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직조불화로 판명된 <금직여래삼존백체불도>.길이 247.5cm, 폭 76.3cm의 대작이다.
“기사에 쓴 자수불화라는 말은 틀렸습니다.”
수덕사 성보박물관장을 지낸 정암 스님의 지적은 뼈아팠다. 15세기 세조 때 왕실발원 불화인 ‘금직여래삼존백체불도’가 세상에 나왔다는 기사(<한겨레> 9월3일치 9면)를 읽은 뒤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지난 7~8월 열린 일본 나라박물관 전시에 처음 공개된 이 작품이 가장 오래된 자수불화라는 내용을 본 스님은 직물공예사 전문가답게 기사 내용 상당수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차근차근 짚었다.
“이 불화는 천 위에 색실로 수를 놓은 자수가 아닙니다. 각각의 색을 지닌 날실과 씨실들을 복잡하게, 정교하게 엮어서 정해진 도상에 따라 짜면서 부처들의 세상을 그림으로 펼쳐낸 겁니다. 금직(錦織)이라는 직조기법으로 짠 불화지요. 그래서 더욱 놀랍고 존귀합니다. 자수로 불화를 만들기도 힘든데, 훨씬 어렵고 뛰어난 직조 기법으로 빼어난 불화를 만들었으니 국보급이고 명품중 명품입니다.””
찬탄은 적확했다. 1463년 세조의 왕실을 위해 발원한 불화는 자세히 살펴봐도 붓으로 정교하게 그린 그림과 진배 없어 보인다. 길쭉한 그림 윗부분에 앉은 세 분의 석가삼존상 위에 하늘의 영기와 연꽃송이들이 떠다닌다. 그 아래 연꽃 위에 앉은 수많은 ‘백체불’(실제로는 95구)이 수놓아졌고, 그 사이에 불화를 발원한 세조의 누이 정의공주와 여러 왕족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이런 복잡하고 환상적인 도상을 날실·씨실의 색깔 조합으로 풀었다는 것은 단순히 뛰어난 숙련도를 넘어 깊은 신앙심이 합일된 경지일 것이다.
옛 직조공예의 연구와 재현에 몰두해온 심연옥 한국전통문화대 교수에게도 물었다. 그는 ‘금직여래삼존백체불도’에 쓰인 정교한 직조기법을 별별금(別別錦) 기법으로 부른다고 했다. 화폭이 되는 바닥면을 엮어 이루는 날실·씨실 외에 무늬와 그림을 엮어나가는 별도의 날실이 하나 더 있어서 두 종류의 날실과 씨실 색감이 어울리면서 총체적인 불화 그림을 구성하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이 작업 전에 치밀하고 정교한 밑그림(화본)을 그리는 데만도 수많은 시간과 공력이 걸린다고 한다. 불화 아래 명문에는 이런 백체불 불화 열폭을 모아 천불도를 봉안한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러니까 이번에 확인된 불화는 10폭의 그림중 한폭에 불과한 것이다. 놀라운 직조술과 당대 왕실 고급문화의 역량이 총체적으로 녹아있는 걸작이 바로 ‘금직여래삼존백체불도’인 셈이다.
기사에 틀린 점이 하나 더 있다. 전문가들에게 후속 취재를 해보니 불화는 나라박물관에서 처음 공개된 게 아니라 2015년 교토국립박물관의 ‘불법동’이란 기획전과 이전의 여러 전시에서 여러차례 선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직물사, 자수·직조 불화를 연구하는 이들이 거의 전무해 눈길을 끌지 못하다가, 나라박물관 전시에 불화가 공개되자 첫 자수불화의 발견이라고 학계가 흥분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15년 교토박물관 전시에서 불화가 공개된 뒤엔 심연옥 교수팀과 국외문화재 환수를 전담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조사팀이 불화를 소장한 교토 사찰 세이칸지에 각각 찾아가 소장품을 조사했고, 이들이 ‘금직여래삼존백체불도’의 직조 방법 등을 포함해 여러 내용을 합쳐 보고서를 만든 사실도 알게됐다. 하지만 이런 자료들은 국내 학계에 일체 공개되지 않았다. 보고서 작업을 담당했던 국외 재단 관계자는 “절의 관계자들이 대마도불상 도난 사건 등에 매우 예민해하며 공개를 미루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라면서 “언젠가 한일관계가 풀리면 공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막대한 유출 문화재가 숨겨져 있는 일본에서 여전히 소장자를 의식하며 환수나 현지 조사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 국내 문화재학계의 현실이 처연하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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