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동이 고른 추석동반자⑥ 작가 최정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꽃, 숲’전 차려
쓸모 다한 생활용품들로 만든 꽃과 꽃숲들
모으고 쌓으면 작품되는 ‘생생활활’의 미학
‘예술무당’ ‘업자’ 자처하는 그의 속내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꽃, 숲’전 차려
쓸모 다한 생활용품들로 만든 꽃과 꽃숲들
모으고 쌓으면 작품되는 ‘생생활활’의 미학
‘예술무당’ ‘업자’ 자처하는 그의 속내는
알고 싶은 사람, 알아도 궁금한 사람, 알수록 대단한 사람, 알기에 보고 싶은 사람. 한겨레 문화부 대중문화팀이 올 추석에 더 깊이 알려주고 싶은 셀럽을 골랐습니다. 조승우, 조용필, 양준일, 김제동, 정경화, 최정화 등입니다. 취재하며 느꼈던 감동과 사심을 동시에 전합니다.
‘참 쉽게 만들었네!’ ‘아니, 이 많은 재료들을 어떻게 모았을까…’
작품들을 맞닥뜨리자 상반된 감상들이 스쳐간다. 눈앞에 번쩍번쩍거리며 늘어선 잡동사니 탑 146개. 이 기묘한 탑들이 두줄로 대열이 갈라져 300평 넘는 전시장을 한달음에 채워놓았다.
탑들을 구성한 재료들은 ‘뒤죽박죽’‘엉망진창’이다. 유리그릇, 철근덩이, 촛대, 소쿠리, 찌그러진 대야, 고무신, 됫박, 돌덩이, 플라스틱 뚜껑 등등이 제각기 모이거나 엉켜붙어 몸체를 이루었다. 전세계 곳곳에서 모은 시공을 달리한 잡동사니들이다. 쓸모를 다하거나 잘못 써서 망가진 생활용품, 장식·건축부재들이 오직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쌓이고 쌓여 기기묘묘한 모양새로 치솟고 있다.
기괴한 탑들의 행렬을 사열하듯 바라보고 지나가면, 또다른 느낌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쌓인 물건들 속에 갇혔던 요괴들이 빙빙 떠돌아다닐 것 같은 분위기, 세상 사물의 무덤 속 바닥을 헤매는 듯한 기분. 아리송해지기 시작한다. 여기가 전시장인가. 무당집인가. 벼룩시장인가. 작가가 말한다. “당신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난 모았을 뿐이지, 이건 내 작품이 아니라니까…”
이 알쏭달쏭한 난장판이 요사이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 5전시실에서 관객을 유혹하고 있다. 한국 미술판에서 이른바 ‘키치 예술’의 실력자로 불리는 최정화(57) 작가가 ‘현대차 시리즈 2018:최정화-꽃, 숲’이란 제목을 걸고 만든 대규모 개인전(내년 2월10일까지)이다. 2014년 이래 해마다 한명의 중진작가를 지원하는 현대자동차의 연례 프로젝트 전시에 그는 자기만의 이미지 별천지를 펼쳐놓았다.
디자이너·인테리어업자·설치예술가·전시기획자 등의 다채로운 ‘업종’을 직함에 붙이고 다니는 최정화 작가의 작품들은 ‘간결명료’하면서도 ‘복잡무쌍’한 세계다. 쓰다버리거나 남은 것, 쓸모를 다한 것들, 싸구려 제품들을 끌어와서는 갖다붙이고 모으고 쌓아올리는 ‘짓’을 거듭한다. 작가의 ‘감’으로 ‘짓’을 얽어모은 잡다한 물건 덩어리들이 보는 이들마다 각기 다르게 읽고 기억하게 만드는 ‘최정화 월드’가 된다. ‘일상과 예술’, ‘천박한 것과 고상한 것’ 사이의 경계 허물기 등의 상투적인 수식어들을 달고다니는 그의 생활예술은 ‘다닥다닥’ 모여서 ‘빠글빠글거리고’ ‘번쩍번쩍’ 윤이 나야 제맛을 낸다. 어느 작가의 작품에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기성품들의 조합 속에 서로 모순된 만물의 느낌과 개념들이 막 뒤섞여있다. 도움말을 부탁하면 작가는 레퍼토리처럼 늘상 하는 말들을 다시 내뱉는다.
