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의 위상을 높여라
‘순환동선’ 만들어 요리 참여 유도
거실과 결합한 ‘리빙 스페이스’에
부엌·외부 평상 맞붙이는 실험도
“남향에 부엌 온다면 가장 혁명적”
남녀 영역을 나눠라
중정 통해 남녀방 구분하거나
아예 두채로 생활공간 분리
거리감이 서로 배려하는 삶으로
눈빛 주고받는 소통 공간 조성도
‘순환동선’ 만들어 요리 참여 유도
거실과 결합한 ‘리빙 스페이스’에
부엌·외부 평상 맞붙이는 실험도
“남향에 부엌 온다면 가장 혁명적”
남녀 영역을 나눠라
중정 통해 남녀방 구분하거나
아예 두채로 생활공간 분리
거리감이 서로 배려하는 삶으로
눈빛 주고받는 소통 공간 조성도
명절이 지나고 나면 썰렁해지는 커플들이 많다. 남녀가 명절 준비를 같이 하거나 친정(처가)-시댁(본가)에서 보내는 시간을 똑같이 맞추는 부부들이 늘어난다고 해도, 여전히 가족 내에서 노동의 부담, 존중의 불균형은 성별에 따라 편중되는 사례가 압도적이다. 남자와 여자 모두 편안한 일상을 누리고 싶다는 요구가 높아지는 때가 바로 명절. 추석을 앞두고 ‘남녀 모두 행복한 집짓기’를 고민하는 건축가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김창균 유타건축사사무소 소장이 설계한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주택 ‘기숙사’. 가족들이 서로 눈을 맞출 수 있는, 소통을 중요시한 집이다. 진효숙 사진작가
부엌을 ‘핫플레이스’로
집의 변화는 부엌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부엌 모델의 핵심은 ‘참여형’이다. 김정임 소장(서로건축 아키텍츠)은 “제주도에 가면 가족들이 변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인들과 함께 최근 제주도 한경면에 낡은 주택을 구입해 여러 세대가 공유하는 주말주택으로 리모델링했다. 고산리에 있어 ‘고산집’이라 이름붙은 이 집 부엌은 벽 쪽엔 싱크대 및 조리대, 아일랜드식탁과 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긴 식탁을 한 공간에 놓았다. 부엌을 드나드는 문과 아일랜드 식탁, 개수대 사이 여유를 둬서 재료를 다듬고 씻고 끓이는 일을 하려면 모든 방향에서 접근이 가능한 ‘순환 동선’을 이룬다. 김 소장은 “서울에 거주하는 아파트에선 한 사람이 식사를 준비하면 나머지는 꼼짝 않고 있다가 받아먹었는데, 고산집에 오면 네식구 모두 부엌에 모여 같이 일한다”며 “공간의 변화가 행동을 유발한다. 아파트에서도 조리대 등 배치를 좀 바꾸면 참여형 부엌이 가능해질 것”고 말했다.
김주원 하우스 스타일 소장이 설계한 충주 새싹집. 문에 들어서면 음식을 만들고 먹고 놀 수 있는 ‘리빙 스페이스’가 펼쳐진다. 박영채 사진작가
김주원 하우스스타일 소장이 지은 ‘사합집’. 부엌 출입구에 있는 문을 모두 닫으면 손님을 맞는 공간에서 부엌이 가려진다. 박영채 사진작가
김주원 하우스스타일 소장이 지은 ‘사합집’. 부엌 출입구에 있는 문 5개를 여닫는 방식에 따라 부엌의 공간감이 달라진다. 박영채 사진작가
김창균 소장이 지은 강원도 철원 평상집. 부엌과 평상을 맞붙여 부엌이 외부로 확장되도록 했다. 진효숙 사진작가
가온건축의 ‘존경과 행복의 집’. 부인의 작업실이 있는 생활공간과 남편이 주로 사용하는 업무 공간을 두 채로 나눴다. 김용관 사진작가
영역 구분 짓기
동물만 자신의 영역에 집착하는 게 아니다. 거실-부엌-침실로 이뤄진 아파트에선 면적이 아무리 넓더라도 공간 분리가 제대로 안된다. 김주원 소장은 “사람은 자신의 영역을 가질 때 자신이 완전체임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건축가 정영한(정영한 아키텍츠)이 설계한 ‘거리의 집’은 이름부터 ‘거리감’을 강조한다. “적당한 물리적 거리감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인식의 거리를 그들 스스로가 새롭게 정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는 정 소장은 30평 규모의 집이지만, 중정을 내고 ‘남자의 방’과 ‘여자의 방’을 따로 뒀다. 남편은 현관에 들어서면 계단을 통해 곧바로 자신의 방에 들어갈 수 있고, 여자는 주방, 욕실, 아이방을 거쳐 자신의 방에 들어가게 돼있다. 방은 따로 있지만, 내부에선 하나의 통로를 통해 연결되기 때문에 마주칠 수밖에 없고,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중정을 가운데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돼 있다. 정 소장은 “건축주들이 입주한 뒤 서로를 배려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며 “공간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치유할 수 있다는 데에 늘 동의하는 나로서는 그들이 떨어져 있되 가까이 함께할 거리감의 본질을 마주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온건축이 가평에 지은 주택 ‘존경과 행복의 집’ 또한 거리감을 중시한다. 삶의 가치로 각각 ‘존경’(남편)과 ‘행복’(부인)을 꼽는 건축주들은 존경과 사랑이 깃드는 집을 원했다고 했다. 임형남 소장은 “남녀가 너무 붙어 있고선 존경심과 행복을 느끼기 힘들다. 가족들이 일거수 일투족을 보는 것이 문제”라며 영역의 분리를 제시했다. 각자 재택근무를 하는 부부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해, 집을 사실상 두채로 나눠 아내의 작업실이 있는 생활공간, 남편의 회의실·서가가 있는 업무공간으로 분리했다. 출입구를 따로 두고 방 배치를 흩트려 특정 공간에 힘을 주지 않고 위계를 허물었다. 집이 너무 좁아 영역 분리가 힘들다면 어떻게 할까? 김진애 건축가는 “의자나 책상 같은 가구로라도 각자의 자리를 구분짓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김주원 대표도 “지인들이 3인용 소파를 사겠다고 하면, 차라리 리클라이너 2개를 사라고 권한다”고 했다. / / / / /
따로 또 함께
김창균 소장은 파주 운중동 ‘기숙사’를 설계하면서 식구들끼리 ‘눈빛을 주고받는 공간’을 만들었다. 눈을 마주친다는 것은 평등과 소통의 의미다. 부부가 주택 지분을 5대 5로 균등하게 갖고 있는 건축주들은 집 이름을 지을 때도 남편 이름에서 ‘기’, 부인 이름에서 ‘숙’을 따와 ‘기숙사(奇淑思)’로 정다. 부부의 이런 태도는 집에서도 나타난다. 김 소장은 부부와 아이 셋에게 따로 공간을 만들어주면서도 계단, 창문 등의 요소를 활용해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집 한복판에 계단을 둬서 거실·부엌 등이 다 내려보이도록 했다. 아내는 2층 드레스룸 앞에 뚫린 창문에서 1층 거실의 남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아이들 방은 구분이 돼 있지만 짧은 계단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김창균 소장은 “주택을 설계할 때는 0.5평도 버릴 곳이 없다”며 “집 규모가 작더라도 원한다면 계단에서도 함께 책 읽고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다양한 기능을 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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