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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벽돌로 쌓은 제따와나 선원, 석가모니 따라 수행이 즐거운 집

등록 2018-11-02 04:59수정 2018-11-02 21:49

춘천에서 지난달 개원식 연 새 사찰
인도 불교성지 ‘기원정사’ 본따
고대 사찰을 현대식 건물로 재현
사성제·팔정도, 동선으로 풀어내고
장식 없는 법당, 토굴 같은 선방 입구

제따와나 선원장 일묵스님
“진리는 불변하나 환경은 변해야”
건축가들 “중도 가르침 받은 작업”
제따와나 선원은 인도의 고대 불교 사찰 기원정사를 모티브로 삼아 설계됐다. 옛 유적의 느낌을 색채와 질감으로 표현하기  파키스탄에서 제작된 벽돌을 선택했다. 김용관 사진작가
제따와나 선원은 인도의 고대 불교 사찰 기원정사를 모티브로 삼아 설계됐다. 옛 유적의 느낌을 색채와 질감으로 표현하기 파키스탄에서 제작된 벽돌을 선택했다. 김용관 사진작가
2년전 어느 봄날 임형남·노은주 부부가 운영하는 가온건축 사무소에 “호리호리하고 냉랭해 보이는 스님 한분”이 찾아왔다. ‘제따와나 선원’이라고 이름붙인 사찰을 짓고 싶다고 했다. 부처의 최초 설법인 네가지 진리, 사성제(고집멸도·苦集滅道)와 수행의 여덟가지 길, 팔정도를 개념으로 집을 지어달라고 했다. 전통 사찰 양식은 수행에 불편하니 쾌적한 현대식 건물이 좋겠다고도 했다. 종교적 진리를 담되 전통 양식을 파괴한 절.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지난달 개원식을 한 강원도 춘천시 남면 박암리 제따와나 선원은 ‘제따왕자의 숲’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다. 한 신심깊은 부자가 석가모니를 위해 사원을 지으려다가 마침내 마음에 드는 땅을 찾았는데, 주인인 제따 왕자는 땅 팔기가 싫어 “금화를 깐 만큼 땅을 주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부자가 정말 땅에 금화를 깔자 제따 왕자는 놀라 땅을 내줬고, 그렇게 세워진 사찰이 기원정사(祇園精舍)였다. 석가모니가 생전에 가장 오랜 기간 머문 장소라고 한다. 선원장인 일묵스님은 제따와나 선원이라는 이름을 통해 석가모니 시대 초기 불교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뜻을 분명히했다. 서울대 수학과 박사과정을 밟으며 불교동아리 선우회에서 활동했던 일묵스님은 지난 1996년 다른 학생 2명과 함께 출가했다. 선우회에선 2000년대 초반까지 10여명이 잇따라 출가해 ‘서울대생 집단 출가 사건’으로 관심을 끌었다. 출가 뒤 성철스님 밑에서 공부하던 일묵스님은 돌연 미얀마로 유학을 떠나 자신만의 수행에 정진했다.

제따와나 선원의 중심 건물. 1층이 법당, 2층이 선방으로 쓰인다.  김용관 사진작가김용관 사진작가
제따와나 선원의 중심 건물. 1층이 법당, 2층이 선방으로 쓰인다. 김용관 사진작가김용관 사진작가
최근 제따와나에서 만난 일묵스님은 “요즘 한국의 사찰은 기도가 중심이 돼 여러 부처를 모신 전각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교학(법당)과 수행(선방)을 일치시키되 실용적인 공간을 원했다. 진리는 불변하나 불교의 교육시스템은 변해야 하고 우리시대 건축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축가들은 벽돌로 기단을 쌓아 만든 인도 기원정사의 모습을 모티브로 삼기로 했다. 사각형의 듬직한 기단, 회랑 같은 구조를 넣었고 벽돌의 음영, 시간의 흔적 등을 표현하기 위해 기원정사와 색깔, 표면의 질감이 비슷한 파키스탄산 벽돌을 골랐다. 건축가들은 고민 끝에 사성제·팔정도를 ‘길’로 풀어내기로 했다. “종교의 본질은 어디론가 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고대 사찰 유적 모습을 띤 현대건축에 전통적 사찰 가람 배치의 동선을 결합시켰다. 경사진 건물 터를 세개의 단으로 정비하고 종무소·꾸띠(오두막이란 뜻으로 수행하는사람들의 거처), 스님들의 요사채, 법당을 세가지 위계에 각각 올려놓았다. 일주문을 지나 법당에 이르는 길을 세번 꺾어 점층적 느낌을 더했다.

선원장실 쪽에서 바라본 법당과 요사채. 왼쪽 회랑이 있는 건물이 비구를 위한 요사채다. 김용관 사진작가
선원장실 쪽에서 바라본 법당과 요사채. 왼쪽 회랑이 있는 건물이 비구를 위한 요사채다. 김용관 사진작가
이렇게 탄생한 제따와나는 건물 배치가 단순해보이면서도 여러 겹의 길이 숨어 있다. 일주문을 통해 제일 아랫단인 종무소·꾸띠를 둘러보고 방향을 틀면 두번째 영역인 요사채 구역에 들어간다. 건축가들은 중앙의 직선 계단 외에 왼쪽으로 구비구비 돌아갈 수 있는 램프를 만들었는데, 램프를 둘러싼 벽이 높아 침묵과 고요의 순간이 찾아온다. 1층 법당에서 2층 선방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입구의 벽은 마감이 거친 콘크리트를 그대로 내보여 토굴로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를 냈다.

제따와나 선원 법당에서 건물 설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축가 노은주(왼쪽), 임형남. 이주현 기자
제따와나 선원 법당에서 건물 설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축가 노은주(왼쪽), 임형남. 이주현 기자
건축가들은 이 작업을 하면서 일묵스님으로부터 ‘중도’(中道)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고통 끝에 어떤 깨달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중도란 시작도 즐겁고 중간도 즐겁고 끝도 즐거운 것이다.” 고통과 집착을 멸해 열반의 길로 가는 수행이 즐거운 집. 일묵스님의 뜻과 건축가들의 역량이 제대로 만났다.

춘천/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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