“예술이 뭐가 그리 특별해요? 이렇게 생활이 예술이죠. 잘 보세요. 생생활활!”
서울관 5전시실은 작품 채우기가 쉽지 않은 휑한 공간이다. 4년전 현대자동차 시리즈 전시가 시작된 이래로 이불, 안규철, 김수자, 임흥순씨 등 쟁쟁한 작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여러차례 대형 신작들을 차렸지만, 공간을 휘어잡는 작품들을 내놓았다는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이 만만찮은 공간을 최 작가는 기발한 잡동사니 탑들이 두줄 행렬을 짓게 만들고 주위를 연극무대 같이 구성하는 방식으로 꽉차 보이게 만들었다.
전시의 핵심 작품인 ‘꽃, 숲’은 5전시실 안의 잡동사니 탑을 둘러싼 사방벽에 거울 같은 은박판을 붙여놓은 아이디어가 기발하게 다가온다. 탑들을 왜곡된 상으로 되비추면서 훨씬 잡다한 작품들이 있을 것이란 착시를 일으킨다. 두줄의 탑 뒤쪽에는 천으로 된 가벽이 따로 붙어있다. 그 가벽 사이에 다시 통로를 내어 불빛에 비추이는 잡동사니들의 그림자 실루엣을 감상하며 지나가도록 했다. 버려진 물건들의 속내를 그림자로 생각해보라는 명상의 공간이다. 벽면에는 연극무대의 조명등들이 설치돼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명멸을 되풀이하면서 작품들의 존재감을 증폭시킨다. 헐렁해 보이는데 어느새 꽉 찼고, 휙 보고 나왔다가도 다시 들어가서 한참 꼼꼼히 쳐다보게 된다. 깊어 보였다가도 얕아 보이고, 조잡하다 싶으면, 치밀하다는 느낌이 밀려온다. 세상 만물의 섭리가 다 그런 것인가.
최정화 작가의 평생 작품 화두는 ‘생생활활(生生活活)’. 사람들이 꿈틀꿈틀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만들고 남기고 고안하는 삶의 흔적들이 최고 영감을 주는 예술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작품을 보며 관객마다 각기 다른 연상을 할 수 있지만, 하나 분명한 건 사람들이 지닌 생활의 활력을 끄집어 내어 삶의 우주를 보여준다는 것. 그래서 작가는 출품작들을 ‘우주적 비빔밥’이자 ‘4차원의 민화’라고 했다.
”이건 민들레 꽃이면서도 태양이에요. 빛을 내쏘는 태양, 그 태양의 빨대를 미술관 앞에 꽂은 것이죠. 땅과 하늘을 이어주려고요. 작품을 본 관객은 기념비가 되고요.”
서울관 앞마당에 차려진 높이 9m, 무게 3.8톤의 대형 조형물 <민들레>를 두고 작가는 기고만장한 달변을 풀었다. 남비와 찜통 따위 식기들을 모아 민들레 꽃의 홀씨를 형상화한 역작이라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바람에 흔들려서 ‘달그락’ ‘덜커덩’ 소리를 내는 소쿠리, 프라이팬, 눈금 표시 있는 찜통, 양푼남비 같은 구성품들이 줄줄이 낯선 인상으로 매달려 있다. 태양의 빛살처럼 수십여개의 가지를 세운 채 알록달록한 조명을 받으면서 죽죽 뻗어나가는 <민들레>의 모습은 아름답고 깔끔하면서도, 구질구질하고 징그럽다. 본래의 용도를 떠나서 전혀 다른 몰골로 꽃의 태양을 이룬 식기들의 모자이크가 우리네 삶 한구석에 도사린 오묘한 심령적 요소들을 부각시킨다. 사람들 마음의 한구석에 똬리튼 기묘한 상상력이나 신명을 끄집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눈부신 그 하찮음의 빛남이 있다. <민들레>를 설치하면서 다른 때보다 그걸 더 절실하게 느낀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식기 7000여점을 얼기설기 짜맞춰 만든 <민들레>는 지난 3월부터 여섯달간 서울, 부산, 대구에서 작가가 시민을 상대로 ‘모으자 모이자’란 수집프로젝트를 벌여 재료들을 조달했다. 10여년전부터 숱하게 벌여온 특유의 공공예술 작업이다. 