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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정체성 잃은 비엔날레들 이대로는 안된다

등록 2018-11-23 03:38수정 2018-11-23 16:24

서울 광주 부산 주요 비엔날레 무관심 속 폐막
관 주도 기존 유행 되풀이 참신함 실종
벼락치기 준비에 통일성 없이 분산
“차기 전시 충분한 준비시간 확보
정체성 찾는 특화전시로 차별화를”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에서 펼쳐진 2018부산비엔날레 전시현장. 임민욱 작가의 대형설치 작품을 관객들이 보고있다.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에서 펼쳐진 2018부산비엔날레 전시현장. 임민욱 작가의 대형설치 작품을 관객들이 보고있다.
잔치는 조용히 끝났다.

9월초 서울, 부산, 광주 등 대도시에서 잇따라 개막했던 국제 미술 큰 잔치인 격년제 비엔날레 행사들이 이달초 모두 막을 내렸다. 규모와 이벤트를 내세우며 떠들썩하게 시작한 개막 때와 달리 폐막 소식을 접한 미술판은 행사가 열린 사실 자체를 짐작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잠잠하기만 하다. 미술인들 사이에 올해 비엔날레들이 의미 있는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징표다.

사실 올해 비엔날레들은 규모나 공간, 구성 등 외양 면에서 눈길을 끌만한 요소들이 적지 않았다. 11명의 국내외 기획자가 43개 나라 작가 165명과 함께 9개나 되는 본전시판을 꾸리고 외국 전시기관의 파빌리온과 대가들의 특별 야외전까지 꾸린 광주비엔날레는 해방 이래 역대 미술행사 가운데 최대규모란 말이 나왔다. 부산 비엔날레는 철새도래지 을숙도에 건립된 부산현대미술관과 도심 용두산 기슭의 옛 한국은행 건물로 전시공간을 옮기며 쇄신을 꾀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차린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는 4명의 복수 기획진과 출품작가들 속에 비미술인이 다수 들어가면서 새 틀거지의 인문 예술제를 표방하기도 했다.

그러나 뚜껑 열린 비엔날레들은 차별적이고 참신한 콘텐츠를 내놓는데 실패했다. 난민, 이산, 민족주의 등의 범세계적인 화두를 영상, 설치, 사진, 회화 등의 잡다한 형식과 개념으로 나열하는 기존 비엔날레의 유행을 되풀이하는 차원에 머물렀다. 지자체 주도 행사에서 벗어난 미술계의 독자적인 운영모델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광주비엔날레 재단과 부산비엔날레 조직위는 지난주 결산자료를 내어 3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하고 국내외 유력인사들의 방문이 이어졌다고 자찬했지만, 미술계 반응은 냉랭했다.

무엇보다도 고질인 벼락치기 준비의 관행이 올해는 더욱 악화된 양상으로 되풀이되었다. 2년마다 열리는 형식이 무색할 만큼 전시감독 선정과 기구 재편 등으로 개막 7~8개월 전에야 기획진이 꾸려졌다. 세계 미술의 새 화두를 제시하거나, 비엔날레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은 묻혀버렸다. 단기간에 전시 덩치를 키울 수 있는 집단기획진 시스템 아래 구작 위주 출품작들이 기획자 각각의 영역 위주로 구성돼 전시주제의 집중도를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상상된 경계들’이란 주제를 내건 광주 비엔날레는 난민, 냉전, 정보 격차, 성차별 등에서 드러낸 현대의 경계와 장벽을 조망한다는 취지를 내걸었지만, 주제에 맞춤한 색깔을 찾기 어려웠다. 전시장이 숱하게 분산됐을 뿐 아니라 출품작가 중복에, 이질적인 북한 미술 소개전까지 끼어들었다. 시내 곳곳에 세계 3개 나라 미술기관의 파빌리온 전시까지 열려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가관 전시를 따라하는 미술 엑스포에 가깝다는 혹평이 나왔다. 상당수 미술인들은 전시 평가와 담론은 논외로 젖혀놓고, 재벌가 출신의 미술판 실세인 김선정 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의 향후 진로에 관심을 기울이는 눈치다. 김씨가 전체 전시의 총괄 큐레이터까지 도맡으며 확고한 비엔날레 권력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큰 공공 비엔날레의 최고 운영자와 최고 기획자를 모두 독식한 건 역대 비엔날레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행태다. 하지만, 비엔날레 기간 내내 이런 패권적 운영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의문은 거의 제기되지 않았다. 미술정치 맥락에서 김씨가 주도한 전시 물량주의의 의도와 배경을 놓고 여러 억측들이 뒷담화처럼 떠돌았을 뿐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차려진 올해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서 관객들이 쿠바 작가 크초의 초대 비엔날레 출품작을 감상하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차려진 올해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서 관객들이 쿠바 작가 크초의 초대 비엔날레 출품작을 감상하고 있다.
부산 비엔날레는 전시감독과 주제가 확정된 5월부터 전시 준비가 본격화됐다. 외국인 전시감독과 기획진의 갈등까지 겹치면서 개막 자체가 기적이란 말들이 나오기도 했다. ‘비록 떨어져 있어도’란 주제 아래 분리와 대립의 시대를 조망한 전시의 출품작 콘텐츠들은 광주 비엔날레의 본전시 출품작들과 상당부분 중복되는 것이어서 광주 분관 전시를 보는 것 같다는 촌평도 나왔다. ‘좋은 삶’을 주제로 내건 서울의 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콜렉티브란 이름으로 집단기획체제를 표방했으나, 역시 촉박한 준비일정 속에서 기획자들의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 소통의 한계를 드러냈다. 게다가 컬렉티브 가운데 핵심 기획자인 서울시립미술관장이 성추문으로 하차하면서, 21세기 미래와 삶의 전망을 찾는다는 전시의 목표는 울림있는 결실이 되지 못했다.

물론 도시공간을 재발견하는 성과를 낳기는 했다. 광주비엔날레는 옛 국군통합병원 폐건물에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같은 국외 유명 작가들이 광주의 상처와 기억을 빛과 거울 등의 감성적 소재와 설치적 표현 방식으로 되살린 장소 특별전시를 꾸려 최고의 수작이란 호평을 받았다. 부산비엔날레도 전시장으로 고른 옛 한국은행건물의 모던한 금융 공간을 전시 콘텐츠 못지않게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지자체의 장소 만들기 전략에 맞춤한 단발적인 공간 혹은 장소 마케팅에 그쳤다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안공간 루프의 디렉터이자 독립기획자인 양지윤씨는 “비엔날레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은 하지 않고, 많은 국내외 기획자들을 갈라 일종의 역할 놀이를 시켜주거나 보여주기 성과에만 급급하는 모습들이 올해 국내 비엔날레 전시들에서 도드라졌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전시 광경.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전시 광경.
미술계에서는 지자체의 문화 치적 과시 전략에 휘둘려 비슷한 시점에 여러 도시의 비엔날레가 한꺼번에 몰리고, 불과 수개월의 단기간에 본전시를 급조하는 후진적 관행부터 혁파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구처럼 비엔날레가 끝나기 전에 차기 행사의 전시감독과 기획 방향의 큰줄기를 확정해 준비시간을 확보하는 관행을 뿌리내리게 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시 콘텐츠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미술계의 한 중견 기획자는 “광주와 콘텐츠가 비슷한 부산 비엔날레의 경우 3년마다 열리는 트리엔날레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면서 “서울 미디어시티비엔날레도 설립취지인 미디어아트 특화 전시로서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광주비엔날레 재단·부산비엔날레 조직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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