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인천 영종도 전시공간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를 찾은 제프 쿤스가 자신의 작품 ‘레이징 볼-파르네스 헤라클레스’ 앞에서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 노형석 기자
“미술가로서 나한테 중요한 건 ‘참여’입니다.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경제적인 수치로 나오는게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삶을 축하하고 우리가 무엇이 될 수 있고 어떤 걸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초월의 수단으로서의 가치가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전세계 생존 작가 중 작품 값이 가장 높은 작가로 유명한 미국의 팝아트 대가 제프 쿤스(63)는 거침없이, 힘주어 답변했다. “당신 작품은 왜 비싸다고 보느냐, 그렇게 비싸게 팔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기자들이 물은 뒤였다. 지난 2013년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작품 ‘풍선개’는 생존 작가 미술품로는 당대 최고가인 5800만달러에 팔려 화제가 됐다.
쿤스는 인천 영종도 인천공항 인근 복합리조트인 ‘파라다이스시티’에 문을 연 새 전시공간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 개관기념전을 축하하기 위해 17일 한국을 찾았다. 파라다이스 그룹이 건립한 이 예술공간의 핵심공간에 자신의 작품인 ‘게이징 볼-파르네스 헤라클레스’(2013년)가 상설 설치된 것을 살펴보고 전시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쿤스의 작품 오른쪽 옆엔 그와 절친한 후배인 영국 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땡땡이’ 그림 신작 <아우러스 사이아나이드>가 걸렸고, 왼쪽 공간 1~2층에는 국내 중견 작가인 이배 작가의 숯조형물, 먹물 수조 위에 한지들을 내건 김호득 작가의 설치작품들이 펼쳐졌다. 쿤스는 이날 오전 자신의 작품 앞에서 파라다이스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난 뒤 기자들과 간담회를 열어 자신의 작품과 예술관에 대해 우아한 손짓과 능란한 화술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한국을 좋아합니다. 이번이 네번째 방문인데, 2011년 신세계백화점 본관에 설치작품 ‘세이크리드 하트’를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 내놓은 ‘게이징 볼’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 작품입니다. ”
‘게이징 볼’ 연작은 지난 2014년부터 쿤스가 중점적으로 만들어온 작품으로 유명한 고전 명화나 조각상의 복제물에 동그란 파란색 유리구슬(게이징 볼)을 붙인 것이다. 거울 같은 볼에 비춰진 관객들의 모습과 작품·주변 공간을 통해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안겨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이번에 나온 출품작은 석고로 만든 로마시대풍 헤라클레스상의 어깨 위에 볼을 붙였는데, 잘 부스러지는 석고 소재로 힘센 신화 속 영웅을 담았다는 모순이 감상의 즐거움을 준다는 설명이 붙었다.
“게이징 볼의 동그란 글로브(구)는 가장 순수하고 형태입니다. 관대함, 관용의 상징이죠. 여러분이 우주 속 어디에 있는지를 마치 지피에스 시스템처럼 보여줍니다. 360도 반사가 되기 때문이죠. 이런 아이디어는 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이데아와도 연결되며 동양철학의 사상과도 연관되어 있어요. 한마디로 보는 순간 사람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기념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지요.”
쿤스는 1980년대부터 기성품과 대중문화 아이콘들을 차용해 확대하거나 증폭시키는 작업으로 화제를 불러왔다. 90년대 강아지 모양으로 철골과 흙, 풀을 뒤섞은 대형조형물로 화제를 낳았고, 이탈리아 포르노배우 치치올리나와의 결혼과 이혼 등의 스캔들로도 유명했다. 쿤스는 ‘미술이 예술적 방향을 찾기보다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그가 일조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대해서 이렇게 답했다. “엔터테인먼트는 순간을 즐기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어요. 예술은 우리의 감각이 뭘 할 수 있고, 뭘 경험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겁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여러분과 시간을 보내는 것과 같은 놀라운 경험을 갖도록 미술이 도와주었어요. 제 작품이 여기 전시돼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또 다른 이들에게도 잠재성과 희망을 갖고 흥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종도/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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