이런 작업의 본질인 모으기와 쌓기를 두고 작가는 “땅에서 하늘로 이어져 닿는 인간의 염원”이라고 풀이한다. “남들이 예술이라고 보든 말든 내가 잘 쌓고 늘어놓아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면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민들레>를 비롯한 신작들은 사실 새로운 스타일이 아니다. 20년 가까이 지속해온 쌓기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다. 87년 홍대 회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고 화가로 나서려다가 ‘사부님’이라고 명명한 길거리 의자를 보고 감명을 받아 행로를 확 바꿨다. 간이의자, 소쿠리, 가구 같은 생활 예술품들을 모으고 쌓고 늘어놓아 낯선 감각과 의미, 에너지를 끄집어내는 프로젝트를 20여년간 공간을 달리하며 계속해온 것이 작가 최정화의 이력이다. 그렇게 닦은 내공을 발휘해 인테리어, 건축설계, 전시장 기획까지도 도맡아 뛰고있다. 공간을 고금의 생활용품으로 낯설게 채우고 바라보고 교감하는 즐거움이 중요하지, 시각문화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은 큰 관심사가 아니다.
90년대부터 미술계에 나온 최정화 작품들은 허접한 생활문화 대중문화를 소재로 한 키치예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계기를 만들었지만, 근래 들어서는 식상하고 안일하다는 비판이 적지않다. 10여년 사이 작업방식이나 언어가 별반 달라진 게 없고 요즘 디지털 환경과는 동떨어진 이미지들만 되풀이하면서 진부함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업자를 자처하는 작가에게 이런 비평의 잣대는 그닥 의미가 없어 보인다(짐짓 초연함을 가장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예술무당’이 되어 작품을 꾸리는 과정이 일종의 굿판으로, 사람들을 눈여겨보게 하고 화제를 낳는 것을 즐겨왔다고 말하는 그다. 물론 공공미술의 진정성, 소통만 내세우는 건 아니다. 철두철미한 사업가답게 자기 작품이 아니라면서도 만든 작품들에 대한 작가 마케팅, 홍보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전시 준비기간 내내 거래하는 화랑 관계자를 수행원처럼 미술관에 데리고 다니며 논의했다는 후문이 들릴 정도니까 말이다. 예술과 비지니스를 넘나드는 이런 태도들 또한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최정화 표 작품들과 쏙 닮은 구석이 있다.
국립미술관에서 처음 큰 난장판을 벌였는데도, 작가는 성이 차지 않은 듯했다. 전시기간중 서울관 앞마당 <민들레>를 배경으로 달 뜬 밤에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강강수월래’를 펼쳐보겠다는 제안을 미술관 쪽에 진작 냈다고 한다. “성사될진 모르겠다”면서 또다른 프로젝트도 귀띔했다.
“11월 중순 일본 옛 도읍 나라시에서 한판 벌일 겁니다. 1000년 넘은 나라의 고찰 고후쿠지(흥복사)의 목탑 아래 광장에서 민들레 꽃을 세워놓고 놀이판을 펼칠 거예요. 나라현에서 3년째 전시를 밀고 있죠. 한국에서만 잘 모르는데, 사실 저는 국제 무대에서 끊임없이 주목받아온 작가거든요.”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신작 <민들레>앞에 선 최정화 작가. 6달동안 수집한 식기 7000여개를 맞붙여 만든 대형설치작업이다.
5전시실의 <꽃, 숲>.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잡도사니 물건들을 모아 쌓아올린 꽃탑 146개가 넓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전시장 바깥 통로에 설치된 <알케미>. 트럭 바퀴, 무쇠솥, 밥그릇, 막걸리 잔을 뒤얽어 불탑 같이 빚어놓았다.
5전시실 들머리에 설치된 <세기의 선물>. 서양의 고전 건축물을 흉내낸 국내 결혼식장 장식기둥을 본떠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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