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숙 신임 문화재청장(앞줄 왼쪽)이 11일 오전 서울 정동 인근에서 열린 취임 간담회를 찾은 기자들과 함께 덕수궁을 둘러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같이 걸어가요. 여긴 데이트 장소로 좋지요.”
덕수궁 돌담길로 나온 정재숙(57) 신임 문화재청장은 뒤에 서있던 기자들의 손을 잡아 끌며 함께 걸으려 했다. 이끌린 기자들이 나란히 대열을 이루자, 앞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쉴새 없이 터졌다. 문화재청 출입기자였다가 지난달 30일 현직 언론인으로는 처음 청장에 임명된 그가 11일 오전 동료였던 기자들과 이색 상견례를 했다. 서울 정동 덕수궁에서 옛 러시아공사관으로 이어지는 ‘고종의 길’을 10분 남짓 산책한 것이다. 뒤이어 정동길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마주 앉은 정 청장은 “며칠 전까지 함께 취재했는데, 큰 소임을 받고 대면하니 무척 떨린다”며 특유의 입심을 풀어냈다.
“기자정신 어디 가겠습니까. 현장에서 열심히 뒤지고 잘 듣겠습니다. 제가 여자치고는 귀와 손발이 큽니다. 큰 귀로 열심히 듣고 큰 손발로 열심히 돌고 움직이겠습니다.”
그가 강조한 정책 초점은 안전과 보존, 활용이었다. 최근 브라질 박물관 화재 참사를 들며 “문화유산은 한번 망가지면 되돌릴 수 없는 인류의 얼이다. 안전과 보존을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했다. “그동안 문화재가 국민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고 어둠에 가려진 측면이 있어 사람의 얼굴을 하고 꿈을 줄 수 있는 유산이 될 수 있어야 한다”며 활용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문화유산 안내판 문구를 시민 눈높이로 바꾸고 유적 발굴 복원 작업의 전모를 공개할 것이라고 약속한 그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창덕궁에서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영접한 파격을 거론하면서 콘텐츠 생산으로 문화유산을 뽐내고 알리는데 애쓰겠다는 의지를 시종 드러냈다. 목소리는 개성 만월대 발굴 등 문화재 남북교류를 말하는 대목에서 더 높아졌다.
“문화재는 휴전선이 없어요. 남북간 핏줄이 연결되어 있죠.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강원도 철원의 태봉국 철원성 발굴을 추진하는 등 남북간 교류 활성화를 위해 문화재 분야에서 적극 역할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그는 이와 관련해 11월 ‘씨름’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남북이 공동신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가 문화재청 간부가 “현재 추진 중인 상황”이라고 전하자 발언을 바로 잡았다. 전 정권의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현직 문화재위원들에 대해서는 “양심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길 바란다”고도 했다. 정 청장은 <서울경제> <한겨레>를 거쳐 2002년 <중앙일보>로 옮긴 뒤 문화스포츠 에디터 등을 지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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