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기슭에 자리한 안동 임청각의 전경. 원래 집 경내를 일제는 1940년대 중앙선 철도를 깔면서 허물고 훼손했다.
경북 안동시 법흥동 낙동강 기슭에는 우리나라에서 덩치가 가장 크다고 알려진 조선시대 양반 살림집 하나가 버티고 있다.
안동시내에서 안동댐으로 중앙선 철로를 끼고 가는 길에 장대한 기와지붕들이 늘어선 전통 가옥을 만나게 되는데, 고성 이씨 큰 종택인 ‘임청각’(국가보물)이다. 길가에 가로로 10여칸을 죽 도열하듯 배치한 행랑채들의 모습만으로도 위용이 느껴지는 이 거대 가옥은 예사로운 집이 아니다.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냈으며 만주에 독립군 양성기지로 신흥 무관학교를 세운 석주 이상룡(1858~1932년)이 자랐던 집으로 독립지사만 9분을 배출한 한국독립운동사의 산실이다.
대가는 컸다. 일제는 집 경내를 허물고 건물들을 뜯으면서 중앙선 철도를 놓아버렸다. 99칸집은 50여칸으로 쪼그라들었고 수시로 지나가는 열차의 굉음이 종택의 기품을 헝클어뜨렸다. 이런 수난사를 겪으면서 곳곳에 상처를 안았던 안동 임청각이 해방 뒤 73년만에 마침내 일제 강점기 이전의 원래 모습을 되찾는 대역사를 맞게 됐다.
문화재청은 경북도, 안동시와 함께 내년부터 2025년까지 예산 280억 원을 들여 안동 임청각을 일제강점기(1941년) 중앙선 철로가 놓이기 이전의 옛 모습으로 가옥을 복원, 정비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최근 마무리했다고 22일 발표했다.
공개된 복원·정비 계획은 이상룡의 조상인 허주 이종악(1726~1773)의 문집 <허주유고>에 실린 임청각과 주변의 전경을 묘사한 그림 <동호해람>과 1940년을 전후해 찍은 사진과 지적도 등의 고증자료를 근거로 만들어졌다. 청은 계획안에 따라 임청각 주변에 있다가 사라진 분가(출가한 자식들의 가옥) 3동을 다시 짓고, 철도를 닦으면서 허물어진 주변 지형과 수목, 나루터 등도 옛 모습에 가깝게 복원하기로 했다. 임청각 들머리에는 석주 선생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널리 알리는 기념관을 세우고, 주차장·화장실·관람로·소방시설 등도 재정비할 방침이다.
임청각은 1000여년전 통일신라시대 큰 절터(지금도 옆에 국내 불교전탑의 대명사인 신세동 7층 전탑이 절터 시설로 건재하고 있다)였다가, 15세기부터 고성이씨 가문이 들어와 500여년간 터잡고 살아온 종택이다. 국내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살림집들 가운데 가장 장대한 규모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세기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원의 여섯째 아들 이증이 처음 들어와 보금자리를 꾸렸고, 현재 남은 임청각 건물들은 중종 10년인 1515년에 이증의 셋째 아들 이명이 지은 거대한 안채 살림집과, 정(丁)자 평면의 별당누각인 군자정으로 이뤄져 있다. 이명의 17대 적손인 이상룡이 1911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벌이기 위해 전답과 임청각을 처분해 떠난 뒤 일제는 집의 정기를 끊으려고 행랑채 일부와 딸림채 등을 뜯고 마당 한가운데에다 철로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종택 살림집은 원래 조선 양반가 집으로는 최대규모인 99칸이었지만, 근대기 철도 개설 등의 훼손이 자행되면서 50여채만 남았다.
최근 구한말 국권침탈기를 배경으로 화제를 모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임청각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 극 설정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친일파 이원익이 선비들의 정신적 지주인 ‘애기씨’(고애신)의 할아버지 고사홍을 무너뜨리기 위해 (고씨 가문의) 집은 철도공사를 위해 나라에 귀속되었으니 집을 비우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근대화’를 내세우며 임청각을 훼손함으로써 조선인의 항일 의지를 짓밟은 일제의 만행이 겹치는 대목이다.
임청각에 살았던 고성 이씨 가문의 선조인 허주 이종악(1726~1773)의 문집 <허주유고>에 실린 <동호해람>. 당시 임청각과 주변의 전경을 묘사한 그림으로 복원정비계획에서 중요한 고증자료로 쓰였다.
임청각 복원사업은 문재인 대통령이 각별한 의지를 표명해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와 지난 7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회 출범식에서 임청각을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입니다…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습니다. 99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 지금도 반토막이 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역사를 잃으면 뿌리를 잃는 것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대통령의 관심을 배경으로, 지난해 11월 종손, 문중 대표, 지역 전문가, 문화재위원 등으로 구성된 추진위원회가 꾸려졌고 수차례의 논의와 문화재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종합계획이 확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당장 복원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장애물인 중앙선 철로를 임청각 앞에서 걷어내는 철거이전 공사가 2020년께나 끝나기 때문이다. 문화재청 쪽은 “우선 복원 대상터를 사들이고, 기본설계와 실시설계, 발굴조사 등을 한 뒤 2021년부터 분가와 나루터 등의 본격적인 복원사업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문화재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