로 산에 끌려”
“정복이라는 말에 거부감…산에 대한 사랑·존경으로 등반” “당신에게 산은 무슨 의미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접한 보닝턴은 “내게 산이란 마음 깊이 열정을 갖고 사랑하는 존재”라고 답했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크리스 보닝턴-산악인>에서 “덜 위험하거나 덜 어려운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던 그는 이날도 “나는 누구도 올라가지 못한 산을 보면, 어딘가엔 반드시 올라갈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보닝턴은 자신이 남다른 투지와 열정을 갖게 된 이유로 어릴 적 겪은 지독한 외로움, 정서적 불안을 꼽은 바 있다. 아버지가 가족을 저버린 탓에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야 했다. 싱글맘이 드물었던 1930년대, 소년 보닝턴은 세상의 편견 어린 시선이 닿지 않는 거칠고 황량한 자연에 이끌렸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군인의 길을 가려고 했으나, 또는 평범한 회사원(유니레버)으로 살려고 했으나 결국은 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보닝턴은 가장 어려웠던 산행 중 하나로 1977년 파키스탄 카람코람 오거에 올랐던 때를 회상했다. “정상에 오를 때는 매우 순조로웠으나 하산길이 정말 힘들었다. 동료 더그 스콧은 (낭떠러지로 추락해) 두 다리가 다 부러져 기어와야 했고, 나는 갈비뼈 석대가 부러졌으며 5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우리 둘 다 살아돌아왔다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수십년 동안 산을 오르면서 스스로 바뀌었다고 했다. “한창 기운이 넘쳤을 때, 즉 40살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매우 경쟁적이었고 야심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여유와 포용력이 생겼다. ” “70대에 접어들어 몸에 한계가 오면서 산에 오르는 육체적인 즐거움을 잃게 됐다”고 했지만 그는 80살을 맞은 지난 2014년 스코틀랜드 오크니섬의 30m 사암 기둥 ‘올드맨 오브 호이’ 등반에 도전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올드맨 오브 호이는 그가 32살이었던 1966년 올랐던 곳으로, 영국의 한 방송사는 그가 이 암벽에 오르는 1박2일간의 등정을 촬영해 중계했다. ‘마치 달에 착륙하는 우주인을 지켜보는 것처럼’ 이틀 동안 700만명이 시청하는 진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아무도 오르지 못한 정상을 밟는 데 그 오랜 시간을 쏟아부었음에도, 그는 “정복이란 말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산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갖고 오르다보면 어떨 때는 정상에도 오르게 되지만 그것은 우연일 뿐이다. 내게 등산의 기쁨이란 정상에 올랐을 때뿐 아니라 정상까지 가는 그 길이었다. ” 사랑하는 가족을 놔두고 어떻게 그 위험한 직업을 계속해왔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많은 모험가들이 그런 질문에 직면하지만 제대로 답할 수 없는 문제”라며 “클라이밍이나 모험에 대한 사랑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양복쟁이와는 평생을 살 수 없다”며 수십년 동안 자신을 지지해준 아내 웬디가 세상을 뜬 뒤, 역시 산악인 남편과 사별한 로레토라는 여성과 2016년 결혼해 ‘산’과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울주/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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