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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사이먼 래틀, 서울 홀린 ‘피아니시모의 마법’

등록 2018-10-02 17:09수정 2018-10-06 08:54

[런던심포니 내한 공연 리뷰]
“꿈꾸는 듯 영국적인 드보르자크 춤곡”
“고요함의 힘 강조한 시벨리우스 교향곡”
베를린 필하모닉을 16년간 이끌다 고국인 영국 런던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지휘자 사이먼 래틀의 공연이 지난 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베를린 필하모닉을 16년간 이끌다 고국인 영국 런던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지휘자 사이먼 래틀의 공연이 지난 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사이먼 래틀은 16년간 이끈 베를린 필하모닉과 올여름 작별했다. 지난해 가을부터 런던 심포니를 이끌고 있다. 시월의 첫날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모국 악단을 밝은 표정으로 지휘하는 그의 어깨가 가벼워 보였다.

공연 구성이 독특했다. 1, 2부에서 시벨리우스의 두 작품 앞에 드보르자크 ‘슬라브 춤곡 작품번호 72’ 중 네 곡을 나눠 배치했다. 앙코르를 프로그램에 당겨 넣은 모양새로 여겨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 래틀이 런던 심포니와 연주한 슬라브 춤곡은 앙코르로 주로 연주되는 여흥을 위한, 혹은 배경 같은 이 곡의 선입견과는 궤를 달리했다.

첫 곡은 드보르자크 ‘슬라브 춤곡 작품번호 72의 1번’. 입체적인 소리의 입자가 객석으로 쏟아졌다. 목관이 고즈넉했고 금관이 투명했다. ‘흙냄새’ 나는 기존 체코 오케스트라 해석과는 달랐다. 기술이 많이 들어간 인위적인 효과였지만 설득력이 강했다. 이어진 ‘2번’에서 바이올린군이 두텁고 쾌적하게 첼로군과 합류했다. 익살스러운 부분이 강조된 민요풍이었다. 세밀한 고음과 약음이 돋보였다. 래틀의 지시에 런던 심포니 전체가 볼륨을 급속히 줄인 오디오처럼 고요해졌다. 물 위에 뜬 배처럼 현이 새기는 박자 위로 두 대의 플루트가 사뿐히 떠올랐다. ‘7번’은 처음부터 신나게 치고 나갔다. 음향의 결이 페이스트리 빵처럼 층층이 다가왔다.

금빛 사선이 새겨진 검정 드레스를 입은 바이올리니스트 자닌 얀선이 나왔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의 첫 음은 생각보다 날카롭지 않았다. 넉넉한 살집에 고음이 따스했다. 저역 현이 자욱한 안개같이 깔리고 버럭 하는 금관은 제어가 잘 됐다. 카덴차 이후 관현악 총주가 산사태처럼 밀려왔다. 오래 끌면서도 이음새를 보이지 않는 얀선의 운궁도 돋보였다. 2악장에서 빙산만큼 두터운 더블베이스의 저음을 뚫고 얀선의 바이올린이 좀 더 날카롭게 상승했으면 했지만, 그녀의 소리는 본질적으로 연질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스태미너가 바닥나곤 하는 3악장. 얀선은 가끔 자세를 낮췄지만 넉넉한 배기량의 차가 나아가듯 흔들림이 없었다. 총주는 거대한 다이내믹을 이뤘다.

휴식시간 뒤 드보르자크 ‘슬라브 춤곡 작품번호 72의 4번’이 연주됐다. 드보르자크이기보다는 엘가나 본 윌리엄스 교향곡의 느낌이었다. 목관과 현이 꿈꾸는 듯한 영국적인 색채를 자아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이 이어졌다. 1악장에서 호른의 안개를 뚫고 플루트와 오보에가 노래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트레몰로로 잘게 부서진 소리는 중저역과 대비됐다. 래틀은 여기서도 피아니시모를 섬세하게 가져갔다. 미묘한 첼로음 위에 바순의 노래가 긴장감을 자아냈다. 금관이 가세한 총주에서는 엄청난 음의 덩어리가 밀려왔다. 현악기 피치카토로 2악장이 시작됐다. 거대하고 도도한 흐름 속에 목가적인 선율이 자욱했다. 기적 소리 같은 금관이 가세하고 다시 약음으로 들어갔다. 현의 트레몰란도(떨면서 연주하는 것)로 시작된 3악장에서도 래틀은 최약음, 피아니시시모를 지시했다. 플루트에 이어 현이 두텁게 연주하자 눈 앞에 펼쳐진 피오르 절벽처럼 총주가 다가왔다. 따뜻하게 노래하는 금관과 현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트롬본이 목 놓아 부르짖고 최후의 여섯 번 총주가 천천히 이어진 뒤끝을 맺었다. 해체한 뒤 재조립한 듯 독특했던 ‘교향곡 5번’이었다. 래틀이 곳곳에서 강조한 약음의 고요함은 어둠 뒤에 더 선명한 빛처럼 강주의 효과를 높였다. 숨죽이며 들었던 피아니시모는 그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래틀이 베를린 필보다 런던 심포니를 좀 더 자신의 생각대로 제어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었다. 래틀의 손길로 만들어낼 런던 심포니의 새로운 사운드가 기대된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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